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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43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그를 사랑한다.

활짝 핀 꽃의 절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다음 꽃을 피워내기 위해 고개 숙인
그의 얼굴엔 중년의 중후함과 멋은
사랑하기에 충분했고,

고개 숙인 나를
안아주던 그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 안은
기댈수록 평온했고, 따뜻했다.

맞잡은 두 손의 온기에
가슴 뛰는 건 나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달아오른 몸안을
파고드는 그의 얼굴과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그의 숨소리와 살냄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기에
완벽하고 충분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확고한 취향
땡땡이를 쳤던 날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들어서면서 얼마나 들떴는지.. 바쁜 일상을 쪼개어 가도 되는 일이지만, 다른 일을 미뤄두고 가기엔 항상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었다. 마음껏 책에 푹 빠져있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몇 권의 책을 훑었을까. 결국 나는 5권의 책을 구매했다. 한 권은 심리학책에 관한 책이었고, 나머지 네 권은 책 제목에 공통적으로 '이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또 서점에 들렀다. 꽤 오랜 시간 머물러 책을 읽었고, 세 권의 책이 마음에 들었는데 앞에 산 책을 다 읽지 못해 사진 않았다. 오늘 고른 책을 제목을 기억해 두려고 세 권의 공통적으로 제목에 '당신'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요즘 일상에 왜 어른 남자로 가득한지를. 책을 읽고, 고르는 순간에도 나는 그에게 가있었던 것이다. '이별'과 '당신'이라는 키워드로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음을 알게 되어 어쩌면 다행스럽고, 또 어쩌면 안쓰러운 내 처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까지 내가 얼마만큼의 길을 달려왔는지 그는 모를 거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매일 수없이 써 내려가는 문장 중에 그에게 닿을 수 있는 문장이 단 한 문장도 없다. 닿지 않을 것임에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이번에 강연할 때 받았던 질문.

"작가님, 소설 속 사랑 말고, 현실 속의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찌질하고, 아프고, 구질구질하고, 나의 못난 모습을 숨김없이 보게 되는 그런 게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작가다.

"제 생각에는 그 앞에만 서면, 이성이 무너지는 거라고 봐요. 사랑은요, 이성과 거리가 멀거든요. 그리고 사랑은 사랑이라 애써 믿지 않아도 그냥 사랑이에요"

"작가님도 진짜 사랑해 보셨어요?"

"네. 당연하죠!!!!"

"어땠어요?"

"아파요"

"??? 아파요?? 진행형이에요?"

"아팠어요"

"왜 아팠어요??"

"너무 늦게 만나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서로 마음이 안 맞는 게 아니고요? 짝사랑이에요?"

말이 맞다 이 자식아!!!!!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짝사랑 아니거든! 외사랑이거든!!!!!!!


"짝사랑은 아니에요. 제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는 분이라...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요 ㅜㅜ 아프게 ㅜ"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이 작가님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말 아닌가요? 그건 짝사랑이 맞아요"

야이 새끼야!!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맞아요.. 짝사랑. 짝사랑하고 하고 있어요. 아니 짝사랑했었어요"

"이번 단편 소설에 여주가 '당신이 생각하기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 거 같아요?'라는 물음에 맞는 대답을 한 거 같은데 결국 이별을 했잖아요. 여주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거예요?"

"아...... "

그 소설 속에 여주에 현재의 '나'를 대입해서 쓴 문장이 들어갔나 보다.... 아차 싶었다.

"남편의 대답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이 소설 속 여주는 그 현실적인 대답이 너무 싫었던 거예요. 여주가 사는 삶은 희생이 강제적인 현실에서 여자는 '사랑'을 꿈꿔왔으니깐요. 제 생각으로 여주가 듣고 싶은 말은 '여자는 사랑으로 산다'라는 느낌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