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팔 지지리도 못났다 못났어.
그 기회를 그냥 놓치고 말다니 으이고.. 진짜 못살아.
계획에 없던 일은 나를 늘 당황하게 한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배려에 마냥 좋아만 하다가 그냥 날려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그를 보러 갔던 날, 엘리베이터를 혼자 탔는데 유독 특유의 꿀렁임이 내게는 좀 크게 다가왔고, 집에 갈 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굉장히 무서웠다. 직원분께 계단 위치를 물어봤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는 나를 그가 본 모양이다. 몇 번 말했지만 불안과 강박도 있고 결벽증도 있다. 비상계단은 담배꽁초와 쓰레기들로 굉장히 더러웠다. 관리하지 않은 모양이다.
오전에 약속했던 고객에게 선물을 돌려주고 택시 타고 그에게로 갔다. 이미 약속한 시간은 지났다. 더러운 계단을 걷기에는 나의 결벽증이, 무서운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기에는 굉장히 불안했다. 이미 늦은 김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누군가가 있으면 같이 타고 올라가야지 하고 기다렸다. 감사하게도 지하에서 타고 올라오는 커플이 있었고, 덕분에 나는 같이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만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해주는 게 아닌가? 처음 있는 일이었고 기분 좋았다.
그는 저번에 계단으로 내려가는 나를 봤다고, 비가 많이 오는 데 작가들과 선약이 있어 태워주지 못한다며 말이다. 그에게만큼은 엘리베이터까지 못 타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고, 일말의 자존심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횡설수설했다. 결국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덜 바쁜 시간이 언제냐고 그때 오겠다고 ㅜ 그러나 그가 너무 좋은 나는, 그가 마냥 좋아서 아무 말도 없이 좋아만 하다가 내리고 말았다.
"추석 잘 보내세요^^" 나의 짧은 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다시 엘리베이터로 달려갔지만 문은 닫혀있었고 그는 없었다. 이미 늦어버렸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걸 아는 건가?
나를 꽤 잘 아는 사람은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겠지만, 그는 나를 모른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내가 좋아하는 걸 아는 거 같단 말이지.
아니지, 알 수도 있지. 이렇게나 그에게만 허용적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나? 아닌가?
모든 여자들한테 다 이렇게 친절한 바람둥이인가?? 바람둥이라도 뭐 어쩔 수는 없다. 이미 사랑해 버린 걸 어쩌겠는가.
여하튼 나는 그 좋은 찬스를 눈앞에서 날려버렸고 지금 너무나도 후회 중이다. 그에게서 벗어나 우산을 펼치고 빗속을 걸었다. 그에 대한 마음을 단념하기로 해놓고선 그가 더 좋아지면 난 어째야 하지? 진짜 정말 내 주위에 나만큼 소심하고 용기 없는 자가 혼자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면 내가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릴 것이다. 그는 절대 알지 못하겠지. 고백을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나 많이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내가 의기소침하고 더 작아졌던 나를 절대 모르겠지.
빗속을 걸으며 생각했다. 어차피 쉬이 멈출 수 없는 마음이 시작된 김에 그를 다 가져 보기로 말이다. 그를 가진다 한들 내 것이 될 수 없는 건 매한가지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이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는 사실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래,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엄연히 따지면 그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그도 내 마음에 책임은 져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이도 많이 드셨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를 좋아하게 만든 그도 분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에게 한 시간만 내어달라고,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사랑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나 애원을 해야 하나 아니면 매달려야 하나 아놔.. 이리도 짝사랑은 나를 궁상맞게 하고 나를 지질하게 만든다. 그에게 말도 못 해보고 평생을 후회하느니 그냥 용기 내서 말해보련다.
사무실 말고 밖에서 한 번만 날 만나달라고 그래줄 수 있냐고 말이다. 싫다 하면 어쩌지?? 그럼 원래 계획대로 대차게 차이는 거지 뭐.. 그가 다음에도 1층까지 데려다준다면 그에게 사적인 시간을 나에게 내어달라고 사정해야겠다. 싫다 해도 사정할래ㅜ
그를 한 시간만이라도 오로지 내 사람으로 두고 싶다. 그거라도 하고 싶다. 그가 내 것이었던 순간을 갖고 산다면 그 한 시간을 평생을 꺼내어 추억으로 살 수 있으리라.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너무 내 욕심인가?
시간이 갈수록 그가 너무도 갖고 싶다. 내 모든 걸 주어서라도 그를 가져야겠다. 그를 가지고 싶다. 한 시간이 안된다면 30분이라도 그의 모든 것을 다 내게 갖고 오고 싶다. 정말이지 그가 그냥은 포기가 안될 듯싶다. 이래서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나 보다.
그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안전하다고 말이다.
계단이 그리도 더럽고 지저분한데 건물 관리는 안 한다고 봐야 한다. 계단을 보고 난 후에는 더 이상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됐다. 내가 갇히면 누가 나를 구하러 와줄 거야 ㅜ 이제 그를 보러 가는 길마저도 쉽지 않다. 다음에는 또 얼마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야 할까ㅠㅠ
또 얼마나 기다려야 그를 보러 갈 수 있을까ㅜ
맨날 바쁜 그가 오늘은 좀 밉다. 그래도 나만큼은 그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한가해지면 그를 보러 가야지. 내가 그때까지 그를 안 보고 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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