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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65 에둘러 말하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 끝에 생선 가시가 박힌 것처럼 까슬히 사포처럼 까슬거려요. 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지만 영 거슬리고 신경이 쓰여요. 그건 당신이 내 곁에 없고,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아녜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시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나와, 당신이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살 것 같아서예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의 영역 밖의 일이지요. 날 사랑하지 않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아니,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사랑할 당신이 있다는 건, 내게 큰 행복이에요. 아마 당신도 새끼손톱만큼은 그럴 거라 생각해요. 평범한 일상 속, 다른 누군가 당신을 구구절절 사랑한다고 매일같이 고백을 하는 일이 어쩌면 당신에게도 피어나는 봄꽃처럼 로망과 낭만이 피어나는 일이 되었으면 해요. 당신에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더라도, 내 사랑이 당신에게 늘 응원이 되길 바라요. 그래서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당신이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면 좋겠어요. 내 사랑이 옳은 일이 아닌 건 나도 알아요. 그런데 이 사랑이 나를 살게 하고, 당신에게 응원이 된다면, 이 사랑을 접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는 말처럼요.
내가 없는 당신의 세상에는 낭만과 로망을 저 멀리 벗어던지고 살 것만 같아서 마음이 따끔해져요. 올곧고 바른 당신에게는 묵묵히 그러고만 살 것 같아서요. 그럴 것이 빤해 보여서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리광 부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당연하듯이,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사랑을 내놓으라고 떼도 쓰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모든 응석을 받아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늙어버렸어요 ㅠㅠ 당신이 나보다 한 열 살쯤 어렸으면 해요. 그러면 내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리되면 상황이 또 바뀌려나요? 아마 당신은 늙은 여자의 사랑 따윈 싫다며 도망 다니기 바쁘겠지요? 젠장. 차라리 지금이 내게는 더 상황이 나을 수도 있겠어요. 당신보다 조금 나이가 적으니 늙은 당신에게 목을 매는 편이... 그렇죠??   아마 늙었다고 하면 또 당신은 아니라고 잡아떼겠죠? 눈꼬리를 한없이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갛게 웃으면서 '안 늙었어요'라고 투정 부리듯이 말할 당신이 몹시도 그립고 보고 싶어요.
덤덤하게 써 내려가는 일기처럼 에둘러 말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당신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똥멍청이 당신은 절대 알리가 없죠.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연서.

내 사랑에 대답 안 하셔도 괜찮아요. 굳이 대답을 바라고 한 고백은 아니니까요. 그냥 읽고 흘려버리셔도 괜찮아요. 그냥 이렇게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쓰면 당신이 나를 한 번이라도 떠올려줄까 싶었어요. 과분한 욕심인 걸 알면서도 바랐어요. 아주 잠시 헛된 희망을 품었어요. 비가 오는 날은 당신이 와주실 것 같고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날은 우산을 주고 갈 것 같고 그랬어요. 그럴 리가 없지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럴 리 있다 생각했어요. 여전히 내 모든 걸 주고라도 갖고픈 게 당신이거든요. '편집장님'이 아닌 당신을 마음껏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서고 싶어요. 당신도 나를 '작가님'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러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요. 그 자리, 내게는 허락될 순 없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밤새 하염없이 비가 되어 내리고 싶어요.
비가 되어 내리면, 웅덩이가 되겠죠.
웅덩이가 되면, 고여있을 수 있겠죠.
고요 있게 되면, 드디어 나 당신을 비출 수 있겠죠.
그렇게 당신을 비출 수 있게 되면,
오로지 비춘 당신은 내 안에 있겠죠.
그렇게라도 당신을 갖고 싶어요.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건 더 이상 못하겠어요.
또 내가 가야겠지요.
당신을 보면 또 한동안 당신을 앓겠지요.
보고 싶어도 참아야겠지요.
그러다 또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 다짐해 버리겠죠.
또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가 결국 아프겠죠.
그러면 또 당신을 보러 가겠죠.
나는 매일 당신을 기다리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원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또 결국에는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마는....
나 얼마나 반복해야 할까요.
당신이 너무 좋지만요, 당신한테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고 싶어요. 그러나 결코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잘 자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