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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62 기억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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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습이든 사랑은 아름답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슬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에 더 애정이 간다. 비극적인 슬픈 사랑을 그려낸 이야기.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이 죽어 애통하다 해야 할지, 아니면 비극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아직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글이 참 예쁘기 때문인 듯싶다. 대사와 문장들이 직설적이지 않고, 비유와 은유로 아름답게 끌어간다. 탄탄한 스토리와 예쁜 문장들이 있기에 오랜 시간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가면무도회에서 첫눈에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가 원수 가문이라는 이유를 알고 절망한다. 철천지 원수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이 패기가 부럽기도 하고 그 용기가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회적 지위나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로미오와 줄리엣. 당당하게 자신들의 운명을 마주하고, 사랑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을 초월한 사랑에 나는 내 인생에서 주체적으로 잘 살고 있는지, 용기 있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속절없이 빠져버린 사랑, 번개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진 이들의 사랑을 불장난 같은 사랑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는 전부이다.
결국,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을 오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의 죽음을 발견하고 따라 죽음을 택한다. 이 얼마나 비통하고 애달픈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이 선택한 '사랑'이다. 분명하고도 분명한 사랑이었다.

#기억의 오류

"고등학생 때인가? 그때 떡집을 했었어요.  그때 산인지 들판인지 가서 쑥을 캤어요. 쑥떡 하려고요"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 상상력 풍부한 나는 바로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 마냥 동화처럼 아름답진 않았을 현실이겠지만, 푸릇푸릇 피어나는 새싹들 틈에서 오동통하게 겨울의 끝자락을 이기고 올라온 쑥을 캘 나의 어른남자가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어째서 분식점이 아니라 떡집 아들이 된 거지? 잠을 못 자서 그런 것인지, 과한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이 잘못될 리가 없는데;; 혹시 출생의 비밀이 있으신가?? 아닐 텐데. 착하고 순한 어른 남자에게 그런 가정가 있으면 안 되지.. 암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그가 떡집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를 만나지 못할 뻔했네. 휴~
큰일 날뻔했어.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가 쑥을 캐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쑥을 캐야 하지만, 그와 함께 이기에 봄소풍과도 같겠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그와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쑥을 캐 같은 포대에 담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가 지겨워 보일 때면 대신 캐주겠다고 말하면 초등학생인 나를 기특하다며 예뻐해 주겠지?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면 예쁜 들꽃을 꺾어다 그의 손에 쥐어주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주겠지? 그때 나랑 결혼해야 할 운명이라고 미래에서 왔으니 시간 낭비 말고 나와 사랑하자고 말해버려야지.
내가 그렇게 말해도 그는 싫다고 말 못 할 거 같다. 왜인지 그는 그러지 않을 거 같단 말이야. 고등학생이지만 부모님을 따라 쑥캐러 갔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예쁜 마음씨를 가졌는지 보여주고 있으니까.. 날 타이르고 어르고 달래주겠지. 그러면 내 전문 분야, 협박을 하는 거야. 나랑 결혼 안 할 시, 후회하게 될 거라고. 세상에 있는 쑥 전부 다 캐버려서 다른 떡집에 팔 거라고.. 떡을 만들지도 못하게 쌀 사재기 할 거라고..
여기 맛없다고 소문내버리겠다고 협박하면, 착한 그는 나를 만나주지 않을까? 방법이야 어떻든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한 일도 할 수 있다. 정 안되면 아빠한테 일러야지^^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다가, 내 나이 열아홉 살에 임신을 하는 거야. 열아홉 살 여름에 첫 생리를 했으니, 그땐 임신을 할 수 있을 거야. 하... 그땐 그는 20대 후반이겠네. 고등학생인 나를 만나줄까.. 썅. 떡집아들이건 분식점 아들이건 쉬운 루틴은 없네. 빌어먹을.

어긋난 인연이 내게 남긴 건, 사랑이라고 불릴 수 없는 서슬 퍼렇고 날카로운 슬픔뿐이다.

#쿨하지 못해도 이해해요

당신은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기에
누구에게든 사랑받을 테지요.
하지만, 당신이 받을 그 사랑이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만큼은 아니길 바라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요,
이번 생애에서 당신을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은
평생 나였으면 해요.

그래서
당신을 끔찍이 사랑했던 내 모습을
당신의 기억 속 한 조각으로 남아
종종 내가 떠올랐으면 해요.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당신이 나를 떠올려주기를 바라요.

사랑은 꼭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순거짓말이에요.
당신을 사랑하며 알았어요.
사랑은
만져지고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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