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이 왔다고 해서 내 일상이 바로 따뜻해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겨울의 잔재들이 무겁도록 세상을 덮고 있으나, 그런데도 낮의 어느 순간, 창가에 스며드는 빛은 달라져있다. 입춘 후에 볕은 그전보다 힘이 세짐을 피부로 느낀다. 잔뜩 날을 세워 내려오던 겨울의 시린 햇살에서 봄의 햇살이 조금씩 묻어나고, 해가 전보다 점점 길어지고 있다. 분명, 봄은 아주 천천히 오고 있다. 분명, 봄이 오고 있다.
가는 겨울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가 겨울을 잘 넘어가고 있느냐고..
오는 봄은 아주 낮고 조용히 당신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골목 끝에서 봄바람이 먼저 돌아오고 있다.

낭만, 지금이 제철입니다.
둘째 아이가 유독 스티커를 좋아한다. msg를 뿌려 과장된 표현으로 스티커 지옥이 따로 없다. 대부분 수첩이나 스케치북에 붙이지만, 게 중에 아끼는 스티커는 엄마인 내게도 종종 붙여준다. 해서, 외출 시 내 몸에 붙은 스티커를 찾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과 중 하나다.
그러나 간혹 바쁠 때는 생략이 되기도 한다. 가령, 아이 유치원 등원차량 오는 시간이 늦을 것 같을 때 말이다.
먹성 좋은 둘째가 아침을 든든히 먹고도 과일을 더 먹어야 한다며 식탁에서 내려오지 않는 통에 등원차량을 놓칠 위기였다. 추운 날씨에 아이가 춥지 않게 꽁꽁 싸매 옷을 입혔더니, 내 옷을 입을 시간이 없었다. 놓칠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가장 두터운 빨간 목도리만을 챙겨 아이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다행이었다. 아직 차가 오지 않았다. 같은 차를 타는 아이가 있었기에 안도했다.
"안 추워요?"
"추워요 ㅠㅠ 근데 차 놓칠까 봐..."
"삼촌~~"
"안녕??^^ 오늘 컨디션 좋네^^"
그와 짧은 인사를 마쳤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안녕하세요^^"
"안 춥습니까? 코가 빨개요"
"많이 추워요 ^^;;;"
같은 유치원 다니는 아이 아빠와도 짧게 인사를 했다. 매번 자가로 등원하지만, 아이 아빠가 쉬는 날에는 차량을 이용하는 듯했다. 내 작은 아이가 얼굴이 춥다고 징징거렸고, 나는 아이 앞에서 내 몸으로 바람을 등지고 막아섰다.
"애기엄마, 뒤에 헬로카봇이 엄청나게 붙어있는데요??^^"
"앗!"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지만, 두꺼운 목도리가 목을 두르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많아요?"
"엄청나게요"
손으로 만져봤는데 잡히는 스티커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유치원차량이 왔고, 아끼는 스티커라며 꼭 지키고 있으라는 미션을 주고 등원차량에 올랐다.
"아직 많은데.. 잠시만요"
아이 아빠는 내게 붙어있는 스티커를 떼어내주려 했다. 하필이면 희색 뽀글이 상하복 세트라 스티커가 도드라져 보였을게다.
"제가 할게요"
뒤에 서있던 그가 내게 와서 말했고, 아이 아빠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등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떼어냈다.
"무슨 애기엄마가 이렇게 칠칠맞아요!"
아니, 그는 왜 맨날 나한테 화를 내는 걸까. 아침부터...
그가 서있는 위치에서 내 등이 잘 보이게 나를 잡아끌었다.
"괜찮아요. 그냥 집에 가서 제가 떼어낼게요^^;;"
아이 아빠는 내게 스티커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정도 크기면 그냥 헬로카봇 옷이라고 해야 될걸요??ㅋㅋㅋ"
"ㅋㅋㅋㅋ 그래서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다들 쳐다봤나 봐요ㅠㅠ"
손바닥만 한 차탄이네 가족 스티커였다.. 나는 민망했다. 큰 스티커는 떼어내기 쉬웠지만, 작은 하트와 꽃모양 스티커는 쉽지 않았다. 특히나 뽀글거리는 트레이닝 세트였으니...
엉덩이에 붙은 스티커는 그가 내 옷을 잡아당겨 떼고 있었다. 바지가 벗겨질 정도로 잡아당긴 건 아니었지만, 민망했고, 굉장히 추웠다.
"제가 할게요"
그가 아이 아빠한테 말했고, 아이 아빠는 내게 스티커를 건네주며 스티커 잘 지키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냥 집에서 뗄게요ㅠㅠ"
"빨간색 스티커라.. 좀 그래요..."
"아..."
하필이면 흰색 양털 뽀글이 트레이닝에 빨간 하트모양 스티커였다.
"나 추워요ㅠㅠ"
그가 무언가를 내밀었고, 그건 전기손난로였다. 손난로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마치 차가운 물에 샤워하다, 따뜻한 물을 틀면 찌릿찌릿한 온도 변화처럼 말이다.
