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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66 안주필요없어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과 상황들이 숨 막힌다.
그 이유는 그래야만 하는 위치니깐.
일관성 있게 그에게 향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사랑이다. 처음 하는 사랑이라고 해서, 혼자 하는 사랑이라고 해서 결코 작지 않으며, 단언컨대 서툴지 않다. 처음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내 사랑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며, 짙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는 나와 사랑 없이 사랑을 하면서 서로를 지칭하는 그 어떤 것조차 없다. 그와 조심스레 혀를 섞다가 그의 낮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날 내려다보는 그가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눈빛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혀 짐작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을 만큼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사랑을 바라고 있는 내가 어이없게도 한심하다.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게 좋은 의미를 가졌든 아니든 간에 그저 그가 날 보고 있어서 좋다.
갖고 싶다.
벌어진 내 입술 틈 사이에서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지독하리만큼 집요하게 입 밖으로 나가는 걸, 나는 그를 깊게 빨아들이면서 그 말을 겨우 삼켜낸다.
그가 내뿜는 따뜻한 열기와 나에게서 나오는 열기가 그 호흡이 서로 같다는 생각에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와 나는 우리라는 지칭대명사조차 쓸 수 없는 관계이다. 작년 초가을에 만나 어느덧 다시 찾아온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 끝에 아슬아슬 서있는 위태로운 나. 그러나, 위태롭지 않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는 분명한 갭차이는 있으니깐.
  진심인 내 사랑과 진심 없는 그의 사랑을 내 마음대로 합리화시켜버렸다. 그는 내게 진심이 아니니 잠시 이곳에 머물러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 이 엉터리 합리화 속에서도 그를 향한 끝없는 바람은 멈추질 않는다. 그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을 말하는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을 부여잡고 말았다.
또 한 번 직감했다. 사랑해서 선을 지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내게 활력이 되고, 그 어떤 소설 속 스토리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지난날, 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하며 웃었다. 아무렇지 않아야 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의 진심은 그러질 못했다. 샘이 났다. 질투가 났다. 대상도 모르면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그래서 콩알만 한 죄책감이 생겼다. 밤마다 울었다. '우리'라는 따뜻한 대명사가, 처절한 소유의 관형사가 전부 내 것이 아님에 마른침을 삼켰고,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콩알만 한 죄책감을 이겨내기에 술의 기운을 빌리는 것만큼 좋은 선택은 없었다. 그래서 술을 배우고 있다. 그는 내게 깡술만 마신다고 말했지만, 내게도 좋은 안주가 있다. 너!!
진짜 하마터면 그에게 대놓고 '깡술만 마시지 않아요. 너 있잖아요'라고 튀어나올 뻔했다. 잘 참은 나 아주 칭찬한다.


우리 지금처럼만 지내요.
딱 이 정도 거리에서 오래 보고 싶어요.
우리 사랑 없는 사랑 해요.
딱 내가 편집장님이 미워 보일 때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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