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79 떠나려는 봄아


#그럼에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어디서부터 당신을 잊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무지말이에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내게 쉬운 건 없었어요. 결단코말이에요.

첫눈에 반한 그날, 애써 동경이라 믿었을 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당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괜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당신을 곤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싫었으니까요. 당신은 출판사의 정직원이고, 나는 작가였으니까요. 한마디로, 나는 그냥 잠깐 머무르는 사람, 당신은 회사 직원이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죠.

'접자, 숨겨야 하는 마음이잖아'

하지만 얼마 뒤, 함께 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첫눈에 반한 감정은 빠르게 호감에서 사랑으로 바뀌었어요.

'아무에게 티 내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매번 갈 때마다 듣는 진부하고 지루한 인사가 한순간 어찌나 설레고 떨리던지요.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하지만 나는 최대한 아닌척했죠. 당신은 말 한마디도 성의가 느껴졌고요,  겉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사람 같았어요.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당신과 어울렸으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공적으로 궁금한 게 생겼고, 그걸 물어보기 위해 나는 당신의 호칭을 불렀어요.

"네?!"

하고 반응하는데, 당신의 그 목소리 톤과 눈동자, 반응 속도가 너무 좋았어요.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누군가를 귀여워하면 게임 끝났다고요..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큰일 났다. 나 진짜 좋아하나 봐'

그건 뭔가 복잡하고 갑작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천천히 쌓여오던 마음이 문득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어요.

'내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아도 사랑이 시작되어 버린 거야.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짝사랑은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말았어요. 정말 어쩔 도리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당신을 혼자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게 조금은 억울했어요. 내쪽에서 힘들고 어렵게 짝사랑을 시작하고, 수없이 많은 마음이 당신에게로 흘러가는데 당신은 늘 똑같았어요. 배려하는 모습이 멋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게 배려만 하는 당신 모습이 나와는 결코 접전이 없을 거라는 무언의 선으로 느껴졌어요.

'짝사랑인 거 알고 시작한 거잖아. 이제 와서 서운 한 거야?'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짝사랑의 무게가 버거워지고 있을 때 당신이 처음 내게 닿았어요. 내게 닿은 당신이 공적인지 사적인지 나는 알지 못했고,  묻지도 못했어요. 용기도 없었고, 내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에요. 그 일은 실수가 아니었고, 공적인 이유도 아니었어요. 당신도 내게 마음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짝사랑의 보상이라도 하듯 나를 너무도 빠르게 당신에게 빠져들게 했어요. 그렇게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 버렸어요. 당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거라곤 전혀 없이 말이에요. 내쪽에서는 사랑이, 처음이거든요.
나는 당신의 손길을 온전히 알아버리고 나서야 당신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그때, 당신에 대한 사랑은 글자로만 만들어져야 한다는 걸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마흔둘이겠지?'

그날은 궁금증이 용기를 이긴 처음이었어요. 마스크를 벗겨낸 내 손은  떨렸고, 마흔둘보다 훨씬? 많은 나이라는 반전까지.  반면에 너무도 앳된 당신의 외모는 어른 남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마저도 사랑이었어요. 아니, 온통 사랑이었지요.
그날은 나의 용기로 당신의 나이를 정확히 처음 알았던 날이 되었죠.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관둬야 해'

하지만 그런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당신이 내게 닿는 시간에 나도 당신에게 닿고 싶었어요. 그러나 여전히 용기는 없었고, 무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또 물었지요. 내가 당신에게 닿는 일은 단연코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날은 본능이 이성을 이긴 처음이 되어버렸어요. 또 심장이 쿵하고 소리를 내며 무너졌어요. 내 마음을 모른 척했어요. 접어야 하는 마음이었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마음은 계속 왔다 갔다 했고, 접어야지, 접어야지 마음을 다 잡아보지만, 나는 당신에게 계속해서 가고 있었어요. 머리와 마음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었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당신에게만 처음이라는 경험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어느 순간부터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고, 안 보고 싶은 순간도 없게 되어버렸어요. 그냥 당신이 너무 좋았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뿐이었어요.
그럴수록 더 깊은 늪에 서서히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어요. 당신이 너무 좋았거든요. 우습게도 당신이 날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 생각할 만큼이요, 당신과 함께한다면 영혼도 팔아버릴 만큼 사랑해 버렸는데 이게 늪인지 알 수나 있었겠어요? 그리고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방해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어요. 진심인지, 배려인지 구분 안 되는 말들이 매번 내 마음을 울렸고요, 내게 자꾸 눈꼬리 한없이 늘어뜨리며 웃어주고, 부드러움으로 무장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연민이라는 이유로 목도릴 둘러주질 않나,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웅을 하는 통에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겠냐고요.. 사랑이 처음이란 말이에요.  사랑은 안 주면서 로망과 낭만만 내게 잔뜩 주면 어쩌라고요. 내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당신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절대. 그저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고요.. 단지 나는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법 따위는 어디에도 없고요, 당신을 보러 가지 않아야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어요.
그럼에도 당신을 꾸역꾸역 보러 간다면, 내게 사랑을 주세요. 기어이 사랑을 받아야만 정리가 될 거 같아요. 그러니 당신을 보러 가면 사랑 비슷한 거라도 내놔요!!!!!!!! 달라고요!!!!!! 척이라도 해달라고요...
당신이 살면서 언젠가 단 한 번쯤은 나를 그리워하는 날이 왔으면 해요. 이렇게 당신을 원망하면서도 또 추억하고, 또 사랑해 버리는 내가 진절머리가 나요.



