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에게 잠깐 내리고 그치는 소나기였어요.
갑자기 내린 탓에 비를 피할 생각도, 우산을 살 필요도 없는 그런 소나기말이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손에 쥘 수 없어 애가 타도, 끝내 내 가슴엔 울음이 되어 박혀도 괜찮아요. 당신을 잊고 사는 것보다 당신과의 좋았던 기억을 품고 사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해요.
당신은 나를 다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세요 (거짓말).
#기다림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창가에 머무는 아침. 햇살이 마중 나온 모습에 어김없이 당신을 떠올렸어요. 말끝마다 꽃송이 피어나듯, 웃음 사이마다 꽃내음 풍기듯, 당신과의 시간은 한없이 행복했어요. 그중 어느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당신과의 추억을 그리워해요. 보고 싶어요, 당신이. 너무요.
순간의 순간마저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당신에 관한 건 모두 말이에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을 거예요. 말하는 순간, 마음이 어디론가 흘러가버릴까 봐서요, 조금이라도 입 밖으로 나가면 당신을 잃을까 봐 그래서 나는 조용히 글을 쓰며 사랑을 말해요. 티 내지 않을 자신도 없지만, 당신을 보러 가지 않을 자신은 더 없으니까요.
당신에게 향하는 말을 아끼고, 마음을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밤마다 당신을 향한 고백을 써요. 당신이 전부 알아버려서 고백이 필요 없지만, 나의 글들은 수백 번, 수천번 당신에게 가닿아 사랑을 고백하고 있어요. 숨도 못 쉴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쓰는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거짓말).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당신을 적습니다. 문장 뒤에 숨어있는 당신을 향한 갈망하는 얼굴과 문장 끝에 붙은 가질 수 없는 욕망의 숨결이 당신만은 알아차릴 수 없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빙빙 돌려 글을 씁니다.

가끔, 아주 가끔은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게 느껴집니다.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다는 건_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건,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당신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들이 내게는 이게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렇게 '찰나'라는 이름의 시간에 '영원'이라는 거대한 꿈을 걸어버리기도 해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당신의 눈빛 하나가, 당신이 무심코 불러준 내 이름이, 당신과 함께 탔던 엘리베이터 알림음조차도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처럼 반짝여요. 모든 것이 바래지고 바래져 순간이 순간이 아닌 것처럼, 멈출 수 없는 시간 위에 고요히 멈춰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당신과 영원을 바라고 찰나를 붙잡으며 당신의 온기에 몸을 던집니다. 당신에게서 이미 나는 옅어지고 있겠지만, 그러해도 미련하게 당신을 보러 가는 나를 어리석다 말아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요. 이 순간은 끝난다는 걸.
영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다는 걸.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마음은 결국엔 조용히 식어버린다는 걸.
언젠가는 마음이 식을 거라면, 식어버리기 전에 그냥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게 허락해 주는 건 어떨까요? 혼자 사랑하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나 좀 봐주면 안 될까요. 내 사랑이 당신에게 도착할 적에 누구도 다치지 않을 무해한 사랑이라고 했잖아요. 영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느끼고 있는 나를 잠시만 놔두자고요. 이 찰나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죽어가는 나를 좀 봐주자고요. 시간은 흐르고 있고, 계절은 바뀌고, 사람은 잊히고, 사랑은 퇴색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당신을 지독하게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을 보러 갈 때마다 지금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마치 이 찰나가 세상 모든 시간이 멈춘 별처럼 빛을 낼게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요, 당신을 간절히 사랑하겠다는 말이에요. 도저히 나로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나더러 사랑하지 말라, 좋아하지 말라 한 적 없지만요, 지겨워하실까 봐 당신을 보러 가는 나를 미워하실까 봐 무서워요. 그런 눈치는 또 내가 기가 막히게 빨리 알아차리거든요.. 당신이 전부라고 사는 내게 그렇게 모질게 대하지 말라고요.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개똥멍청이.
좋아해요!!!!!!! 좋아하고 있어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마음이에요. 웃어넘기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고요, 진심이에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지경이에요. 나는요, 당신에게 거창한 걸 바라지 않아요. 그저 당신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요. 그거뿐이에요. 참고 참다가 당신이 너무 그리워 참아지지 않으면 그때는 당신 곁에 내가 잠시 머물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예요. 절대 귀찮은 몸짓과 표정을 내비치지 말고서 말이에요. 매일 빈틈없이 하루를 꽉 채워 당신을 그리워해요. 보고 싶고, 안고 싶고, 그냥 온통 당신으로 차 있어요.
#월요일 저녁, 야유회 뒤풀이
출판사님이 즐겨 듣는 노래는 부른 뒤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작가님, 88년생 아니고, 78년생이죠?"
"민증 보여드릴까요?^^"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는 출판사님 최애 노래다. 요새 것? 들 노래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그 노래를 불렀다. 내가 하는 사회생활은 이런 거다. 알랑방구 따위는 떨 수 없는 내 성격상의 이유다.
