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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78 우리 짠할래요


반주를 즐긴다는 그와
혼술을 마시는 나

혼자 잔을 채워 마시긴 싫었다. 너무 쓸쓸하니깐.
그래서 나는 빨대를 꽂아 마신다. 술잔을 채워주는 이가 필요 없어 외로움은 사라졌지만, 그가 옆에 없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드는 걸 알지 못했다.
입안 가득 술을 빨아들이고 볼을 빵빵하게 만들면 얼얼한 알코올이 입안을 훑고 지나간다.
쓰다. 정말 쓰고, 맛 또한 없다.

'왜 사람들이 쓴 술을 마시는 거야??'

매번 궁금해하며 마시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도 혼술을 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안에서 술을 오래 머금어 술을 입속에서 느끼고 삼킨다. 그 얼얼한 기분이 좋다. 그를 향한 쓰린 마음을 그냥 삼키기엔 너무 아려서 술과 함께 꿀꺽 삼켰다.

"으~~~ 진짜 맛없어"

혼자 낮게 내뱉어지는 소리는 마치 홀로 남겨진 마음의 여운인 듯하다. 한 모금씩 한 모금씩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술은 점점 삼킬수록 그 쓴맛을 잃어가고 있다. 내 마음이 술보다 더 썼기 때문이리라.

술은 정말 맛이 없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
가글 하듯 입에 오래 머금고 마시는 씁쓸한 알코올을 입안 가득 채우고 삼키기를 몇 번 반복하면 금방 취하고 만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과 죄의식 그리고 죄책감들이 서서히 흩어짐을 느낀다. 술에 녹아 희미해지는 내 무겁고 무거운 마음들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기분이 몹시 좋아진다. 헤헤^^

처음 혼술을 시작한 건, 단발로 자르고 나서부터였다. 맥주효모가 혹시나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도움을 줄까 봐서이다. 그래야 그를 보러 가니깐.
그러고 보니 혼술의 시작이 그였고, 혼술을 끊을 수 없게 만든 이유 또한 그다. 진짜 나쁜 똥멍충이네.


알싸한 소주가 청량하게 목구멍을 훑고 지나간다.
처음 한 모금은 청승맞아 보이지만, 아니다. 첫 술은 나를 위해서이다. 건배도 없고, 상대도 없으니 대화 또한 없다. 그래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나를 위한 첫 한 모금이다.
두 번째 모금도 나를 위함이다. 긴 하루동안 꽁꽁 숨겨놓았던 마음속 깊이 가둬둔 그를 향한 감정들이 아우성친다. 그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는 지금 이 시간이 좋다. 지금만큼은 술의 탓인지 몰라도 마음의 짐이 덜해서일까. 마음이 가벼워 좋다.
세 번째 모금은 그와 날 위해서다. 취기가 올라 붕 뜬 기분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이 왠지 잘 써지는 듯하다. 그러나 글로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그가 몹시도 그립다. 누군가를 이리도 그리워하고 보고픈 적이 없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휑한 허탈함과 고독은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멈추질 못한다. 모든 것을 싹쓸이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내 사랑이 미지근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함을 연습하는 데에는 술기운이 필요하다.
버거운 내 사랑은 술을 마시면 쉬 풀리고 만다.
그는 나의 구멍 난 마음을 메우는 유일한 구원자다.


#서툰 마음을 어쩌질 못하겠어.

투정 부리고 싶어.
가지고 싶은 게 생겼다고.
조르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할 수만 있다면
바닥에 발라당 누워
손과 발을 굴리며
투정 부리고 싶다.
악도 쓰고 떼도 쓰고 울면서
투정 부리고 싶다.
그의 마음 갖고 싶다고
그의 마음 달라고.
갖고 싶은 걸 가질 때까지
투정 부리고 싶어.


그래도 나는 으른이니깐 그러지 않을 거다. 암만!!!
넌 내 마음도 모르고 쿨쿨 잘도 퍼지고 자겠지? 오늘은 좀 괘씸하니깐 사자한테 쫓기다가 잡아 먹히는 꿈을 꾸길 바라본다..... 온 힘을 다해 달려라!!! 바보야.
쪼잔한가..?? 그래 뭐..  할 수 없어. 이렇게 쪼잔하고 구질구질하게 만든 건 분명 니 쪽이니까.
인심 썼다!! 사자가 너 잡아먹으려고 하면 내가 짜잔 하고 나타나서 물리쳐줄게! 타잔처럼 말이야. 절대 네가 사자한테 물려서 아플까 봐 구해주는 건 아니야. 너 잡아먹은 사자를 내가 갈기갈기 찢어 죽일까 봐 피 묻히기 싫어서 구해주는 거야.


나 동물의 왕국 진짜 완전 좋아하는데, 우리 같이 볼래?
우리 같이 동물의 왕국 보면서 술 마실래?
우리 같이 짠할래?
너 반주 즐긴댔지? 나는 아직 술을 즐기지 못해. 대신 반주를 마시는 널 보는 걸로 즐길게.
그러니 나랑 술 마실래?
나랑 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