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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45 고작




내가 바라는 것은 아주 하찮은 것이었다.
나를 보는 그의 눈길에 아주 작은 온기가 깃들여있길.
나를 향한 그의 말투에 아주 작은 따뜻함이 묻어있길.
나를 향한 그의 행동에 아주 작은 마음이 있기를.
나를 향한 그의 마음에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있기를.
고작 이런 것들을 바랐을 뿐이다.
내가 나에게 오라고 했던가, 나에게 와달라 졸랐던가,
사랑을 달라고 매달렸던가.
단언컨대,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내 사랑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글로 쏟아낸 건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결코 내뱉어질 수 없는, 말 그대로 혼자 하는 독백이다. 나는 그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안 났다. 나는 그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다.
그에겐 처음부터 나는 그의 버리는 패였던 것이다.
'뒤패가 붙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였던 거지?
알고 있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내가 바라는 건 이게 다인데, 이게 전부인데, 그것마저 줄 수 없나 보다. 사실, 그는 내게 사랑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으며, 기다리라고 약속하지도 않았다. 뭐 때문에 나만 이러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게 그에게 건네는 사랑이라는 걸 그는 알까? 내게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만큼은 한없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럼에도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서 응원해 주는 거 외엔 그에게 닿을 길이 없다.
내 세상 일부를 포기해서라도 그의 세상을 공유받고 싶은 사람. 감내해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게 어른 남자라서 하고 싶은 거겠지. 그가 미치도록 좋다, 그러나 너무 미운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어느새 바람이 점점 시원해지더니 이제는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었다. 차가워진 바람에 문득 늙은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꾸만 그가 궁금하다.
밤에 잠은 푹 잘 잤는지, 아침밥은 든든히 챙겨 먹었는지, 옷은 따숩게 단디 입었는지, 출근은 잘했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그의 가을은 아름다운지 아니면 쓸쓸한지, 그는 지금 행복한지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오늘도 아프지 말고, 나의 행복까지 가져다 어른 남자만은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람에 실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