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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84 대학생 때



#월요일 스터디 카페
카페에 들어선 순간, 모든 눈들이 나와 편집장님에게 쏠렸다. 아는 얼굴들 사이로 몇몇 낯선 얼굴들이 나를 불안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듯했다.

'약 먹고 올걸'

"야!!!!! 이게 누구야! 누군지 몰라보겠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선배는 잘 지냈어요?"
"나야 늘 똑같지 뭐. 더운데 온다고 수고했다. 일단 앉아. 마실 거 갖다 줄게"


낯선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나가는 일이 퍽 쉬운 일이 아님에도 나는 이 선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의 대학시절은 불안치료를 하기 전이었으니 지금보다 훨씬 심했었다. 그 시절에 선배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그 고마움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나에게 큰 빚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선후배들과 짧은 인사를 마쳤고, 마실 거 갖다 준다는 선배 손에는 음료 두 잔이 들려 있었다.

"내가 말한 작가님이자 내 후배. 나이는 반올림해서 마흔이고, 키는 150에.."

또 분명 어린 후배들 앞에서 날 놀려먹을 생각하는 선배말을 잘라버렸다. 항상 이런 식이었는데 여전하구먼?

"안녕하세요 ^^ 만 나이로 서른여섯!!!!!! 작가 ***입니다. 키는 150이 아니고 156!!!!이고요.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도움을 줘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게 의문이지만, 함께 하는 기간 최대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궁금한 건 언제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짧은 인사를 마치고, 긴 테이블에 앉았다. 그제야 날 향하던 눈들이 나에게서 흩어졌고, 나는 안도했다. 옆에 있던 편집장님이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끄덕였다.

작가가 되면 월급은 얼마냐, 출판사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성공적인 투고 방법, 투고 잘 쓰는 법, 나의 경험담, 글 쓰는 노하우, 보조작가나 서브작가에 관한 궁금증 등등 생각보다 많은 궁금증들을 물었고, 나는 하나하나 대답하느라 진이 빠졌다. 그렇게 폭풍처럼 쏟아진 질문에 끝이 보였고,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작가님, 추리소설이 더 인기가 많으시던데, 왜 연애소설만 쓰세요?"

정곡을 찌르는 어린 여학생의 질문에 당황했다.
앳되보이는 여학생이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쓴 글에 내가 긴장되고 무섭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질문을 한 여학생에겐 조금 있다 답을 하겠다고 말하고,

"내 추리소설 읽어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볼래요?"

라고 물었다.
선배가 나를 이 모임에 초대하고 나서 내 작가 정보를 이들에게 알려주었기에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다.

"혹시 저의 연애소설, 추리소설 다 읽은 사람 중에 어떤 글이 제게 어울리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제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이번엔 앳된 남학생이 입을 열었고, 나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작가님 추리 소설은 도입부터 강해요. 그리고 스토리가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잘 짜여있고 몰입감도 좋아요. 한마디로 추리 소설은 스토리가 탄탄해서 인기가 많은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요.
그리고 연애소설은 조금 현실감에서 동떨이 지는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 연애소설이 많아서 다 읽진 못했는 데 읽으면 읽을수록 모태솔로 느낌 나요. 연애 한번 못해본 사람이 쓴.. "
"푸하하"

내 옆에 앉아있는 편집장님이 진짜 아주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배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분명 편집장님이 모태솔로에서 빵 터진 걸 나는 알지만, 이 어린 학생들은 모를 것이기에 난감했다.

"죄송해요"
편집장님의 사과로 웃음은 마무리되었고, 나는 그 어린 학생에게 계속 이어서 이야기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연애소설은 현실감이 없어서 와닿지는 못하지만 글감이 예뻐요. 매번 새드엔딩이 주는 여운도 있고요. 그리고 지금 연재 중인 소설 있잖아요?"
"응? 지금 연재 중인 건 없는데?"
"그 엽편소설, 짝사랑 글 쓰시잖아요"
"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엽편소설이 훨씬 현실적이고 여주의 절실한 마음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달돼요. 그런 소설이 작가님께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글만 봤을 땐 추리소설이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님 실제로 보니깐 연애소설 쓰시는 게 더 잘 어울려요. 제 주관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작가님, 저도 한마디 해도 될까요?"
"네, 편하게 하세요"
"작가님 추리소설 어제 읽어봤는데 후반부터는 딱딱 퍼즐 조각 맞추듯이 잘 끼워지는 듯하다가 반전도 있고 해서 읽을 때마다 소름 돋았어요. 약간 사이코패스가 쓴 글 같아서 무서웠고요. 근데 실제로 뵈니깐 연애소설 쓰시는 게 작가님만의 색이 더 또렷해지는 거 같아요. 아까 쟤가 말했던 것처럼 독백형식과 현실주의 인문학이 겹치면 작가님 글이 매력 있을 것 같아요. 연애소설이 많던데 비슷한 결이나 느낌이 없더라고요? 전 작가님이 연애소설 쓰시는 거에 한표!"


