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 시즌이 돌아왔다
매년 이맘때즘 친정에는 가족들이 모여 함께 김장을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는 필수이고, 김장은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녀인 나는 엄마와 같이 김장 준비를 한다. 여동생네는 같은 경남에 살지만, 조금 멀기도 하고 요식업을 해서 시간내기가 힘들다.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결혼준비로 한창 바쁘기도 하고... 사실 그전부터 딱히 김장에서 하는 일이라곤 "먹는 것" 뿐이다.

엄마와 둘이 김장 준비를 하는데,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몸은 고되다. 매년 김장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나도 버거운데, 친정엄마는 오죽하랴. 장보고, 재료 다듬고, 씻고, 갈고, 썰고... 이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에 손 많이 가는 일들이 모두 엄마의 정성이고 사랑이다. 고로, 김장이라 쓰지만 사랑이라 읽는다.
김장을 준비할 때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이른 아침, 시끌벅적한 부엌에서 이모들과 외할머니가 모여 김장 치대기 준비한다. 나도 돕고자 배회하면, 엄마는 딸이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곱게 자라기를 바라며 부엌에서 밀어내지만, 그런 엄마의 과잉 애정의 결과 서른 살 결혼 전에는 철없이 고운 딸로만 살았다. 엄마와 이모들이 양념을 채워 넣을 때면 나는 그 사이에서 잘 절여진 노오란 배춧잎에 빨간 양념을 올린 쌈을 커다랗게 싸서 내 입에 넣어주는 걸 나는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자리를 옮겨가며 제비마냥 받아먹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김장할 때 "아이고~" 소리를 그냥 추임새 마냥 흘려들었다. 정말 철이 없었던 거지.
지금은 내 입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기분이 묘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데 상황이 달라져서 오는 묘한 감정이랄까?

해마다 겨울의 길목에서 주부들은 김장을 한다.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인 김장은 우리들의 식탁을 오랜 시간 묵묵히 지켜왔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해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김장의 노동력만큼은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내리사랑은 똑같다는 걸 의미할까. 아마 또 하나의 이유로 '맛' 때문일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김치 담그는 법 레시피가 난발하고 있지만, 지역마다 집집마다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원래 먹던 맛을 선호하다 보니 입맛에 맞는 김치를 수고로움과 고생을 감수하며 이어져왔다고 본다.

재료 준비부터 만만치 않다. 더 좋은 재료로, 더 신선한 재료로, 더 맛있는 걸로만 고집하는 엄마의 선택에서 '오케이'를 받으려면 장 보는 일부터 쉬운 일 하나 없다. 신선한 재료가 다 준비되고 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노동의 시간, 바로 배추 절이기 시간이다. 단순하게 말해,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수분을 줄임) 발효시키는 과정이다. 대부분 배추 절이기가 김장에서 제일 힘든 과정일 것이라 본다. 요즘엔 절인 배추도 판매하지만,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본인이 먹을 배추처럼 깨끗이 하지 않는다며 항상 고집을 꺽지 않으시고 살아있는 생배추로 하신다. 그 덕에 나만 죽어난다.... 다듬고, 채 썰고, 갈고, 깎고, 자르고의 행위는 배추 절이기에 비하면 껌이리라, 분명.

친정에서 김장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품앗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시댁은 나와 어머님 둘이서 100 포기 한다. 비장한 각오 없이는 김장하기 힘들다. 다들 식탁에 올려진 김치를 입속으로 넣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누군가의 눈물이고, 누군가의 정성이고, 누군가의 사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댁의 김치는 나의 눈물이기에...

하.... 다라이 아래에 있는 배추와 위에 배추가 절여짐 정도가 다르니, 배추의 위치로 바꿔주는데 이건 다음 해야 할 일에 비하면 큰일이 아니다. 소금물에 절인 지 총 여섯 시간 지난 후 소금물에 있던 배추를 헹궈내는 일을 하는데 여기가 헬이다. 씻고 건져내고 씻고 건져내고... 끝도 없다. 허리를 피자니 엄마가 더 고생할 까봐 피지 못하고, 엄마는 딸이 고생할까 봐 허리 한번 피지 못하시고 헹구고 건져내기를 무한 반복하다.
"아이고", "에고" 곡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엄마입에서,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친정은 욕실에서 해서 춥지는 않다만, 시댁은 주택이고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라 더 춥고 시리다. 손과 발의 감각마저 잃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이제 큰 산은 하나 넘은 셈이다. 반나절 정도 물기를 뺀 뒤, 뒷날 아침에 절인 배추에 양념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한 가지 빠졌다. 양념!

