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밤은 언제나 당신을 내게 데려다 줘요.
무겁게 뱉은 한숨이 어느새 방바닥을 깔았을 때 커피포트에 물은 다 끓어 그 김은 당신과 함께 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연기처럼 천장으로 향하다 이내 사라져요. 남은 건, 컵 속에서 피어나는 핫초코의 잔해뿐이죠.
나는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아련하게 떠오르는 당신 모습이 내 두 눈을 가립니다. 내가 받고 있는 상처가 깊을수록, 힘이 들수록, 당신을 향한 사랑 또한 깊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아려오는 마음을 방치하는 거 말고는 달랠 방법이 없어요.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해야 당신을 가슴에 묻어둔 채 애써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요.
기다리다 보면 봄이 오듯이,
기다리다 보면 당신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요, 쉽지가 않아요.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사실은 싫어요... 당신이 너무 좋거든요.
#약 먹을래? 술 마실래?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셔요. 아니면 약을 먹고 자고요.
술은 현실에서 잠시 도망칠 수 있게 해주는 탈출구 같으니깐요. 하지만 잔이 비워질수록 감정들이 술기운에 녹아 터졌어요. 결국엔 사무치는 그리움이 눈물로 되어 흘러내려요.
"왜 또 울어?"
첫 남자가 물으면 항상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에요.
"비를 기다려"
다른 대답은 하지 못하니깐요. 할 수 없으니깐요. 그러고는 눈물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떨구는 거 외엔 도리가 없어요.
#독자들의 요청에 의한
감사하게도, #1 소설이 막을 내렸음에도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에 써왔던 글과는 다르게, 찌질하고 용기 없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 여주의 슬픈 짝사랑 이야기를 일기처럼 풀어낸 #1 소설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막을 내렸으나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이 소설의 애착을 표현하려 한다. 처음 이 손바닥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매일 글쓰기 연습을 통해, 정작 진짜 글을 써야 할 때 막히지 않고 써 내려가기 위해 글 쓰는 근육을 키우는 용도로 시작되었다.
처음 사랑을 해보는 여주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무쌍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를 일기처럼 담아내고 있다. 다소 거친 표현이 가끔 있을 수도 있고, 연습용이므로 글을 1인칭 시점에서 쓰기도 하고 3인칭 시점에서 쓰고 있다.
[작가님, 남자주인공 등장 좀 시켜주세요]
[슬픈 끝맺음이 아니라 잔인한 끝맺음]
[남주 보고 싶어요]
[어른남자 등장해 주세요!!]
[키다리 아저씨 보고 싶어요]
풉ㅋㅋ 키다리 아저씨.
맞아, 나의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나도 나이가 있고, 그렇다고 오빠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조금은 있는 듯한... 호칭 하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내가 하는 사랑이 그렇다. 지칭대명사 마저 없는, 외사랑.
마른 나뭇가지만 바람에 부딪히는 겨울 끝자락이지만, 어느 틈엔가 봄이 오고 있다. 논두렁 사이에 냉이들이 삐쭉 고개를 내밀고, 겨울바람 속에 분명 봄 냄새가 실려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벌써 봄이다. 가슴은 온통 분홍빛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봄꽃의 향기가 진동을 하는, 나는 지금 어른 남자를 보러 가는 길이다.
회사 앞, 계단만 오르면 그를 볼 수 있다. 단숨에 뛰어올라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 숨이 가쁜 것인지, 봄이 반가워 그런 것인지, 어른 남자를 코 앞에 두고 있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터질듯한 두근거림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곧이어, 비스듬하게 서서 날 기다리고 있는 어른 남자.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그의 목에 팔을 둘러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싶을 만큼, 너무도 보고 싶었던 남자.
날 쳐다보는 눈도 어쩜 저래 예쁠꼬. 화사한 봄보다 더 화사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나는 빠르게 진정시켜야 했다. 외사랑이니깐.
삐쭉 나온 머리카락도 여전히 귀여우시다. 그는 알까? 본인 뒤통수가 저래 귀여운걸 말이다.ㅋㅋㅋ 비밀이지만, 예전에 삐쭉 나온 머리카락만 보고 뒤따라 걷다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그의 등에 코박을 뻔한 적이 있다. ㅋㅋㅋ 그때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손에 땀이 난다. 나는 그저 그가 그만큼 귀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의 삐쭉 나온 머리카락은 마치 내 사랑이 그에게만 갈 수 있게 설치해 놓은 안테나 같다.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네!!!!!!^^"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과장님도 잘 지내셨어요??"
"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당신을 봐서 너무너무 좋아요'
"요즘 잠은 잘 자요?"
"네^^"
'달과 별이 뜬 모든 시간엔 당신과 함께 했어요'
풉, 단 한마디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마냥 좋다. 그의 목소리도, 그의 눈빛도, 그의 냄새도 어디 하나 미운 구석 없이 모든 게 사랑이다.
"과장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비, 좋아하세요?"
"아뇨. 비 오면 귀찮아서 싫어요"
"아... 네ㅜ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면요, 나랑 만날래요?"
"아뇨, 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 그러시구나 ㅜㅜ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네"
"제게 잘해주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 태어날 때부터 친절을 장착하고 태어났어요"
"하하.. 타고나셨구낭. 맞아요, 과장님 짱 친절하세요..."
"네 맞습니다"
"과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네"
"저 부담스러우시죠?"
"많이는 아니고, 조금이요"
"하하.. 그러시군요ㅠㅠㅠㅠㅠㅠ"
썅, 죽여버릴까....
"과장님, 뭐 드릴 게 있어요"
"뭔데요?"
"사랑의 부적이라고 있...."
"부적이요? 꺼내지도 마세요. 저 교회 다녀요"
염병, 진짜 죽여버려야겠다.
괜찮아. 이상적인 대답을 바라지 않았으니깐. 그저 진짜 그가 나처럼 비를 좋아하는지가 궁금했고, 그럴 수 없겠지만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면 날 만나달라고 이야기를 그에게 하고 싶었으니깐. 그걸로 된 거야. 그리고 내게만 더 친절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고, 그에게 항상 행복이 따르길 바란다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내 사랑이 그에게 부담이 된다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통보였으니 괜찮다. 일방적인 사랑이니깐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데도 괜찮아.
오늘 방송용 글입니다. 급히 쓰느라 요청에 의한 소설은 다음 편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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