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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39 누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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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당신에게서 안정감을 느껴요. 그동안 나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잔뜩 움츠려 들고, 긴장하며 살았어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누구에게 잡히면 안 되는 사람처럼 줄행랑치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당신에게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어요. 당신 손바닥 위에 얌전히 있고 싶어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신에게 잡히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오늘도 당신 주위를 쉼 없이 빙빙 맴돕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휴대전화가 되었으면 해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당신의 손아귀에 있을 그 휴대전화가 말이에요. 귀하진 않지만 없으면 굉장히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그런 핸드폰이 되어 당신 곁에 머무르고 싶어요. 봐달라 하지 않아도, 어루만져 달라 떼쓰지 않아도 당신이 그러하실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당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놓치고 싶으시겠지만, 나는 무리해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아직은 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의 온몸으로 날아가려는 당신을 꼭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몸에 힘이 조금은 빠지고 있으니. 그러니 걱정 말라고요. 곧 내게서 날아갈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동안은 내게서 당신이 날아가지 않도록 잘 붙들어두어 주세요.




나는요, 종종 당신이 나를 향한 마음이 연민인지 동정인지 가여움인지 혹은 사랑이 아닌지 지겹도록 곱씹어 생각해 봐요.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질문을 가장한 간곡한 요청이었다는 걸 말이에요.
사실은요, 연민이든, 동정이든, 가여움이든 뭐든 간에 상관없어요. 그저 당신이 내게 얽혔으면 좋겠어요. 사랑이 아니면 어때요. 내가 그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면 그만인 것을요. 장난이면 어때요. 내가 그보다 더 진심이면 되는 것을요. 나는요 그저 당신이 나를 보고 아무런 마음이 없을까 봐 오히려 겁이 나요. 미워하는 마음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내게 주세요. 미운 마음이라도 내게 주세요. 당신이 주는 마음 어떤 것이라도 내가 사랑으로 바꿔서 출력해 드릴게요.

단언컨대, 내가 그려왔던 어른의 상이 당신이에요. 1 더하기 1의 정답이 2 임이 틀림없듯이, 나의 어른 남자가 정확하게 당신이에요.  외모부터 말투며 분위기까지 모든 면이 해당되어요. 맞아요. 나도 어른이지요. 그런데도 늘 어른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나는 늘 불안했으니깐요.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분위기와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너무도 궁금해요. 차분하게 차곡히 쌓인 당신의 지난 이야기가 모조리 알고 파져요. 그간 겪고 지나갔을 무수한 사연들을 남김없이 죄다 다 듣고 싶어요.  조금만 당신과 가까운 사이였다면, 아마 어마어마하게 졸랐을 거예요. 덜 가까워진 사이에 당신은 감사해야 해요. 아니면요,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팔에 매달려 떼쓰고 귀찮게 졸랐을 거예요. 분명해요. 어찌 되었든 당신의 안락함에 머리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으니까요. 내게 틈을 보이지 말아요. 머리 들이밀고 들아가고 싶어지게 하지 말아요. 그랬다가는 나도 나를 감당 못하니 조심하세요^^
오늘은 동경하는 마음이 더 큰 듯해요. 그런 당신을 닮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당신께 보냅니다. 잘 자요, 당신.


#키 작은 비애


엄마집 갈 때마다 마트를 가게 된다. 높은 구두를 벗어두고 엄마 슬리퍼를 신고 에코백 하나 달랑 어깨에 메고 쫄래쫄래 마트를 향했다. 두 귀로 울려 퍼지는  포지션-summer time. 봄이 오는 듯한 날씨와 즐거운 노래에 충분히 행복했다.  마트를 들어설 때마다 내 두 눈은 빠르게 짝퉁남자를 찾게 되고, 그런 나와 항상 마주친다. 오늘도 어김없이 있었다. 오후에만 볼 수 있었던 그는 낮에도 수시로 보였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그의 모습은 진짜 어른남자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진짜 어른남자를 보지 못한 날들이 쌓여 짝퉁남자만 보아도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반가웠다. 매번 어른 남자의 흔적을 찾는 내 두 눈에 이제는 짝퉁 남자만 보아도 설레고 반가움이 가득했다. 가까이서 보면 진짜보다 아주 많이 어리지만 말이다.  약간 짧아진 듯한 짝퉁남자는 유독 잘생겨 보였고,  유니폼이 제법 잘 어울렸다. 얼른 그에게서 시선을 억지로라도 떨쳐내야만 했다. 진짜 그를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진짜 닮았어. 분명, 출생의 비밀이 있을지 몰라. 큭큭'

