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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61 새벽이 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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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가 차다.
창문을 살짝 열어둔 탓일까, 아니면 마음 한구석이 이리도 시린 탓일까. '내가 오라고 하면, 내게 오실래요?'이 말을 못 하고 다른 말만 뱉고 돌아서 나온 내가 원망스럽다. 벌써 후회할 거면서, 그냥 뱉어볼걸.
새벽은 고요하다.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순간, 나는 그를 그리워한다.
매일 같은 일상 속에 그를 볼 때면 모든 게 달라진다. 나를 온전히 담고 있는 따뜻한 눈길에서 나는 그를 향한 어린아이처럼 솔직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사랑이다.
새벽은 참 이상해.
낮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이 시간만 되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짝사랑할 수 있음에 행복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웃을 때, 지겹고 빤한 안부 인사를 받을 때, 온기가 가득한 손길이 닿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내 마음 한편이 저릿하게 울리기 시작한 건.

"편집장님, 비.. 좋아하세요?"

마지막 멘트치고는 너무 올드하다.
'내게 오실래요?' 이 말이 혀끝에 맴돌다 삼켜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지막이라고, 마지막이니 말해라고 나중에 후회 말고 하라고, 나를 더 다그치기에는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1층에 도착했다. 사실은 단순한 말이 아니어서, 가벼운 감정이 아니어서, 쉽게 내뱉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감히 그에게 말할 수 없었는지도...

"비? 비, 좋아하죠. 제가 예전에 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비, 좋아합니다"

비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었다고...? 왜 나는 기억이 없는 걸까. 그와 함께 있으면, 심하게 뛰는 내 심장소리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탓이었을까. 아니면 잠을 자지 않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비를 좋아한다는 그의 대답이 그를 보는 마지막 대답으로는 퍽 만족한 대답이었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를 나는 몹시도 좋아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가 웃을 때, 그 순간이 내게는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정말 영원할 수 있는 걸까.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는 침묵해야 했다. 그를 사랑할수록 더 멀어져야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잃을까 봐 나는 더 철저히 숨겨야 했다. 시랑을 그에게 말하는 순간, 그 무게에 내가 짓눌릴 것이 분명하기에..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아플 거라고,  잔뜩 겁먹고 있었으나, 아직은 그를 만난 여운 탓인지 괜찮다. 하나, 다른 데 문제가 터졌다.
침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레 목이 아프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거기다 열은 계속 내려가지 않고 머물러있다.
단단히 몸살이 온 듯하다.
새벽 공기처럼 차가운 방 안에서, 뜨거운 몸으로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다. 오늘따라 창밖의 별이 유난히 멀어 보인다. 닿을 수 없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 어쩌면 지금 내 마음도 별 같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나는 어김없이 글을 쓴다.
문장 하나하나에 그를 새기며,
어쩔 수 없이 글을 쓴다.

일기예보에 잡힌 비,
당분간은 내리는 비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을 듯싶다.
비가 내릴 때마다
몹시도 아플 예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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