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익숙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안전한 것을 추구하고 선호한다. 그 이유는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불안과 강박을 갖고 있으며 결벽증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 익숙한 공간, 익숙한 향기, 익숙한 길, 익숙한 옷과 구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나를 잘 못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는 나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하지 않은, 어쩌면은 나에게 낯선 그가 너무도 좋은가 하면, 예측할 수 없는 행동과 말에 설레기도 하고, 자체 검증(?)되지 않은 그의 청결 따위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예측하지 못할 일이 이렇게 가슴이 부푸는 일인지 평생 모르고 살았으며, 낯선 이의 손을 더 바라게 되는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서른 후반의 나이를 사는 나로서는 모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는 그가 나처럼 가면의 일부분일지도 사실 모르는 일이다. 이제 겨우 그의 나이를 알았으니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그가 이토록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사과 인형 이미지가 강하다. 순하고, 유순하고, 양순하며 착하고 말랑말랑한 그런 느낌. 그의 얼굴에 관한 표현이다. 실제 그의 외형적인 외모는 순한 강아지? 강아지 치고는 나이가 많으니 순한 개? 같다. 어감상 좋지 않네. 여하튼 그의 순한 외모와 반대로 몸은 나이에 비해 잘 관리되어진, 다부지고 단단한 체형을 갖고 있다. 몸과 얼굴은 서로 대조적이리라.
내 주위에는 강한 사람들이 많다. 몸만 강한 사람들이 아닌 멘탈까지 강한 사람들 속에서 순한 얼굴에 유순하고 양순한 그가 묘하게 나를 자극시킨다. 마치 내가 그를 내 쪽으로 당기면 끌려올 거 같은? 절대 나보다 힘이 약하거나 줏대 없는 사람으로 비친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내 체감상 느끼는 바에 따르면 한마디로 내가 손 뻗으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의 오만과 자만일 테지. 작가임에도 그를 향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게 퍽 쉽지가 않다. 아마 시나리오를 단순히 짜내는 것보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편이 더 힘드리라 생각한다.
강한 자들 속에서 살아온 내가 순하디 순한 얼굴을 가진 그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같은 건가? 아니면 강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순한 얼굴의 그를 쥐락펴락 해보고 싶은 걸까? 사실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만, 정확한 건 그의 순하고 양순한 외모가 나를 자꾸 끊임없이 자극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를 갖고 싶다,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약간 죄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그가 결코 어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무슨 느낌이냐면 나보다 어린 남자한테 이런 마음을?? 하는 그런 마음말이다. 나보다 그는 나이가 많으신 어른 남자고, 하루에 3끼의 밥을 먹는다 치면 그는 나보다 밥을 무려 8,760끼를 더 먹은 남자다. 겉으로 봤을 때 강박과 불안 또는 결벽증이 없는 걸로 보아 연애경험이 아예 없는 나보다는 있을 법인데 왜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분이 드는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수더분한 그의 외모가 나에게 호감으로 다가왔다의 정도로만 생각해야 되려나.
#어제 늦은 저녁
연애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내 주위 사람들은 곧잘 나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한참 듣다가 "이거 썸이지? 맞지?" 물어보면 나는 "나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어.. 자랑하는 거야??"라고 하면 그제야 친구는 "아, 너 모태쏠로지 미안"으로 끝나는 일들이 많았다.
내 친구 중에 결혼을 안 하는 아니, 정확하는 게 못한 친구가 셋이 있다. 여자나이 서른 후반에 결혼할 상대는 40대 초중반 남자일 것이다. 그런 남자들 중에 탈모 없고, 이가 누렇지 않고, 배가 안 나오고, 뚱뚱하지 않은 중년 남자를 찾기란 바다에서 바늘찾기. 맞선을 보고 오면 항상 술 마시고 전화하는 친구가 있다. 첫마디가
"내 예비신랑은 지금 태어나기는 했냐고!!!! 어디 있냐고"
"또 선봤어?"
