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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91 가을이 오면


작년 딱 이맘때쯤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 기억이 뇌리에 박혀 가을이면 그가 내게 온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아는 그리움으로 가을이 내게 온다.

잊어도 잊히지 않는
보아도 보이지 않는
애써 밀어내도 밀리지 않고
애써 걷어내도 걷히지 않고
온통 그로 가득 찼다.
어른 남자는 가을을 닮았다.

긴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나의 지루하고 무료한 긴 시간에 시원한 바람 한 점이 가져다준 사랑이었다. 누가 감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것을 막을 자가 있겠는가. 나 역시 내 마음에 부는 가을을 두 팔 벌려 환대하며 맞이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진한 초록색들이 점점 연해지기를 자처하더니 이제는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고 이내 붉게 물든 단풍에 결국은 마음을 뺏기고 만다. 나도 그렇게 그에게 스며들었고, 그리고 나는 그에게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울긋불긋 펼쳐진 단풍길에 가을바람으로 떨어진 낙엽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유혹에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가을이 다시 돌아 내게 왔고,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손끝에 닿은 가을의 온기가 흩날리는 낙엽처럼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온전한 가을을 느끼고 싶다.
나에게 가을은 쓸쓸함이 묻어나는 고독한 계절이 아니다. 그를 향한 애틋함이 진해지는 계절이다. 나에게 가을은 다른 가을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