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오후
역시, 오후에 일을 하는 게 분명하다. 어른 남자와 닮은 그를 봤다. 닮아도 너무나 닮은 그 남자. 이쯤 되면 진짜 가족이거나 친척이겠거니 싶다. 어쩜 이렇게나 닮은 거지? 서로 남이라면, 출생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말이다. 여하튼, 어른 남자와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심장이 빨리 뛴다. 마트 속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맞춰 심장소리는 쿵쾅거림에 속도가 붙는다. 어른 남자를 연상케 하는 무언가를 보게 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 속에서 퐁퐁퐁 샘솟고 만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를 진짜 많이도 닮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늙었다와 젊다의 차이랄까. 아마 내 글을 그가 보면 극대노하겠지 ?? ㅋㅋㅋㅋㅋ 그러나 그는 내 글을 읽지 않는 게 분명하다.
한참 장을 보다 전복과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어른 남자를 떠올려버렸다. 순식간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나를 휘감았다. 전복을 앞에 두고 마주했던 그의 아주 어색하고 수줍은 얼굴을 말이다. 덩달아 나도 어색하고 떨렸지만, 이런 게 연애라는 거구나 싶어 설레었던 그날을. 그때 그는 몰랐겠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 하는 데이트였다.
그를 사랑하고부터 나는 이상해졌다. 사람이 아닌 해산물에도 마음을 쉽게 줘버리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한심했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랑이 많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사랑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어른 남자, 그에게만 내 사랑이 작동한다. 전복 앞에서 멈춰서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손은 괜찮으세요?"
가짜 그가 내게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아, 네.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그를 지나치려 했다.
"잠시만요, 따라오세요"
"어디? 어딜요?"
"이쪽으로요^^"
눈꼬리를 떨어뜨리며 웃는 그가 진짜 어른 남자와 많이 닮아있었다. 이유를 묻지 않고 따라가는 날 보고 이내 한심하다 생각했다. 이래서 어렸을 때 아빠가 '약과 사줄게. 같이 가자'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는 훈육을 매일 같이 하셨구나 싶었다.
고객센터 앞에서 그와 마주 섰다.
"깨진 참기름병 한병 빼고 거스름돈이에요"
내게 돈을 건넨다. 황급히 두 손을 흔들며 답했다.
"아니, 아니에요. 하필 제가 참기름병을 깨트리는 바람에... 그날 너무 죄송했어요. 치우기 힘드셨을 텐데..."
내 말이 채끝 나기도 전에 그가 잘라먹었다.
요새 젊은이들은 예의가 싹퉁바가지다. 나는 절대 꼰대가 아니다.
"거스름돈 드리려고 계속 손님 기다렸어요. 받으세요"
"아니, 못 받는다니깐요. 그걸로 다른 분들과 커피 한잔하세요. 아! 부족하려나요? 잠시만요"
그날 나로 인해 직원분들의 수고로움에 보답하기 위해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고 있던 참이었다.
마주 서있던 그가 갑자기 가까이 와서는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깨뜨린 참기름 한 병 값 빼고, 남은 금액입니다 손님"
"어....."
당황해서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옆에 있던 그동안 마트 올 때마다 자주 뵈었단 직원분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깨트린 값만 주면 되지. 받아가요. 그러려고 여기 직원이 있는 건데, 안 그래도 돼"
순간, 큰돈은 아니지만, 돈으로 실수로 무마하려는 내가 부끄러웠다. 민망해서 그다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불안장애가 있다.
"괜찮으세요?"
짝퉁 그가 물었고, 나는 도리도리로 답했다.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답하는 게 일방적인 나의 반응인데 솔직하게 도리도리로 답해버렸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그가 진짜 어른 남자 같았거든. 짝퉁 그의 얼굴에서 진짜 어른 남자 얼굴이 보였다.
장본 바구니를 놔둔 곳으로 나보다 두발 정도 앞에 서서 걸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 모습도 진짜 그와 매우 닮아있었다. 흡사 어른 남자 뒤를 따라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셀프로 계산한 다음, 에코백에 장본 것을 담고 마트를 나섰다.
나서는 길에 짝퉁 그와 눈이 마주쳤고, 고개만 까딱하고 미끄러지듯 마트에서 나왔다. 암만 생각해도 그와 닮았다. 왜 이토록 나는 어른 남자를 찾는 걸까....
보고 싶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당분간 그를 보러 가지 못하니 주구장창 엄마집 마트나 들락거려야겠다.
말갛게 웃는 어른 남자가 보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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