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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34 가면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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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사랑은 그렇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몰래 키워온 사랑.
그의 숨은 여자로 살아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를 먼발치에서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만큼 그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져있다. 그에게 뭘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은 전혀 없다.
그는 지금처럼 그의 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한다. 그 길을 가다가 혹여나 힘들 때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뒤에서 내가 그를 보고 있겠노라고. 그렇게 그는 나를 보고, 그를 보는 나로 만족한다고. 사랑을 핑계로 누군가의 인생을 독점하고자 한다면 그게 사랑이 맞을까? 내 사랑이 그에게는 잔인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내 사랑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그렇게 만든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날 기억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의 마음에 내가 조금이라도 살아 숨 쉬었으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로 가득 차 있다.
내 유일한 사랑. 내가 하는 사랑은 슬픈 사랑이다.

여자 나이 서른 중 후반.
매일 똑같은 일상이 주는 평온함이 지루함으로 다가왔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삶이 꽤 오래 지속될 거란 불안한 예감이 가득할 때였다. 마흔이 되면 더더욱 이런 감정이 심해질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 공허함을 채워줄 그가 나타났고 이끌리듯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를 사랑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들과 봇물 터지 듯 일어나는 마음의 일렁임을 주체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안전하고 바르게 쳐진 울타리 속에서만 고이 자란 나로서는 그와의 만남은 강렬했고, 혼자 하는 사랑이긴 했지만 나름 나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그를 사랑하면 할수록 나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임을 알았다. 부모님이 키워주신 대로 괜찮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많은 가면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가면을 벗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가면을 벗은 날이 그와의 만남에서의 일이었다. 짜릿했던 경험이었다. 그 경험은 중독될 만큼 강력했으며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별 볼 일 없는 평탄한 삶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면을 다시 써야 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가면을 벗은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첫 남자와 나의 관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틈이 생겼다. 마치 가시를 숨긴 장미가 가운데를 가르기 시작했다. 사랑을 품고 살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욕심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랑을 막 시작할 때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잠시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사랑이 커질수록 탐욕이 생기고 욕심이 생긴다. 사랑하면 갖고 싶고, 탐하고 싶은 감정을 자연스레 넘기면 될 일을 굳이 가질 수 없다는 그 현실의 결과만을 두고 괴로워하고 있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쭈욱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나에게서 그를 끄집어내어 충분히 사랑을 할 수 있는 나를 만끽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굳이 억지로 멈추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를 품고 살려고 했다. 마치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심처럼 말이다. 팬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니. 내 마음 한편에서 키다리아저씨처럼 꺼내서 맘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 줄 모르고 살았다. 그를 혼자 짝사랑하며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이,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갖고 싶은 걸 쉽게 가지며 살아왔던 탓일까. 그를 가슴으로만 품고 사랑하기에는 내가 그릇이 작은가 보다. 그럴 수 없음에 분명하게 알고부터는 그를 내 마음속에서 정리해야 한다. 힘들어도 그를 내보내야 내가 산다.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그에게서부터 잘 도망쳐야 한다.
잘 도망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충격요법이다. 그에게 고백을 할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황할 것이다. 자기 방어적으로 날 밀어내려고 할 것이고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상처를 받을 것이다. 상상만 하던 현실의 벽을 실제로 부딪히게 되면 나의 사랑도 한풀 꺾이리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이다.
이렇게 그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해지면 해질수록 또 한편에는 그를 원하는 마음이 불쑥 피어오른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를 나에게서 보내줄 터이니 내가 그를 취하는 건 맞는 이치다? 한 번을 취한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더 많은 걸 바라겠지. 그래 나는 분명 그럴 것이다.
나의 날 것을 더 보여주기 전에 가면을 써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나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서 잘 도망쳐보길 행운을 빌어본다.


#미련하기 그지없다

운동 많이 하는 나를 가벼운 근육통으로 생각하고 아침에 또 뛰었고, 허벅지의 통증은 어제보다 더 심해졌고 아랫배까지 아팠다. 안쪽 허벅지의 밤꽃은 화장으로 가리고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결국, 근감소증으로 인한 내전근건염 진단받았다. 당분간은 절대 달리지 말라고 하셨고 더불어 살이 왜 더 빠졌냐고 다른 검사도 해봐라 권하셨지만, 차마 상사병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주사 맞고 약처방받고, 물리치료는 원래 다니던데서 받겠다고 하고 나왔다.
그를 보러 갈려면 살부터 좀 찌워야겠다. 늙어 보여 ㅜ
달리지 않으면 금방 찔게 분명하다. 난 많이 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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