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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87 돌아온 똥멍충이


온종일 당신의 향기가 코끝을 맴돕니다.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한껏 들뜬 기분에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집니다. 왜 일그러지냐고요? 물론 무척이나 설레고 좋죠. 그런데 그런 기분 있잖아요. 너무 행복해서 슬퍼지는 그런 구깃해지는 마음....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데 그럴 수 없음을 명확히 알고 있어 온통 먹구름이 낀 속내를요.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저처럼 잘 생겼나 봐요?"
"편집장님은 늙었지만, 그 사람은 젊어요"

그렇게 나의 그는 짝퉁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는 형아만 있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
막내였다.
그래서 매번 귀여우셨나 보다.
그래서 매번 사랑스러우셨나 보다.
그래서 매번 밝고 배려가 넘쳤나 보다.
그의 한마디에 모든 게 이해되고 말았다. 진작 말해주시지 그랬어요. 막내이니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경계했을 건데.... 그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굴 들어간 김치는 못 먹어요. 비려서"

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반백살 중에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존재할까ㅋㅋㅋ
아마 없을 것이다. 입도 짧고, 못 먹는 것도 많은 그...
점심 메뉴로 토끼탕 먹었다는 이야기는 안 하길 잘한 듯싶다... 날 야만인이라고 생각하시겠지. 어쩜 나와는 비슷한 점이라고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이리도 그에게 끌리는 걸까. 도통 알 수 없다.
한동안 굴만 보면 또 그를 무지막지하게 떠올리게 생겼다. 아예 마트에서 해물 쪽으로는 눈길도 들이지 말아야겠다.

"팔 다쳤어요?"
"발가락은 왜 그래요?"

분명한 건, 그는 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그래, 잘된 거야.
섭섭해할 필요가 전혀 없어. 이리도 찌질하고 하찮은 내 마음을 어른 남자만은 안 보는 편이 나에게도 좋으니까. 그래야 내가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라도 그가 날 부담스러워하지 않겠지. 암만!
아마 늙으셔서 또 까먹었을 테다. 시간 지나서 찾으려고 또 똥으로 검색하다 또 못 찾을 테고.. 그렇지?
혹시라도 그가 볼지 몰라 망설여졌던 말들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게 되었잖아?? 욕도 마음껏 하고 말이야.. 늙었다고 늙은이라고 마음껏 불러도 눈치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늙어도 너무 좋은 게 함정..ㅠㅠ
늦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가 몹시도 잘생겨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늦어서 뛰어오는 줄 알았겠지만, 가까이에서 당장 그를 보고 싶어서 빨리 달려간 건데...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똥멍충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많이 좋아한다고, 정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건강해졌어요. 운동 계속하시나 봐요"

"저는 다이어트하다가 이제.... 포기"
"늙으셔서 그래요..."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가 알지 못했다. 신체 나이 50대의 몸으로 그에게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전보다 조금 더 통통해져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배가 한없이 귀엽게 부풀어있었다 ㅋㅋㅋㅋ 금방 막 공깃밥 3그릇 먹은 나보다 더 나와있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멋있었고, 섹시해 보였다.
가지고 싶다.
갖고 싶다.
내가 갖고 싶다고 하면 내게 올까?
내가 잡으면 한 번은 잡혀줄까?
내 글을 안보 셨을 테니 진심으로 알고 놀라시겠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를 나는 또 어김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며 결국엔 또 사랑을 하고 만다.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야 될 듯하다.
잘 자라, 똥멍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