많이는 아니다. 결코 나를 두둔하는 말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고 미리 밑밥을 까는 중이다. 나는 조금. 아주 조금, 키가 작다. 평생 이렇게 살아와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가끔 높은 곳이 있는 물건을 꺼낼 때 말고는 말이다.  구두를 신었어도 닿지 않았을 높이였을게다. 슬리퍼 신은 내 발가락에 온 힘을 주어 까치발을 하고,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을 손을 뻗어보지만 간당간당하기는커녕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주위에 키가 큰 사람이 지나가면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이 없었지만, 용기가 없었으니깐.. 첫 남자에게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저 빨리 오라는 답만 돌아왔다. 주위를 살피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노래를 일시정지 시켰다. 그리고 슬리퍼 한쪽을 벗어 올라가려 했다. ㅋㅋㅋㅋㅋㅋ 한 발만 올려서 퍼뜩 꺼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낯선 사람에게 용기를 내는 일보다 몸으로 해결하는 편이 더 쉽다고 생각했으니깐 말이다.

"아이고, 올라가면 안 돼요!"

화들짝 놀라 무릎을 올리던 나는 순간 일시정지가 되고 말았고, 내게 다가오는 빠른 걸음에 천천히 슬리퍼를 신었다.

"아.. 저기 위에 손이 안 닿아서요"

자주 뵈었던 익숙한 얼굴이었고, 한시름 놓았다.

"꺼내달라고 하지~ 기다려봐요. 내가 사다리 가져올게"
"네"

내게 뒤돌아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짝퉁 그가 왔다.
사다리를 들고 오는 것보다 꺼내달라는 편이 그분에게도 덜 수고스러웠을 테지만 하필...
분명, 내가 올려가려 했던 이야기를 하신 게 분명했다. 이야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짝퉁 남자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

"어떤 거 꺼내드릴까요?^^"
"코코*이요.."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 한 개 더 꺼내주세요"
"여기요. 올라가시면 또 변상하셔야 해요^^"
".... 네"
"^^"

카트에 짝퉁 남자에게 받은 음료를 집어넣고, 빠르게 등을 돌려 지나갔다. 구두를 신고 온 탓에 양말이 아닌 스타킹이었고, 내가 신던 슬리퍼가 아닌 엄마 슬리퍼라 익숙치 않았다. 결국 스타킹이 미끄러워서 인지 아니면  슬리퍼가 익숙치 않아서 인지 슬리퍼 한쪽이 벗겨지고 말았다. 결벽증이 있는 나는 오염이 가득한 바닥에 내 발을 절대 디딜 수가 없었고, 발통이 달린 카트에 몸을 지탱하고 슬리퍼 쪽으로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짜 그가 슬리퍼를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겨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듯싶다. 그의 얼굴에 연신 웃음이 가득했고, 애써 참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창피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된통 쪽팔렸다. 고개만 짧게 숙여 감사함을 전하고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종종걸음으로 내달렸다. 슬리퍼가 더 이상 스타킹으로 미끄러지지 못하도록 발가락에 온 힘을 주고 말이다. 빠르게 걷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마 다시는 이 마트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추위가 한풀 꺾인 날씨에 조금 짧은 치마를 입기도 했고, 속옷이 야광팬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수 3번 하는 사람이랑은 절대 얽히지 마"

첫 남자가 내게 종종 하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어른 남자와는 죄다 나의 실수들로만 가득한데...?
첫 남자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타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내가, 3번의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한 큰 일이기에. 첫 남자와도 그렇게 인연이 얽히게 되었으니 더욱더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 남자와 얽히고 싶다. 몹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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