#봄과 함께 사라질 당신

만약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간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가족이 되어야겠다 가정에 울고 웃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머릿속은 당신과의 미래까지 상상하느라 쉴 틈 없이 분주해졌고요. 하객들의 축하 속에 당신과 손을 잡고 결혼을 하고요, 당신과 나를 반반 닮은 아이를 품에 안고 말이에요. 너무도 많이 한 탓에 퍽 지루해져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상상을 하냐면요, 지금 중년의 모습으로 같이 사는 상상을 해요. 얼마 전 하동에 갔던 날, 한적한 시골 풍경을 보고 그 속에서 당신과 둘이 사는 상상을 해요.
그동안 수고했을 당신은 한량처럼 편히 쉬어요. 내가 나가서 당신을 먹여 살릴 테니까요.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이든 나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 테지요. 당신과 함께라면 안 먹어도 배부르겠지만, 나는 많이 먹으니깐 돈 많이 벌어와야 해요. 앞에 말했다시피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에는 문제없어요. 여차해서 책이나 시집이 안 팔려도 괜찮아요. 당신이 좋다고 하면 노래하고 춤춰서 벌면 되니까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요, 저 춤은 잘 못 춰요.. 그래도 당신 하나는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으니 걱정 말아요. 베개가 없으면 내가 팔베개해줄 거예요. 이불이 없으면 내 온기를 당신에게 전부 줄 테고요. 테레비가 없으면 당신이 지루하지 않게 내가 당신을 웃게 해 줄게요.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할 틈도 없게 당신에게 로망과 낭만을 계속해서 줄게요. 뭐든 다 주고서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으니까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그냥 내게 마음만 주셔도 나는 그걸로 평생 살 수 있어요. 그래준다면, 더 이상 당신을 보러 가지 않고도 그 행복 곱씹으며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 나 좀 사랑해요. 조만간 당신은 나를 까맣게 잊고서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살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이대로 봄이 가면 당신에게서 나는 전부 사라지겠죠. 억울해요.

당신은 좋겠어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당신의 하늘이 무너질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거예요. 당신을 사랑하게 된 날부터 당신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겠다 다짐했거든요. 무너지지 않는 당신의 하늘이 되어드릴게요. 가끔 어두워도, 조금 궂은날도 있겠지만 절대로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런 날을 살게 할 거예요. 당신의 행복은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요. 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하늘을 보시라고요. 당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있는 내가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기다릴게요. 그게 현재든, 과거든, 미래든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어디론가 당신이 사라진다 해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게요. 영락없이 말이에요.  느닷없이 나타나셔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꽉 안아줄게요. 내가 당신을 어지간히도 사랑하나 봅니다. 지금도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당신이 오지 말라 한 적 없고, 내가 당신을 보러 가지 않겠다 한 적 없지만요, 어째서인지 당신이 나를 귀찮아하실까 봐 지겨워하실까 봐 겁이 나요.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면 나는 분명 상처받고 무너질 것이 너무도 명백하거든요. 그럼에도 당신을 보러 간다는 건 절대 쉽게 가는 것이 아님을 아시라고요.
보고 싶어요. 당신도 날 그리워하세요.
그래야 조금은 나도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쯤 쿨쿨 자고 있겠죠. 자고 있을 당신의 얼굴 만져 보고 오고 싶어요. 잘 자요, 내 사랑.
당신이 맞이할 하루가 안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