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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23 여름향기


굳게 닫힌 문틈사이
바람 따라 여름향기 묻어있거든,
나인 줄 아세요.
당신 그리워 찾아간
나를 꼭 알아주세요.

당신의 창가에도 바람이 불긴 하나요.



사라지기 전에 붙잡고 싶은 마음. 끝내 말하지 못한 문장들은 무수히 침묵 속에 사라지곤 해요. 당신을 원고지 위에 써 내려가는 순간. 아니, 그전에요.'당신'이라고  쓰기 위해 당신을 떠올리면 참아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와요. 그동안 눌러왔던 슬픔들이 한 번에 내게 들이닥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곤 해요. 이토록 짧은 단어가 내게 이렇게 깊은 슬픔을 데려와요. 당신이라는 글자 옆에 '동경해요'를 쓰고 나면 그 어떤 말도 이어갈 수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무엇을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당신을 동경해요'

사무치도록 그리운 당신의 이름보다 더 사무치는 한마디는 나를 더 슬프게 만들 뿐이에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막상 적으려니 모든 말들이 의미를 잃어버려요.. 그리움은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감정이에요. 당신을 향해, 아니 당신만을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당신에게 닿을 길은 어디에도 없으니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러니 부디, 내게 와주세요.  내게 와요. 와줘요.
나의 모든 것을 거짓말처럼 무너뜨린 사람이 당신이에요. 아무리 고심해 봐도, 당신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남는 건 없을 테고 그러면 관계는 자연히 정리가 될 텐데... 나는 왜 당신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을까요.
도리어, 당신을 찾아간다 한들 달라질 건 통 없는데도 말이죠. 당신을 부를 그 흔해빠진 호칭 하나도, 사랑도 없으며, 떳떳하지도 못할_ 애초에 시작도 말아야 할 사랑 따위가 어째서 이토록 나를 무너뜨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흘러가는 마음을 나는 도무지 멈추지 못하겠어요. 이 감정이 얼마나 나를 갈아먹고, 그 얼마나 나를 무너뜨릴지는 알 수 없으나... 필시 슬픈 끝맺음일지언정,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은 사랑과 동경 뿐입니다. 당신은 근심하지 말아요. 당신에게 도착할 내 마음은, 무해한 사랑, 그뿐이니까요. 단지 그뿐이에요. 누구도 다치지 않을 무해한 사랑 말이에요.
부르지 못한 당신의 이름은, 아니, 부르지 않는 당신의 이름은 내게 가장 긴 문장으로 남아 나를 아프게 할 모양입니다.
동경하고 있어요, 당신을.
결코 당신에게 전해질 리 없는 마음이란 것도 알아요. 굳이 전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마음은 그런 것이니까요.

하늘이 나를 우도하시어(祐助하다), 그가 내 곁에 잠시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신다면, 그가 머물고 떠난 후에는 하늘만을 존경하며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나의 심중(心中)에 그를 고이 품어 영녕히 사시옵고, 나의 외면(外面)은 하늘만을 보게 살게 하소서.

부디, 당신은 이 땅에서 꽃처럼 사시옵소서.
그래주신다면, 가히 더할 바 없사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한 시간은 하염없이 흐릅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문장보다 더 깊게 울림이 있는 건,
당신의 이름입니다.
한 사람을 통째로 담고 있는 단어,
단 하나뿐인 당신의 존재를 부르는 소리.
불러보고 싶어요. 당신의 이름으로...

하지만 압니다.
단순하게 호칭과 이름은 '상대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 안에는 관계의 거리라던지 존중의 온도차,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담겨있죠.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해요. 인간의 본능 중 한 가지인 인정 욕구에 속하는데요. '나'를 부르는 호칭에서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요, '작가님'이라 불려지는 것이 참 좋았었어요. 직책의 무게감이 한 번씩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호칭이 좋았었어요. 당신을 사랑하기 전에는 말이에요. 그때는 성공만이 나를 살게 할 동아줄이라고 생각했을 때이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싫어요. 직업도 싫어요,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기어이 풀어내는 작가라 싫고요, 새드엔딩 작가라는 타이틀은 더 더 싫어요... 지금은 짝사랑으로 이래저래 상처받고 구질구질하게 당신의 사랑을 구걸하고 매달리고 있지만요.. 나도요, 엄마아빠의 젊음을 양분 삼아 피워낸 꽃이고요, 또 누군가의 애물단지가 아닌, 귀한 보물단지로 예쁨 받고요, 누군가의 똥강아지로, 누군가의 내 새끼로 애지중지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날 좀 봐주세요. 다 필요 없고, 내 이름으로만 나를 봐줘요. 내 이름 앞에 붙어질 수식어 따위는 잠시 잊어도 좋아요. 나만 보세요.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관계의 접전조차 없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멀리 있어요.  당신을 '당신'말고 다른 호칭을 고심해 봤어요. 저번처럼 당신을 앞에 두고, '당신'이라 부르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요...

'오빠'라 부르기엔 당신은 내 오빠도 아니고요,
'아저씨'라 부르기엔 너무 젊으신 거 같고요.
'삼촌'이라 부르기엔 매우 싫고요...
'너'라고 부르기엔 존경이 빠진 것 같고요,

역시 '당신'이 최고네요.
'당신'보다 더 나은 호칭을 찾을 때까지
나는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래요.
당신을 보고 당신이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거기 계신가요?
여전히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위치에 계신가요.
당신께 가고 싶어요.
그러나 부담스러워할 당신의 눈을 보는 건 너무 무서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