가을무는 산삼보다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항상 무를 많이 넣는다. 채 썬 무, 쪽파, 새우, 생강, 마늘, 청각, 김, 멸치액젓, 까나리 액젓 그리고 디포리와 다시마 무, 양파, 버섯을 넣어 끓여서 식힌 육수, 마지막으로 찹쌀풀을 넣고 모든 재료를 골고루 잘 섞어 하룻밤 숙성시켜 준다. 그러면 뒷날 무에서 나온 수분으로 치대기 좋게 양념이 완성된다. 우리 가족 입맛에 딱 맞는 김장 양념이 만들어지면 깨소금을 뿌리고 치대기 준비를 한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품앗이해줄 할머니와 이모들이 모이면 치대기 시작. 시간이 맞으면 엄마의 사위들이 돕는다. 잘 절여진 배추에 엄마의 비법 양념과 어울려, 서로 간에 배면서 배추에서 김치로 탈바꿈된다.
배추 속 하나를 뜯어 그 위에 올린 뒤, 사위들 입속으로 넣어준 뒤 내 입에도 쏙 넣어주신다.
"어떻노?"
"진짜 맛있습니다. 장모님 완전 짱입니다요!!"
제부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말한다.
"장모님 김치가 맛이 없을 리가 없지예^^"
남편도 대답한다.
"올해 김장도 대성공이다"
나도 배추를 입 안에 가득 문 채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역시 맛있다. 이렇게 재료준비부터 손질까지 엄마의 희생과 정성이 들어갔는데 맛이 없을 턱이 없지만, 엄마의 김치는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사실 매년 같을 수 없을 텐데 한 번의 실패도 없는 것이 참말로 신기하다. 레시피야 늘 같지만, 채소의 특성상 매번 같을 수 없다. 날씨와 기온이 달라 배추 속도 덜 차기도 하고 꽉 차기도 하고, 또 배춧잎의 두께도 일정치 않다. 그리고 속 재료도 중량을 재어서 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눈대중으로 간을 하고 양념을 준비하는데 항상 맛은 매번 일정하다.

물기가 잘 빠진 깨끗한 배춧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골고루 채워 넣는다. 감독하시는 엄마의 잔소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속을 많이 넣으면 김치가 지저분하고, 김치가 빨리 익는다. 반면 속을 적게 넣으면 싱겁고 간이 안 밴다. 엄마 눈에는 사위들과 딸들의 김치 속 채우기 즉, 치대기가 당연히 어설퍼 보이고 서툴 것이다. 그래서 각자 집에서 가져온 김치통 2통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영 아니다 싶으면 아웃되기도 한다. 배추 속을 적게 넣던 남편이 자리에서 아웃당하고 내가 대신 투입되었다. 결국 남편은 허드레 일과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각자 통을 채우면 김장은 끝이 난다. 그러나 뒷일도 만만치 않다. 무거운 다라이 씻는 것도, 여기저기 틘 양념도 닦아야 하고 설거지도 많다. 이 일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냄비를 2개 꺼내 수육을 준비한다.
다들 입맛이 다르므로 앞다리살, 삼겹살, 오겹살 골고루 넣어 엄마의 레시피에 맞춰 된장, 월계수잎, 생강, 마늘, 소주를 넣고 푹 끓인다.

그렇게 온 집안을 수육 냄새로 진동하면 뜨거운 고기 덩어리를 칼로 써는 엄마의 비명? 이 간간이 들린다.


드디어 먹을 준비도 마쳤다. 입맛이 다 달라 굴을 넣어먹지 않는다. 취향에 맞게 각자 굴이나 수육 그리고 전복과 새우구이, 문어등을 준비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먹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제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다.

김장이 만들어낸 맛과 향, 그리고 가족의 정이 잘 아울 어진 하루는 큰 행복을 준다. 김치 하나로 이렇게 모여 웃고 떠들고, 행복을 나누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또 이렇게 소중한 추억 하나가 남는다.
하얀 쌀밥에 수육과 김장김치를 한거석 올려 한 입가득 채우고 나면 그제야 김장의 노동으로 힘든 몸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한다. 그래도 여전히 몸을 일으킬 때마다 "아이고~"소리가 난다. 특히나 뒷날엔 더 하리라. 그럴 땐 김장 김치는 또 먹으면 견딜만하겠지.
이렇게 친정의 조금 느리게(안단티노), 여유 있는 김장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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