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73 진부한 안부를 건네는 사람


일찍 만나서 낙엽도 보러 가고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네요.
무리하지 마요. 전 괜찮아요^^
아니에요~ 어떻게든 봐야죠^^ 그때 봐요, 우리^^
네, 좋아요^^
시간을 길게 가질 순 없지만 볼 수 있네요^^


그때 봐요, 우리^^
나와 당신을 묶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이토록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진부한 이야기들만 내뱉는 당신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다니요. 혹, 당신은 눈치채셨나요. 마지막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런 건가요. 거리엔 온통 떨어진 낙엽으로 뒤덮여있고, 가을은 바스락바스락 울며 떠나가고 있어요. 나만큼 가을도 떠나기 싫다고, 조금 더 머물코자 하지만 바스락바스락 소리는 쉼 없이 들려옵니다. 가을은 끝을 향해 가고 있고, 겨울은 드르렁 거리며 당장 비집고 들어올 틈을 보고 있어요.
마지막이에요.
드디어 당신이 나와 당신을 '우리'라는 대명사에 함께 담았는데 하필이면 우리의 끝이 되어버렸어요. 당신이 아무 의미 없이 '우리'라는 단어를 선택하실리는 없을 텐데... 무슨 연유인가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와 당신을 함께 묶은 '우리'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요. 곱씹어보아도, 영락없이 행복해져버리고 맙니다.
실은요, 낙엽이 지는 가을길, 늦가을 문턱을 넘고 있는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이별할까 봐 무서웠어요. 풀이 잔뜩 죽어버렸고요, 내 몸에서 피융 소리를 내며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했어요. 무서웠어요, 굉장히 많이요. 당신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꽤나 내게는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조를 수도 없고, 떼를 쓸 수도 없는 상황들이 너무 이해가 되어 속이 상했어요. 사랑은 내게만 가혹한 듯하여 속이 꽤나 상했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알게 되어 또 비참해졌지만 말이에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어요. 무리하지 말라, 나는 괜찮다고 말이에요. 기억하시려나요. 내가 하는 괜찮아요 라는 말은 단 한 번도 괜찮은 적 없었어요. 죄다 아팠던 말이었고요, 슬픔을 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당신에게는 보여선 안 되는 마음이었고요.. 당신이 '그럼 다음에 뵙는 걸로 하죠'라고 답이 올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아십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랑할 걸 그랬어요.
적당한 거리로 바라보고
적당한 안부로 반겨주고
적당한 사랑을 하며
적당히 보고 싶어 할걸..
뭣한다고 매매 사랑해 버렸을까요. 뭐 한다고..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뭐 한다고 말이에요.
다들 쉽게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고 하더만. 나는 뭐가 문제이길래 이런 걸까요. 돌이켜보자면,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알았어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요. 그리고 당신을 오래 사랑하게 될 것 같았어요. 잠시 스쳐 지나갈 마음은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그게 시작으로 내 모든 시간에는 당신이 존재했어요.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어도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을 마음이겠구나 하고 말이에요.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었을까요.
지독하고 끈질긴 사랑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까 걱정입니다.
우리, 잘 이별해봅시다.
우리, 잘 헤어져봅시다.
우리, 잘 끝내봅시다.
우리, 세드엔딩에 마침표 찍고 서로 각자 행복하기를 바라보죠.
우리, 잘해봅시다^^

당신을 오래도록 사랑하고자 다짐했던 마음은 낙엽에 담아 날려 보내겠어요. 그 낙엽, 당신이 바스락 소리 나게 해 주세요. 다정한 모습은 감추고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