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뻔뻔하게 말하자면요, 당신이 내가 뒤에서 이러는 거 영영 모르셨으면 해요... 보고 싶다고, 마중받고 싶다고, 좋아한다, 동경한다, 사랑한다고 온종일 떠드는 거 안 읽으셨으면 해요. 당신이 알면 질색하며 달아날 수 있다 생각하거든요. 기겁하며 더는 나를 보려 하지 않을 듯해서 불안하고요. 당신은 충분히 다정하고 배려 깊고 매력적인 사람인지라 나 아니어도 넘치는 사랑받을 수 있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면 질투 나서 콧바람 씩씩 내시며 눈은 앙칼지게 떠져요. 짐작 못할 테죠.. 이게 또 참 서럽더라고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나 혼자 당신을 생각하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꼴이 마냥 우스워요. 점점 당신은 내게만 야박해지십니다.
"제 글 보세요?"
"아뇨"
썅. 썅썅. 빌어먹을. 젠장
분명, 안 보셨으면 했다가도 왜 당신 입에서 안 본다는 말만 들으면 욕이 먼저 나올까요ㅜㅠㅠ 내 성격이 썩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말이죠. 왜 이토록 서운한 걸까요.. 당신이 날 궁금해하지 않아서? 당신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반증일까 봐서? 아마 둘 다 인듯합니다..ㅠㅠ 다른 작가한테는 안 그러고 나한테만 이렇게 야박하게 구는 거죠?? 그쪽이 갑이고 내가 을이라서?? 젠장. 안 읽고 계시다니 욕 좀 하고 가겠습니다. 혹여나 읽게 되시거든 이야기하세요.
#다정함의 이중적
"인생 최대 몸무게예요^^ 술도 마시고, 운동도 안 하고..."
"올해부터 금주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일도 늦게 마치고 힘들어서...."
작가와 편집장님의 일은 다르다. 작가로부터 받은 원고를 검토하고 평가하며, 마케팅 방안과 디자인 협의 등 최종적으로 한 권의 책이 출판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는 일이 많다. 그러고 보면 항상 다른 편집장님들보다 바쁘시다. 소처럼 일만 하고 늙어라고 말하기엔.. 그는 너무 성실하다는 것이 문제다. 꾀부리고 몸 좀 사리시지. 바보 멍청이.
아! 가방에 팩소주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ㅜㅜㅠㅠㅠ 술 주정뱅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어이구. 그에게서 분명 똥멍청균이 옮은 게 분명하다.
"작가들은 글 안 써지면 술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펴요!"
쌍팔년도 때나 할 법한 핑계를 말한 나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착한 그는 또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셨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술 담배 없이도 글 술술 잘 쓰던데...ㅠ
"술 먹어야 글이 술술 써지더라고요"
"^^"
미쳤지 진짜. 그걸 개그라고 했을까. 나 개그에 욕심 있었네? 몰랐었다. 아니면 젊은이들처럼 라임 쩐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걸까. 작가가 편집장님 앞에서?? 얼토당토 안 한 말에 그는 티 없이 구김살 없이 웃어주었다.
<라임은 rhyme 해석하면 운율이다. 시에서 음성적 요소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함. 이는 독자에게 리듬감을 느끼게 해 주며, 시를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함이다.>
'당신, 내가 데리고 살고 싶어요'
데리고 와서 살고 싶었다. 그럴 능력은 있으니까. 내 글만 읽으면서 그렇게 살게 하고 싶었다. 그의 입으로 듣는 힘들다는 말이 그토록 그를 데려오고 싶어질 줄은 몰랐다. 당신 옆에서 나는 무한한 사랑을 쓰고, 무릎에 누은 당신의 얼굴을 만지며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상상을 해봤다.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되면 사랑이 없어 글이 안 써질 일도 없고 그는 힘들지 않아, 우린 술을 안 마셔도 될 텐데.. 그러나 그럴 수 없었고, 그럼에도 그가 내게 오겠다 말하면 데리고 살고 싶었다. 어리석지만, 간절한 바람이고 진심이었다.
"작가님은 골프, 볼링, 당구 잘 치시잖아요"
"그것만 잘해요. 축구, 배구, 배드민턴, 탁구공이 제게 오면 눈을 감아요"
"^^ 공을 날리거나 쳐서 보내는 걸 잘하시네요"
편집장님은 편집장님 답게 말도 예쁘게 잘하신다. 내게 오는 공을 날려버린다는 말을 어쩜 저렇게 포장을 하실까.. ㅋㅋㅋㅋㅋ 작가 하셔도 될 듯한데.. 제안해 볼까. 그는 요만큼이라도 미운 구석이 없다. 아마 저렇게 말하는 편집장님도 내게 오는 공을 방어적으로 날려버린 내가 웃겼을 것이다. 그러나 말갛게 웃으며 말하는 그를 내 쪽에서 사랑을 아니할 이유는 끝끝내 없었다. 치.. 분명히 날 향해 오는 공을 무서워 쳐내는 나를 쫄보라 생각했을 테지.
"밑에서 기다리다가 올라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잠은 잘 자요?"
"살이 더 빠졌어요"
그의 배려와 다정함으로 내 몸 테두리를 보호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아니지만 마치 사랑인가 하고 착각하기에 너무 설레는 인사말이었고, 따뜻한 음성이었다. 바지를 푸는 그의 손길에도 온기가 그득 담겨있었다. 마스크를 고이 접어두는 그의 행동이 날 얼마나 배려하는지 알 수 있었고, 점심시간을 온통 나와 시간을 보낸 그가 미치도록 좋았다.
나는 그렇게 근육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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