"야시는 야시야"
"왜, 잘 부르기만 하구만?"
"**씨, 여친 있어?"
"아직 없습니다"
"박작가 같은 여자 조심해, 야시야"
"언니!!! 나빠!!!!!!"
"박작가? 아이지, 야시는 아이다"
"그쵸 출판사님~~~!!"
"야시보다는 엄마 느낌이 강하지"
"에?? ㅡㅡ 이건 또 무슨 소립니까 ㅋㅋ"
"너네 박작가 초창기 때 모습 본 사람 몇 명 없지? 내 사무실 찾아와서 연재 중인 글 그만 쓰겠다고 울고불고했던 사건 아는 사람?"
"출판사님 ㅠ 또또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 하신다..ㅠ"
"그땐 지금보다 훨씬 뻣뻣했지.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능글맞아진 거야. 연재하는 날에 딱 맞춰 얼굴 보여주는 콧대 높은 신인작가. 나는 그때 기혼인지도 몰랐어. 박작가, 결혼하고 나랑 일한거제?"
"네, 맞아요^^"
"갑자기 내 사무실 찾아와서 눈 땡그랗게 뜨고, usb 책상에 올려두고 연재 중인 글 대충 완결까지 적어봤다고 그러면서 빨리 완결 내달라고 찾아왔지?"
"갑자기 왜 그랬데요?"
"그래, 들어봐. '박작가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더니, 펑펑 울면서 '내 아이도 못 지키는 제가 무슨 사랑 이야기를 계속 연재할 수 있겠어요!!!!!' 하며 울더라고? 내 입장에서 기가 막혔지. 기혼인지도 몰랐고, 임신을 했는지도 몰랐는데 내 앞에서 우니까.. "
"고만해요. 또 아 울리겠습니다"
"아니, 울릴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야시보다는 애엄마 느낌이 강하다고 이야기해 줄라 했지"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를 기어이 끄집어내셨다. 유산할 때마다 모든 화풀이를 글을 쓰게 한 출판사님을 찾아갔었다. 어리석었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가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그땐 누군가를 탓해야 했었으니까.. 반면에 출판사님을 많이 의지했기 때문이다. 내게 콩 한쪽을 더 주는 분은 아니셨지만, 나 자신에게도 없는 믿음을 출판사님은 늘 믿어 의심치 않다고 하셨다. 항상 감사하고 든든한 분이시다. 출판사계의 아빠??
"박작가, 나 whisky on the rock 노래 듣고 싶어"
"최성수 노래는 다 좋죠!"
"박작가는 비위는 못 맞춰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빼지 않고 잘해"
"그게 제 매력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야시 중에서도 뱅야시!!!"
"아니래도!!"
홀짝홀짝 건배하면서 마신 맥주와 콜라로 화장실이 급해졌고, 언니한테 같이 가자고 말했다.
"니 아직 변소도 못 가나!!!! 곧 마흔이다"
"씨. 언니 이런 식이면 나도 할 말 많다??"
"가쑤나, 예전엔 눈도 못 마주치던 게!!"
"빨리 ㅠ 나 쌀 거 같아"
"콜라 좀 고만무라. 뼈 삭는다"
"빨리빨리빨리"
언니와 나란히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물었다.
"언니, 출판사님은 내가 다른 출판사에도 글 쓰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응. 니가 이야기했잖아?"
"근데 한 번은 서운하다고 말씀을 안 하시길래"
"니가 미안해할까 봐 그러지 않을까?"
"괜히 더 죄송하네"
"죄송할 것도 쌔빗다. 니가 그렇다고 여기 연재를 안 하는 것도 아니잖아"
<쌔빗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많다는 뜻>
"그래도...."
"유명한 작가 되면 출판사님께 감사 인사하면 되는 거야. 별 시답지 않은 걱정은"
"그럴까요?"
"그래, 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작가님, 신청곡도 받습니까?"
"요즘 노래는 모르는데....?ㅠㅠ"
"옛날노래예요. 김현정 '아파요' 노래 알아요?"
"나 알아!!"
조성모 상처, 란 어쩌다가, 리아 눈물, 최성수 남남, LPG 사랑의 초인종, 최성수 해후, 조영남 불 꺼진 창, 루머스 스톰..
나는 신청곡들을 받으며 내향적인 나만 종일 노래를 불러댔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고 말이다. 야유회를 등산으로 갔던 그날 근육통과 뒤풀이로 단단히 몸살이 오고 말았다.

오늘 봄비치곤 시원하게 비가 내렸어요.
해서, 나는 온종일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기다렸어요.
당신은 그런 비를 보고 나를 떠올리셨을까요?
당신과 손을 잡고 걷고 싶어요.
당신과 같은 우산을 쓰고 싶어요.
당신과 빗속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싶어요.
흐드러진 꽃잎 아래 '하나 둘 셋' 외치고 사진도 남기고 싶어요.
당신을 원 없이 사랑하고 싶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그런 나를 견뎌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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