"엉 또 봐야지 매일 봐야 시집갈 거 아냐 ㅠㅠ 예삐야 자는 데 내가 깨운 거 아니지?"
이 친구는 항상 내가 예삐다 ㅋㅋㅋㅋ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마음이 이쁘다고 그렇게 부른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고, 부족함 없이 자라서 베푸는 네가 부럽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이쁘다고 붙여진 별명. 예삐. 그렇게 안 부르기로 했지만 술만 마시면 그렇게 부른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예비신랑 같아 보이면 데리고 와달라는 그녀.
"내 예비신랑이랑 비슷하게 생긴 남자 보이면 목덜미 잡아서 끌고 와줘 ㅠㅠㅠㅠㅠ"
"어 ㅎㅎㅎ 그럴게. 우찌 생깄는데"
"um... 키는 180이 넘어야 해. 난 니처럼 땅꼬마가 아니니까 그러고 손이 보드라워 야해. 거친 손은 잡기도 닿기도 싫어. 또 잘생겨야 해. 다른 친구들 앞에 당당히 소개해줄 수 있을 만큼. 코가 오뚝해야 돼. 난 성형해서 예쁘지만 2세는 아빠라도 닮을 수 있게. 이게 어려워!??
내가 많이 바라는거야?"
친구가 예비신랑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가 떠올랐다. 큰 키에 오똑한 코, 보드라운 손. 왠지 그를 말하는 듯했다.
"그런 남자는 벌써 다른 여자가 채갔겠지. 임자 있지 않을까?"
"근데 이게 다가 아냐. 내 예비신랑은 근육질까진 아니라도 건장해 보였으면 좋겠어. 나이도 많은데 비실하거나 뚱땡인 건 정말 싫어!!!!! 그리고 사람이 유했으면 좋겠어"
정말 딱 그를 보고 말하는 듯했다. 누가 봐도 그의 겉모습이었다. 왠지 나의 그를 낚아채갈 수도 있겠다는 묘한 기분이 사로잡혔다.
"그런 남자 찾다가 결혼 못해. 너한테 진심인 남자를 찾아. 그래야 네가 편해"
"나 그냥 혼자 살까? 나중에 나 독거노인 되면 나 보러 올래? 실버타운 나랑 같이 갈래?"
"너 근데 어디야? 데려다 줄게. 많이 취했어"
"나? 길바닥이야 예삐야 넌 자. 밤눈도 어두워, 길도 몰라 누가 누굴 데릴러 오겠다는 거야!!!!!! 고마자"
"혼자 갈 수 있겠나?"
"어 당연하지. 우리 내일 얘들 불러서 모일까? 금요일이니까? 추석 전에 함 보자"
"그래, 내일 단톡에 이야기해 보자. 일단 어서 들어가고 도착하면 문자나 톡해놔 걱정하니까"
"예썰"
#오늘 사무실
아니나 다를까 출근 전부터 단톡방은 활기를 띠고 있다.
결국 오늘 밤 시간되는 사람들은 만나기로 확정.
나는 나가지 않겠다 했지만 맨날 빠지는 내가 이번에는 얼굴 좀 보고 살자고 한다. 그리고 나는 꼭 가야만 한단다. 결혼한 친구 남편들 사이에서 날 바른생활사나이?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모임에 내가 나가면 날 핑계로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데 그런 핑계까지 만들어야 해? 너네 어찌 놀길래 그래??? 친구 결혼식 때 얼굴만 보고 헤어져서 아쉬웠는데 놀다 오자 싶어 간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 아홉 시 반에 나갈 수 있으니 9시 반쯤 되면 장소와 주소를 보내달라 하고 단톡 알람을 껐다.
가족모임, 회식이 아닌 진짜 오랜만에 자유다.
오늘은 행복한 일들이 많다.
다음 주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을 약속 잡았고, 오늘 저녁에 백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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