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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93 첫눈에 반한



나는 연애 소설을 쓰는 작가지만, '첫눈에 반하다'의 표현을 썩 좋은 의미로 보지 않는다. 살면서 딱 3번 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그 말을 내뱉는 타인이 경멸하게도 싫었다. 그 이유는 성적 관계를 갖고 싶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맞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남자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여고생이었을 때 나를 잘 따르던 동생이 자고 있는 나의 교복을 벗기고, 밀어내려는 나를 강한 힘으로 눌렀던 그날이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대학생 때 고딩에게 첫 키스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움켜쥔 가슴을 만진 강한 힘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일로 불안감이 높은 나는 남자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아마 상담치료를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단연코 첫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나는 어른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내 인생에서 첫눈에 반한 최초의 이성이 바로 그이다. 나에게는 절대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라 취급하고, 소설이나 영화가 만든 예술적이고 상업적인 유희라고 생각했었다. 그를 처음 보고 첫눈에 반하다의 의미가 나에게 새로 부여되는 계기가 되었다.
첫눈에 반하는 일이란, 상대를 보는 순간 엄청나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일과도 같았다. 정말이지 믿지 않겠지만 시간이 순간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강렬한 감정은 한동안 나를 뒤흔들었고, 한동안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그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라 결론 내렸고,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임이 분명하기에.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첫 만남이 절대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그런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거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에겐 첫 만남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 머리만 숙여 인사한 게 다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시기라 그의 눈만 보였었고, 그 눈은 공적인 관계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인위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던 듯 하지만 그 마저도 나는 좋았다. 그게 첫 만남의 모든 것이였다. 심지어 그때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한눈에 반할 동화 같은 멋진 의상과 분위기는 전혀 없었음에도 나는 그의 모습에 홀딱 반했다.
그리고 이 날 나는 '사람 볼 때 외모 안 봐 '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 외모 보더라 ㅋㅋㅋㅋㅋ
누군가 이런 나를 보고 그 사람 외모만 보고 좋아한 거네?라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사실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성숙하고 좋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딱히 특별할 거 전혀 없는 그와의 시간이 점점 기다려졌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마음을 홀딱 뺏겼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내가 사랑한 처음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