소설만 봤을 땐 추리소설이, 나를 보고 나선 연애소설이 잘 어울린다니? 무슨 말이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까 질문한 거에 답부터 할게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은 연애소설을 쓰는 일이었고, 그래서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추리소설은 다른 종류의 글도 도전해 볼까 해서 쓴 건데 생각지도 않게 반응이 좋았던 것뿐이고... 아직 저도 저만의 색을 가진 작가가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작가님, 그 엽편소설은 실화가 바탕이죠?"

또 다른 여학생이 물었고, 나는 정말 당황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손등을 입에 가져갔다.

"저도 같은 질문을 작가님께 물어본 적 있어요. 소설에 나온 편집장이 혹시 나 아니냐고 말이에요^^ 돌아온 대답은 어땠을 거 같아요?"
당황해하는 날 위해 편집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죠", "아니에요"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옆에 있던 편집장님이 남주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딱 봐도 난데?" 역시나 아직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ㅎ
"글이 예쁘고 슬프기만 해서 변화를 주기 위해 현실적인 글을 써보라 제안해서 쓰는 글이에요. 맞죠, 작가님?"
"네. 현실주의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막막했는데 현실에서 있던 일로 소설을 쓰고 있어요. 일상을 소설을 남기는 것만큼 현실적인 소설은 없으니깐요"
"어른 남자는 실제 인물인가요?"

"허구입니다. 남주 외에 모든 에피소드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남주는 가상 인물입니다."
"그럼 학생들한테 돈 뺏긴 것도 실화바탕이에요?"
"네??? 아.. 네.  그런데 이런 일은 다들 비일비재해요. 다들 뺏겨본 적 있지 않나요?"
"아니요"
"작가님이 겁이 많게 생기셔서 그래요"
"안 웃으면 어려 보여요!"
"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웃으면 주름이.. "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나 솔직하다. 나를 들었다 놨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혼이 쏙 빠졌다.

"작가님~~ 작가님 실제 사랑이야기 들려주세요!"
"해주세요 궁금해요"
"재미없을 텐데 괜찮아요?"
"네!!!!!"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거창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현실은.. 원래 그래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유부남이었어요.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셋이나 있고, 나이도 많고, 사랑도 많았어요. 그래서 사랑했어요"
"어떻게 만났어요?"
"상대는 선생님이었어요. 전 내담자였고 상대는 상담사였어요"
"아 불안치료에서 만났어요?"
"네. 원래 미성숙한 여자는 '보다 성숙한 어른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거 아세요? 그때 저에게 '보다 성숙한 어른 남자'가 그 선생님이셨고, 내담자와 상담자는 사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심리상담에서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요. 이유는 다 알다시피 마음이 취약한 상태에서 내 모든 면을 털어놓고 상담을 하는데 공감해 주고 내 이야기 들어주는 치료사님께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사랑에 빠졌어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거기다 금지된 사랑까지 덧붙여져서 더 더 애절하게 사랑했어요. 그게 다예요"
"나이차가 많았어요?"
"아뇨. 고작 8살 많았어요"
"고백했어요?"
"아뇨. 고백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그냥 제가 상담을 그만뒀어요"

