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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88 비와 당신


"먹고살만해서 그래. 사랑 타령이나 하고"

언니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인데, 이 문장이 자꾸 맴돌아요. 당신을 쓰고 있다는 건, 여유가 생긴 걸까요. 아니면 마음이 비어있다는 뜻일까요.

"45년 살면서 낭만과 로망 믿고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너뿐이야"

사람들이 점점 '합리적인 사랑'을 하는 이 시대에, 나만 아직 낭만, 로망, 설렘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사랑도 전략이어야 하죠. 맞아요. 자신의 조건을 입력하면 거기에 부합해 직업, 소득, 키, 외모, 학벌, 종교 등 객관적인 사실을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고요. 내가 볼 땐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계약이에요. 나요, 뜬 구름 잡는, 주야장천 사랑만 쓰는 작가지만요, 나도 알고 있어요. 감정만으로는 모든 걸 버틸 수 없다는 것을요.
가끔, 스스로에게 말해요. '사랑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고요. 그런데요, 그게 안 돼요. 사랑은 그게 안되더라고요.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계획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어요. 계획대로라면, 당신을 진즉에 보러 가지 않아야 하고, 회사도 퇴사하는 거예요. 지금 봐요. 퇴사는커녕 당신을 보러 갈 일만 생각하고 있잖아요. 나는요, 여전히 비효율적인 감정을 믿어요.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당신의 다정함을 따라가고, 당신의 눈빛과 목소리에 서서히 빠져드는 감정을요. 아마도 이건요, 지독히 계산적인 시대를 조금이라도 숨 쉬게 만들어주는 나의 꼰대적인 반항일지도 몰라요.
사실은요,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말이에요. 그때 말이에요.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내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먹고살만하다고 해서 사랑 타령이나 하는 뜬구름 잡는 작가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요.
시작하지 못했고, 이미 끝나버린... 그렇지만 여전히 유효한 사랑. 설렘보다는 망설임이, 고백보다는 침묵이 더 가까워요.  다가가지 못했던 날들과 닿지 못한 마음,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조심스럽고,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확연한 사랑. 아련한 그리움으로 내게 머물러 있지만,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은 당신을 오늘도 그립니다.



#"당신이 불행하길 바라요"


처음엔 하루만 사랑하기로 했어요. 그냥 단 하루만이요.
그러다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한 계절이 지나가고, 그렇게 두 해가 지났어요. 이제 당신 없이 하루도 살지 못하게 되어버렸어요.
당신을 짝사랑하면서 모든 거리에서 당신을 찾아 헤맵니다. 나의 눈동자가 이리도 바빴던 적이 전에는 없었어요. 단연코 말이에요. 당신을 찾는 눈은 결국 당신을 찾지 못해 공허한 눈만 덩그러니 남아있어요. 당신이 불행했으면 해요. 당신이 불행해져 내게 오고 싶어 하셨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으니까요. 여차하면, 당신을 데리고 도망갈 수 있어요. 여차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니, 행복하세요.
비염이 있는 당신에게 따뜻한 작두콩차 건네주는 다정한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거 맞지요? 반주를 즐긴다는 당신 앞에 앉아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죠? 성미가 급해 자주 다친다는 당신을 위해 연고를 발라주는, 그런 사람인 거죠?
퇴근하는 당신을 오늘도 수고했다고 다정히 안아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착한 당신의 기분을 자꾸 들여다보는 섬세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당신에게 사랑과 애정을 마구마구 주는 사랑 많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막내잖아요...^^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을 혼자 두지 않았으면 해요. 외롭지 마세요. 외롭게 하거든, 내게 와요^^ 나는 절대 외롭게 하지 않을 자신 있으니까요. 당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양껏 사랑받으며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반면에 당신이 불행하길 바라요. 나 없이 행복할 당신이 조금은 얄밉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  앞으로도 사랑할 것들,  끝내놓을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아프기도 한 것들을. 비와 당신.

비가 내릴 때마다 불행하세요.
비가 내릴 때마다 날 생각하세요.
비가 내릴 때마다 슬퍼하세요.
비가 내릴 때마다 외로우세요.
비가 내리면, 당신에게 가고 싶어 단단히 안달 난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세요.
내게 와주세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