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1인칭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허구로 만든 창작물입니다.
#찬란했던 순간도 머무르지 않는다(1)
그를 처음 만났던 차가운 빛이 도는 사무실의 모습, 꿈쩍도 않던 늦여름이 조금씩 물러나고 있는 선선한 날씨, 각자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 나를 담당하게 된 그가 내게 공적인 인사를 건네는 모습까지. 그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의식은 다른 우주나 행성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그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자꾸만 마음이 그에게 흘러갔다. 처음 느꼈던 호기심은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니었다. 이는 똑바로 땅을 딛고 중력을 거스르고 서있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이었다. 나와 다른 모습이 닮고 싶었고, 부러웠다.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내게 자리 잡았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말과 말투,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여유와 성숙, 연륜에서 나오는 배려와 다정함. 그는 나의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향한 내 마음을 단순히 괜찮은 사람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기엔 너무도 서툴렀고, 동경이라기엔 속절없이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신을 만난 것처럼, 나는 그를 만났고, 그의 존재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날아와 박혔다. 그날 이후 나의 종교는 그였다. 그의 존재만으로 나를 쉽게 무너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했다. 신이 그러하듯, 그는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종교였으므로 그리 하였다. 신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신자처럼 나는 그의 곁을 맴돌았다. 무작정 그와 닿고 싶었다. 온 마음이, 온몸이 그에게만 향했다.
처음 신과 신자가 닿았던 날, 용기를 냈다. 그에게 향하는 마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글을 적기 시작했다. 마음을 적어낼수록 욕심은 걷잡을 수 없었고, 그를 소유하고 싶어졌다. 신의 사랑을 나만이 독차지하고 싶어졌다. 어느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잘 못 들어선 종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빠져나갈 의지를 잃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 듯싶다.
"나, 당신 사랑해요"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알아버렸다. 그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걸 보니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분명 티가 났겠지. 신이었으니까.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해요"
중립적인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에 나는 희망을 품기로 했다. 어쩌면 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내게 한 건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오해였다. 신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를 사랑했다. 나라고 해서 특별한 것 하나 없었다. 신과 닿았다 한들 변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내가 종교를 떠나지 못하도록 내 눈과 귀를 멀게 했다. 적당히 따뜻한 말씀으로, 잘생긴 얼굴을 앞세워 인자한 눈웃음으로, 은혜로운 손길로 나의 손과 발을 묶었다. 묶여있음에도 웃고 있는 이 어리석은 신자를 어찌해야 할꼬.
'신이시여,
신의 은총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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