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양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해서, 가을 끝자락에 장갑을 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는다.
누군가에게는 불안이 이유 없이 잦아들었고,
누군가에게는 불안했으며,
누군가는 불안에서 구해주기 바빴다.
살고자 하는 걸음엔 죄를 묻지 말아야 하거늘,
스스로 죄를 묻고 그 죄를 벌하며 생채기를 낸다.

오랜 버릇이다.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입안에 넣고 물고 있어야 쉬이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는 것.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대식가가 되었는지도 모르며, 사탕을 입에 달고 사는지도 모른다.
등교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또또!!"
손등을 빨며 걷는 나를 제지했다. 나는 최대한 민망하듯 말갛게 웃었고, 내 웃음을 보고도 그는 내 손목을 잡아 툭 떨어뜨렸다. 따뜻한 입속에 있던 손등이 갑자기 차가운 공기에 화들짝 놀랐고, 나는 무의식 중으로 입을 벌려 다시 손등을 넣으려 했다. 그가 깍지를 껴 세게 잡았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만 빨아요"
"놔요"
"무슨 일 있어요?"
"아파요ㅠㅠ"
그가 손가락에 힘을 풀어 손을 뺐다. 손을 잡은 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이런 식은 불편했다.
"글이 안 써져서 불안한가 봐요"
"글은 왜 써요?"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조차 이유를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니까.
"무슨 부귀영화 누리려고요"
그가 내뱉는 말들이 내게 고스란히 상처가 되어 박혔다. 반박할 수 없었다. 쉽게 말려들었다간, 터질 감정이 분명했으니까.
"무리해 가며 글을 쓰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남편 모르는 빚이라도 있어요?"
예상치 못한 그의 물음에 웃음이 터졌다. 너무 생뚱맞은 의심이었다.
"그렇다면, 돈 빌려줄래요?^^"
"기꺼이요!"
"진짜요??"
"차용증 쓰고 또 공증까지 하면..."
"ㅋㅋㅋㅋㅋ 아니아니, 잘못짚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오랜 꿈이에요"
"꿈 이루는 데 그렇게 몸을 축내면서 해야 해요?"
"...."
"요즘 그쪽 잘 웃지도 않고, 멍 때리고, 걸핏하면 부딪히고, 갑자기 울고"
"원래 우는 건 웃는 것만큼 자.."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요?"
"네..."
"고민 있어요?"
"아뇨"
그렇게 내 발끝만 보고 걸었다.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하이볼은 마셨어요?^^"
"네^^ 맛있었어요. 아참 그 이모티콘은 무슨 뜻이에요?"
"헤롱헤롱 술 취한 그쪽 모습이요"
"ㅡㅡ"
하루라도 안 놀리고 지나간 날이 없었다.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부쩍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떡을 이긴 빵
원래 빵보다 떡을 좋아했다. 일편단심 변하지 않는 마음이렸다. 왜 떡과 빵을 서로 적을 두고 대립을 하게 만드는지 나도 나를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가 건넨 빵들은 모두 맛있었고, 다시 그 빵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식성이 변하듯 사랑이 쉬이 변하겠다 싶었다. 그는 기뻐했고 으스댔다.
빵집 근처에 아직 주인을 못 찾은 것인지, 주인이 버린 것인지 헤매고 있는 강아지가 여전히 있었고, 그는 내게 바짝 붙었다.
"저 강아지는 절대 물리 없어요"
"그쪽이 개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저 강아지는 누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누구요?"
"그건 나도 모르죠^^"
"어서 갑시다"
"빨리 가면 따라올 텐데요??"
"그럼 천천히 빠르게 갑시다"
"내가 보호해줄게요^^"
그는 또 보호라는 말에 나에게 눈길을 주었고, 최대한 무해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분명 '보호'라는 말에 반응했다. 누군가 보호할 만큼 세 보이지 않아 웃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보호'라는 반응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은 '보호'라는 말이 나를 보호하라는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지만, 나의 걸음과 눈길과 그리움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겨야 했다. 내가 그를 이용하겠다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내게 이용당해 주겠다는 여지를 준 셈이다.
나의 모든 살갗이 아리도록 연한 날, 그를 보호하기로 다짐해 본다.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건, 약점이겠으나 그 약점은 그와 나의 관계를 조금 더 유순하게 성사될지도 모르기에. 그가 내 뮤즈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랬으면 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그러려면 마음이 먼저 그를 글에 담고 싶어 해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결론 내려졌고, 그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햇살 아래 등굣길은 바람에 따라 마음이 일렁였다. 그와 내가 주고받는 대화는 서로를 껴안아 다독이는 위로며, 나의 여린 살결을 쓰다듬어 응원했다. 누군가의 그리움은 밤새 녹아내려, 별빛이 내리 듯 사라졌고 새로운 다정은 햇살 속에 물들어 나를 따스히 비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는 끝끝내 떠올랐고, 목덜미의 맥박이 요동치고 손끝이 찌릿했다. 내 안에서 그리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피어났다. 순식간에 나를 점령해 버렸고, 통제하지 않고 스며들어 나를 어루만졌다. 단 한순간도 폭력적이지 않았으나 단번에 통제되었다. 그 누군가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 누군가는 내게 사랑은 본디 그러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자취를 남기지 않는 허무의 안갯속에 오래 서 있게 했다. 고요하고 아련한 것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그 누군가는 나를 항상 기다리게 하고, 오래 서성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법은 없었다. 그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위험으로부터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고 다그쳤다. 불안이 채 오기 전에 그가 나를 끌어당겼으니까.
하여, 나는 누군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보호'하기로 다짐했다. 말이 좋아 보호지, 이용에 가깝다.
누군가에 휘둘려 감정과 마음을 허비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고 싶다.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다. 뜨뜻미지근한 어린 남자라도.. 누군가를 잊힐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용하련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 편한 곳은 내게 없으니까.
헛된 희망을 끌어안고 살기에는 나는 너무 나약했고,
허황된 꿈을 품고 살기엔 나는 너무 작았으며,
허상과 망상에 빠져 나는 오래 울고 웃었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약간의 불안을 안고서, 원래의 나로 돌아가야 함을 안다.
나는 불안이라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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