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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54 가난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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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마음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유한 사랑을 받으며 컸다. 부유한 사랑에도 그 틈으로 생긴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랑을 갈망하며 야금야금 채워나갔다. 그렇게 사랑을 애증 하는 중년이 되었다.

1층 2층 온 집안이 대리석 벽과 바닥이 있던 집, 샹들리에가 있고, 거실 한쪽에는 정원처럼 작은 연못과 소나무가 있고, 거기엔 대형 육지거북이가 살고 있었으며, 거실에는 골프가 취향에 맞지 않아 장식으로만 쓰이던 골프채들, 화장실엔 목욕탕이 있는 그런 집, 여름에는 에어컨이, 겨울에는 히터가 항상 과하게 틀어진 집에서 살면 서민치고는 잘 산다 기준에 부합하는 것일까.
학창 시절 집에 와본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이름보다는 '동네에서 잘 사는 얘'로  불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이런 집에 태어난 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갓 스무 살인 엄마와 스물여섯 밖에 되지 않은 아빠가 무슨 수로 집을 지을 수 있었겠는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다였을 텐데... 이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뛰어난 엄마와 현실적이고 행동파인 아빠가 만나 시대를 앞선 트렌디한 사업을 시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급성장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가족이 살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돈이 많이 벌게 되면 이곳저곳에서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시주하라고 찾아왔었는데, 그때 나와 동생이 노는 걸 보고는 스님이  '남자 손을 타는 엄마 사주를 닮았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무교였지만, 자식 일에는 사랑이 넘치셨던 분들이라 흘려들을 수 없었다 했다. 아마 그때부터 미친 듯이 운동을 시키셨던 거 같다.. 운동보다는 책 읽기가 좋았던 나는 아빠와 부딪히기 시작한 때였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것인지 두 손두발 든 아빠는 그때부터 나를 지켜주시기로 선택하셨던 거 같다. 그리고 몇몇 사건들로 예민해진 아빠는 결국은 나로 인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으셨다. 나는 죄인이었지만, 아빠는 괜찮다고 이야기하셨다. 이 일을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책잡힐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아주 강하고 우직한 아빠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 집을 팔기로 했다. 집은 금세 팔렸고,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듬해 공기 좋은 곳에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든 쉴 수 있게 가족의 보금자리로 말이다. 발 없는 말이 빨리도 퍼졌다.  '잘 사는 얘'에서 '현금 부자 딸'로 꼬리표가 바뀌었고, 별장을 짓고 있다는 소리도 빠르게 퍼졌다. 절대 부자는 아니었다. 서민치고는 조금 잘 사는 정도였으니까. 그런 꼬리표는 아빠 친구 아들, 엄마 친구 아들이 있을 때마다 '시집와라'라는 말을 들었다. 날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닌, 돈 때문이었다. 돈 많은 집의 딸에, 귀하게 자라 조신하다는 소리는 학창 시절 때 주야장천 들었다. 그 말이 그때는 정말 싫었다. 철이 없었던 거지.. 지금에 와서 왜 이런 말을 하냐고?

그는 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작은 사고이기는 하나 접촉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저렇게 날 보고 웃는 걸 보니 내 글을 안 보는 것이 분명한 듯싶다. 나에게 추호도 관심이 없다는 걸 증명한 셈이지만 말이다.. 반면에 내 마음을 모르는 그로 인해 그를 보러 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가볍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잘 사는지, 못 사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내게 보였던 다정함과 배려는 무엇이었을까.
남자의 손을 탄다는  그 쓸데없는 사주가 이유였을까..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석연치가 않다. 나는 또 그를 보러 가겠지. 부푼 마음으로 그를 보러 또 가겠지. 속도 없이 말이다.
차라리 내가 가난했으면 좋겠다. 그를 보러 갈 수도 없게...
내게 여유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목을 매고 그를 보러 가는 일은 없겠지. 차라리 가난했으면, 그를 감히 사랑할 여력도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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