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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49 기억력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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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나는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뭐든 잘 잊지 못하고 기억하곤 합니다. 그동안 그게 나의 큰 장점이었어요. 책 읽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억력이 좋은 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니깐요.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할 때면 뇌가 섹시하다, 총명하다는 둥 과분한 말도 듣기도 해요.. 아주 가끔은 그런 기억력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요.. 가령, 회사 직장동료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필요한 걸 선물한다던지, 오래전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끄집어내면 내가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하더라고요. 뭐, 지금은 그런 나를 알고 오해는 대부분 풀렸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기억력이 좋은 건 죄악인 듯싶어요. 당신과의 기억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내게 남아 날 힘들게 하거든요. 겁이 나요. 나에게 하는 당신의 말을 잊지 못하고 또 평생을 기억하면서 두고두고 아파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당신을 보러 가는 길에 내 발목을 잡는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게 오래도록 새겨질 당신의 흔적임을 알았어요. 무서워요. 당신을 보고 오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할 내 자신이 뻔해서요. 가기가 겁이 나요.
내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아요. 그 말이 평생 내 마음이 새겨져 두고두고 아플 거니깐요...
나요, 겁도 많고 상처도 잘 받아요. 그러니 용기를 내 당신을 만나러 가면요, 당신의 손길에 온기를 잔뜩 담아 나를 어루만져주세요. 당신의 따뜻한 손길을 오래 두고 기억하고 파요. 당신의 예쁘게 웃는 웃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파요. 날 담고 있는 당신의 눈동자를  평생 기억하고 파요. 당신과 함께이고 싶어요...



당신은 평일에 음주를 하지 않겠다던 말을 잘 지키고 있나요?
나는요, 술을 자주 마십니다... 당신이 알려준 사케가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특히 고래컵 사케는 끝맛이 살짝 달달한 것이 딱 좋아요. 엄청 차갑게 마셔도 좋고요, 살짝 데워 마셔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요, 맛으로 술을 마시지 않죠. 잠을 자기 위해 마시고, 당신을 잊기 위해 마셔요. 어라? 이유가 더 있었네요. 첫 남자가 너무나 좋아하는 술, 내가 세상에 있는 술을 죄다 마셔서 없애버리고 싶어 마셔요. 그리고  술병이 적힌 경고의 이유로 마십니다. 지나친 음주는 기억력 손상을 유발합니다. 당신과의 모든 기억을 손상시키고 싶어요. 더 이상 당신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도록 기억력이 손상되길 바라요.
같이 아파줄 수 있나요? 내게서 당신을 잃어버리고 싶어요. 도와줄래요? 그래 줄래요? 그럼, 나 한 번만 사랑해 주세요.
시절인연 속에 당신을 남겨두고 완결 내버리게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덜 슬픈 끝맺음이거든요. 시절인연, 우리 그거 할래요? 아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과 내가 시절인연이라도 남고 싶어요.
내가 시절인연 해달라고 하면... 착한 당신은 거절 못하겠죠? 거절하고 싶어도 착한 당신은 내게 모질지 못할 거예요. 나는 그걸 이용하고요.. 그렇죠? 이래저래 씁쓸한 결말에 속이 상합니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죄다 사랑인 것처럼 해놓고선 , 사랑을 안 주시면 나더러 어쩌라고요... 당신만을 사랑하게 만들어놓고 사랑을 안 주시는 면, 나는 말라죽는다고요. 왜 그러셨나요. 왜 날 사랑하지 않으세요!!!!!!
아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내 사랑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소설 속에 내 사랑을 가두고 덮어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꽁꽁 숨겨둘 거예요.
오늘도 나는  익숙한 참이슬을 마십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씁쓸한 소주는 당신을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할 뿐이에요.
몹시도 보고파요.
곧 당신에게 가야겠습니다.
잘 자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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