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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82 아리도록 시린 밤


내가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여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갔고, 그걸 계기로 이후에는 내 마음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바뀌었다. 그 용기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다. 그저 사랑을 고백해버리고 마는, 그런 게 아니었다. 결코 쉬운 용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사실, 용기라고 썼긴 했지만 적합한 단어 선택인지 쓰면서 몇 번을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고민하면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아직까지 나만 일방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지만, 조금은 그와 가까워졌다. (나 혼자 생각일 수도 있겠다)
살면서 가장 벅차고 보람 있는 일은 그를 알게 된 일이다.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따라 웃고, 그의 모든 이야기에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게 된다. 모든 감각들이 그에게 즉각 반응을 보이고 만다. 짝사랑 1년이면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준 그에게 감사하다. 설렘이었다. 행복이었다. 사랑이었다.


후드 점퍼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차가운 겨울 밤거리를 거닐었다. 어느새 날은 제법 추워져 그를 애타게 찾는 지친 숨은 따뜻하고 흰 모양새로 김이 되어 흩어졌다. 겨울이라 일찍 떨어진 해에 밤거리를 더욱 어둡고, 갈라진 옷깃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찬 밤공기만큼 그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 한 켠이 시리듯 저며온다.
세상의 슬픔을 덮어버릴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이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자 눌러쓴 모자를 벗어 들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붉게 상기된 두 뺨.... 오직 그를 찾고 있는 내 눈물 맺힌 눈망울에도 시린 바람이 내려앉는다. 겨울밤은 이렇게나 조용한데, 또 나를 사무치게 슬프게도 한다. 나는 걷는 일도 어느새 잊은 채 그 자리에서 차가운 겨울밤을 바라보았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시리지만 보드라운 겨울 감촉만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리도록 찬 바람이 몸을 차갑게 만들었다. 온통 차가운 자국이 가득하다. 나는 그 자국들이 내 살갗에 생긴 그리움의 흉터처럼 아파지는 듯해서 그 흉터들을 정성스레 어루만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날 어루만져줬으면....
그에게 달려가고 싶다.
추워서 흐르는 눈물인지, 그가 그리워 흐르는 눈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소매에 눈물을 훔치고 소주를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