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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15 사랑을 숨기고 나를 속이고 당신을 속여야


글에는 온통 당신 이야기입니다.
지나고 보니 모두 사랑이었어요.
어쩌면 이 사랑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과거가 되어야만 하고요,
내게 잊혀야 할 것들 중에 당신은
단연코 미루고 미루고 싶은 숙제 같은 존재지요.
나는 오늘도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하기 위해 펜을 잡습니다.

당신은 현실이 될 수 없는 나의 허상과 망상이었고,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모든 것을 흔들었습니다.
공적인 인사는 늘 짧았고,
그 짧은 뒤 말하지 못한 문장들은
기나긴 겨울밤처럼 길게 남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끝내 배우지 못한 외국어였고,
그 대신,
시선과 침묵으로 당신을 불렀습니다.
지나간 마음은
대게 조용히 식는다고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당신을 잊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은 어김없이 당신을 사무치게 그립게 해요. 이러니, 내가 당신을 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마주 앉아, 식사하고 있는 당신에게
사랑 아닌 눈으로 당신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안 되겠지요.
나는요, 당신과 나란히 마주 보고 앉는 게 좋아요.
요상한 젓가락질로 와구와구 먹는 것도 귀엽고요,
나의 재잘거림을 묵묵히 들어주는 면도 좋고요.
이따금씩 짤막한 답변으로 반응하는 것도 좋아요.
사실 당신이 내 말에 경청하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신이 나버리기도 하죠.
이러는데 마음을 숨길수야 숨길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게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그렇게 되기 위한 갖은 노력을 아니할 수 없었어요.
그래야만 당신이 나를 봐주시기에서 말이죠.
당신 앞에서 나의 불안을 숨기고 평온할 수 있을까요.
평온한 척하며 마음을 숨길 수 있을까요.
사랑은 너무도 잔인합니다.
사랑이라는 파괴적인 다정함,
당신의 다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지우다,
내가 지워졌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전부였음을.

-지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