"작가님, 다음 작품도 연애소설인가요?"
"네, 아마도. 대신, 이번에는 첫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써보려고요"
"생각해 놓은 스토리는 있어요?"
"내담자와 상담자 이야기를 담아보려고요. 상담자와 내담자가 이성이면 처음 심리 상담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상담자를 사랑하게 되거나 좋은 감정이 생기면 꼭 이야기해 달라고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 정도로 흔하게 내담자가 상담자를 사랑하게 되어있어요. 상담자의 삶을 공유하고 위로받고 공감받고 구원해 줄 거 같은 상담자에게 사랑을 안 빠지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상담자는 그럼 개꿀 직업이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상담자가 남자여도, 대부분 심리상담자들은 윤리적 책임이 굉장히 강해요. 사내의 마음이 없다긴 보다는 상담자는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객관성을 중시해야 돼요. 상담사 대부분이 내담자에게 90% 이상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데요 그런데도 내담자에게 바람직한 인간 모델이 되어야 하니 자기를 통제하는 거죠. 철저하게. 그런 윤리적 책임이 강한 상담자를 내담자와 사랑을 이루게 글을 써보려고요."
"금기라면서요?"
"금기사랑을 일반 사랑으로 바꿀 수 있어요. 그건 제가 할 일이고요. 연재하게 되면 그때 글로 확인하세요^^ 첫 해피엔딩을 불륜이나 금지된 사랑을 쓸 순 없잖아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19금으로 써주세요"
"네 ㅎㅎ그럴게요"
"작가님 일 이야기할 때는 진짜 작가님처럼 보여요! 멋있어요!!'
"풉 ㅋㅋㅋㅋㅋㅋ 감사해요 ㅎㅎ"
"작가님 말도 진짜 잘하세요"
"고마워요^^"
"야야 고만 띄워라! 얘 안 그래도 자존감 하나는 끝내주는 얘야. 고만해도 돼"
"선배!!!!!!!!! 그땐 어릴 때 말이고!!!"
"이봐이봐, 얘들 보는 데서 하늘 같은 선배한테 따박따박 대들기나하고"
"이제 우리 같이 늙어가잖아요. 선배 후배가 뭐가 중요해요"
"작가님!!!!! 선배님이 작가님 좋아했었대요!!"
"알아 ㅋㅋㅋ"
"알고 있었어요?"
"야이!!!! 누구야!! 누가 말한 거야!! 박선혜, 넌 어떻게 알았어? 나 고백도 안 했는데?"
"나는 다 알고 있었지요"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누가 말해줬어?"
"아뇨 그냥 안건대?"
"오늘 고기 살 테니까 빨리 말해봐 궁금해"
"나 많이 먹어도 되죠?? ㅋㅋㅋ"
"어, 니 배 채우려면 6개월 할부로 결제하면 돼"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동공이 커진다는 말 알아요?"
"야 그건 우리 같은 작가들이 하는 말장난이지!"
"아니에요. 우리는 무언가에 매료되면 교감신경이 자극받아 눈동자가 커져요. 과학적 근거도 있는 이야기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는 이유가 그거예요. 눈은 거짓말을 못하니깐. 사랑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동공이 갑자기 커지는데 그러면 상대는 전부 알아버리니까"
"난 너랑 눈 많이 마주쳤는데?"
"그래서 다 티가 났다고요! 선배, 아주 뻔뻔하던데?"
"와 그런데도 넌 티 한번 안 냈고?"
"티 내면 어색해질 거니깐요"
"지금은 어떤데?"
"저번에 봤을 때도, 오늘도 선배 눈동자는 변함없어요.
지금은 나 안좋아하니까. 진짜 맞다니깐요. 제가 경험했어요. 사랑하는 사람 볼 때와 아닐 때는 분명 동공에 차이가 있어요. 내가 내 눈을 찍어올게요"
"너!! 누구 사랑하는데?"
"우와ㅡ 선배!! 이렇게 나를 한방에 보내버리려고요??"
"자, 이제 네 입 아프겠다. 입 좀 쉬게 해. 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박선혜 니 밥값은 네가 계산해. 네 입만 덜어도 부담은 덜하니깐"
"나빠 진짜!!!!"


다 같이 선배가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마치 대학교 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작가로서의 나와 작가 지망생들과의 만남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내가 대학생 때 어른 남자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잉?? 내가 대학생 때도 그는 서른이 넘었겠는데..? 풉 ㅋㅋ 웃기다. 서른 살 때 어른 남자는 더 잘생겼겠지?
만약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를 만났더라도,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을 테고 분명 좋아했을 게다. 그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겠지.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때 내가 지금처럼 절절하게 사랑했으면 지금 현재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마 그건 아닐 거 같다. 그는 그때도 똑같이 말했겠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고.... 다음에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여쭤봐야겠다. 도통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당최 무슨 생각인지..!!
어째서 인지, 왜 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가 정말 너~~ 무 좋다. 사람이 사람을 원래 이렇게나 좋아하나?? 다들 사랑하는 사람을 이런 마음으로 사랑하는 게 맞다면 그동안의 나는 빈껍데기로 산 게 분명하다. 어르신이 너무 보고 싶다 ㅜ 당장 보러 가고 싶은 데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또 그가 다 알아버려서 갈려면 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겠지? 그럼에도 너무 보고 싶다 ㅜ 이번에 가면 피하지 말고 그의 눈동자를 꼭 보고 와야지. 그의 눈동자가 날 보고 작아지는지 커지는지를 꼭 보고 올 거야!  그렇게 되면 그도 내 눈동자가 커지는 걸 볼 테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는 건 당연지사!
빨리 이번주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