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2-4 우리의 배팅은

#결혼은 도박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머리를 암만 굴려도 결국은 불확실한 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나 때만 해도 여자 나이가 서른 넘으면 마치 여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했다. '결혼적령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어쩌면 결혼 안 한 여자가 서른이 된다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결혼 선택을 알게 모르게 강요받은 건 아니었나.. 하고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혼 생활이 어언 십 년이 되어간다. 29살의 나와 현재의 내가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금의 나는 결혼은 무조건 도박이라 생각한다.
30여 년을 따로 살다가 타인으로 만나 그 짧은 시간에 상대를 잘 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함께 하자고,  전부를 다 거는 올인을 선택한다. 얼마나 위험한 배팅인지 모르고 말이다. 주위 기혼자들이 해주는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충고와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당당히 흘려듣는다. 우리는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확신이 바뀌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상대의 패를 모두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완전한 속임수였음을 곧 알게 된다. 상대가 일부러 속인 게 아니라 연애와 결혼은 다르기 때문이다. 해서, 결혼은 자기 인생을 배팅하는 도박과도 같다는 말이다.
사랑에 빠져있지 않은 이상, 한 사람과 영원을 맹세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겠는가?
둘이 깨를 볶고 살아도 결혼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혼은 현실이다. 부부사이가 좋으면 고부갈등이, 고부갈등이 없으면 시누들이, 그게 아니라면 돈 문제, 잘 살아보려고 아둥거리다 전세 사기의 주인공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아이가 생기지 않고, 둘이 깨 볶고 살자 하면 덜컥 병을 얻기도 한다. 모든 결혼생활이 이러지 않겠지만, 그러나 결혼하고 몇 십 년을 같이 살면서 이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이 모든 풍파가 부부는 한쌍이므로 함께 휩쓸린다는 거다. 억만금의 행복과 화목이 오지 않더라도 버릴 패와 쥘 패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현재 우리의 배팅은 성공적일까.


#배려에 약한

둘째 아이를 힙시트로 업고 첫째 아이 등굣길을 나섰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르신은 한 마디씩 건넸고, 안면 있는 아이 엄마와 이웃들은 내게 물었다.

"아고.. 다리 다쳤나 봐요. 엄마는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아이는 너무 해맑아요ㅠㅠ"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결혼을 하면 많이 생긴다.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많아질지 줄어들지 조차 가늠할 수 없다. 둘째 아이가 발을 다치는 바람에 며칠간 유치원 등원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덕에 나도 덩달아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를 업고 가면 늦어질 것을 감안해, 유치원 차량 시간보다 5분 일찍 나섰다.  해서, 아기 아빠와 함께 등교하지 않았다. 일찍 나오면 뭐 하나, 결국 따라 잡혔다.  뒤에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같이 가!"

아기 아빠의 아들이 우리 아들을 불러 세웠다. ,

"안녕하세요. 연휴는 잘 보내셨어요? 어?? 다리는 어쩌다 다쳤데요?"
"냉장고를 찼어요"
"(아이를 보고) 아이고, 아팠겠다. 지금은 괜찮아?"
"응"
"응이 아니라 '네'라고 대답해야지"
"네"
"다행이다. 애기 엄마는  괜찮아요?"
"저요?"
"네, 허리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아저씨가 안아줄게. 이리 와~~"
"싫어!!!!!!"
"괜찮아요. 업고 가면 돼요"
"아저씨는 엄마보다 키가 커서 저 멀리 있는 곳도 다 보여~"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아이는 내 등에 더 찰싹 붙는 걸로 거절을 표했다. 다섯이서 학교로 향했다. 교문 앞에서 나를 한번 안아주고는 첫째 아이는 친구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안 힘들게, 운전하고 오시지 그랬어요"
"아.. 당분간 운전 못해요"
"주차장에 있던데요?"
"접촉 사고 나고부터는 무서워서요"
"그러시구나"

"아저씨랑 안고 가자! 목마 태워줄게"
"싫어!!!!!!!! 엄마 찌찌 만질 거야"
"다섯 살 형아인데 찌찌 만져?"
"엄마가 아플 때는 만져도 된다고 했어!!!"

민망했다.

"그럼, 아저씨랑 젤리 사러 가는 거, 어때?"

고민 한번 없이 단숨에 팔을 벌려 아기 아빠에게로 향했다. 서운했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낯선 사람이 젤리로 유혹하면 따라갈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기 아빠는 둘째를 높이 들어 나뭇잎도 만지게 해 주고, 비행기처럼 재미있게 소리까지 내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엄마, 젤리 2개 사도 돼?"
"아니, 하나만!"
"그래, 하나만 사고 다음에 또 아저씨가 사줄게"
"계산은 제가 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산다고 했는데 사줘야죠"

아기 아빠 품에서 젤리를 입안으로 쏙쏙 집어넣으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나서부터 계속 봐왔던 탓인지 낯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안긴 모습이 좀 낯설고 어색했다. 또래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 곧 잘 아이와 친해지는 듯했다. 나란히 걸어 아파트 앞 횡단보도 앞까지 왔다.

"얼마나 업고 다녀야 된데요?"
"지금 걸어 다녀도 되긴 하는데 안 걸으려고 해요. 아프니까.. 아마 일주일 정도는 소독하러 가야 해서 다음 주나 되어야 될 거 같아요"
"그럼, 내일 제 차로 가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아니면 우리 얘 등굣길에 제가 그쪽 아이만 데려갈게요"
"괜찮아요^^ 제가 가야 마음이 편해요"

그에게 신세를 질 수 없었다. 그리고 힘들어도 내 아이는 내가 직접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라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쪽을 선택했다.

"자, 이제 엄마한테 와. 아저씨 힘드시겠다"
"아파트 앞까지 가요"

신호가 바뀌고 다시 나란히 걸었다.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제 엄마 안아~ 집에 가자^^"

대답 없는 둘째를 안아 내 등에 업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들어가 보세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빠빠이~~"
"그래 빨리 나아^^"


남의 남편은 나를 배려해주었고, 내 남편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아이 오전 간식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자고 있는 남편 아침밥을 준비했다. 맞벌이 부부지만, 육아와 살림은 오직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