"다 뗐어요"
그가 스티커를 내밀었고, 나는 꽁꽁 언 손으로 스티커를 그에게서 가져왔다. 아이에게 소중한 스티커를 잃어버리지 않게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을 때였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대충 두른 목도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그가 묶어주었다.
"누가 봐요.. 내가 할게요"
"왜요? 그럼 몰래 숨어서 할까요??"
"그 말이 아니잖아요"
"^^"
배를 한 대 때려주려 했지만 참았다. 그는 일부러 더 세게 목도리를 묶어주었고 그 순간 나는 또 누군가 떠올라버렸다. 그렇게 슬픔이 또다시 찾아왔다.
"아파요??"
"아뇨"
"그럼?"
"암 것도 아녜요. 추워요. 집에 가요"
나는 그를 남겨두고 집으로 발길을 옮겼고, 그는 내 옆에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아기 양 같아요^^"
"네?"
"순한 양은 아니지만요"
"무슨 소리예요?"
"옷도 그렇고 머리도 뽀글뽀글해서 양 같다고요. 음매~~~~"
"^^"
그의 양 성대모사가 퍽 귀여웠다. 온통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 내게 무장해제하고 웃게 만들어주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갈 때처럼, 냉탕에 머물러있던 슬픔은 작은 낭망으로 온탕으로 나를 옮겨놓았다.
"머리 진짜 잘 어울려요^^ 어려 보여요"
"고마워요^^"
빠르게 앞서가던 나의 발걸음은 그에게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가 내 빨간 목도리를 입까지 올려 얼굴이 춥지 않게 했다.
민망했다.
"나 세수 못했어요..."
"치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양치는 했죠^^"
"진짜 궁금한데요, 양치하고 입 헹구긴 하죠??"
"네!!! 왜요?"
"그쪽한테서 유독 치약냄새가 많이 나서.."
"이 씨"
"역시 순한 양은 아니었어^^"
"ㅡㅡ 그만 봐요.. 나 세수 안 했데도요.."
"그래도 예뻐요^^"
"윽... 입 발린 소리"
"진짠데? 예뻐요"
"... 알아요"
뭐라 대답할 마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다고 했다. 그는 웃었고, 그의 작은 웃음소리가 싫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봐요~"
"네. 아! 이거 들고 가야죠!!"
나는 손난로를 내밀었고, 그는 내 손에서 손난로를 가져갔다.
그의 손은 참 따뜻했다. 전기 손난로를 쥐고 있던 내 손보다 온도가 높았다. 그의 낭만은 따뜻한 손에서 나온다고 믿어버렸다. 유독 추운 날, 그의 손은 몹시도 뜨거웠다.

손에서 오나, 말에서 오나
<언니 부추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 있을까요?>
<정구지??>
<네 ㅎㅎ 정구지!!>
<찌짐 해서 먹어요. 요새 홍합철이잖아요>
<그건 너무 어려워요>
<그럼 부추김치해먹어요>
<좀 더 쉬운 건 정녕 없을까요. 요똥은 웁니다요>
<그럼 가져와요>
그렇게 나는 부추를 모두 전으로 굽기로 했다. 홍합을 다지고, 방아잎을 팍팍 넣고, 오징어와 새우살을 넣어 8장을 구웠고 그다음에 땡초를 송송 썰어 넣어 구워냈다. 아이들 부추전 8장, 땡초부추전 27장이 나왔다.
그날 저녁식사 시간에 이웃을 초대했다.
"에??? 이걸 다 구웠어요???"
"양이 어머어마하네요"
"집사람이 손이 좀 커 ㅋㅋㅋ"
"이모 엄청 맛있어요!!!"
손이 크다는 말에 나는 또 누군가 떠올라버렸고, 슬픔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죠? 괜히 와이프 때문에 일만 만들었네요"
"아니에요^^ 다 같이 먹으면 좋죠"
"식당 하나 차릴까요?"
"아니요.."
"재능이 아까워요. 나 이래 봬도 식당집 아들이라 입이 까다로운 편인데, 진짜 맛있어요^^"
그는 말도 참 예쁘게 했다. 누군가와 많이도 닮은 듯했다.
"고마워요...^^"
"언니, 전에는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하죠!"
우리 넷은 추운 날씨에 막걸리 사러 가기가 퍽 귀찮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어른답고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다. 남편이 투덜투덜 외투를 입으며 막골리는 사러 나갔다. 술상을 차리기 위해 나는 분주했고, 이웃 부부는 서로 이야기했다.
"오빠가 설거지해. 언니 준비한다고 힘들었을 텐데"
"아뇨 아뇨 우리 집 살림은 제가 할게요^^ 그리고 나중에 식세기 돌리면 돼요"
나의 만류에도 그는 아이들의 식기와 빈 그릇을 가져왔다.
"앉아있어요"
"같이 빨리 하고 쉬어요^^"
말을 꽤나 이쁘게 하는 그는 필시 크고 따뜻한 손에서 그 낭만이 나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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