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는 기분 좋게, 그렇지만 때로는 기분 나쁜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너네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너네도 아줌마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안녕^^"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웃고는 있지만, 분명 느낌이 달랐다.
"저기.. 어디, 아파요?"
"아... 주말에 노가다를 좀 해서 몸살이 왔나 봐요"
"아..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쉬면 괜찮아요^^"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진 않았으나, 노가다는 그의 직업이 아닌 듯싶다. 그의 양손이 굉장히 부드러웠고, 손가락이 길고 고왔거든. 굳은살이 조금 있었지만, 필시 그건 남편과도 같은 헬스 하는 사람들의 느낌이었다. 매번 한껏 올라간 입꼬리에 나를 놀리는 듯한 눈빛이 괘씸하다 싶었는데, 유독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 안쓰러워 보였다.
#과거
아기 아빠의 손을 잡은 이유는 이러했다. 일 년 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 작은 물분수대가 하나 있다. 여름 방학 때 아이들이 자주 그곳을 이용했다. 짐을 바리바리 챙겨가지 않아도 신호등만 건너면 바로 있었고, 물분수대가 크지 않아도 충분히 내 어린아이들은 즐거워했으므로. 물총 2개와 아이들 비치타월, 음료와 과일만 조금 챙겨갔던 어느 날이었다. 이른 시간이었고, 해서 이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둘이만 노는 게 점점 흥미를 잃어갈 때쯤 둘째가 물분수대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얼른 달려가 일으켜 세웠고, 덕분에 흠뻑 젖어버렸다. 흠뻑 젖어 생쥐꼴이 된 엄마 모습이 뭐가 그렇게 웃긴 것인지, 내 작은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이미 젖은 김에 아이들과 함께 놀기로 마음먹었다. 예쁘게 웃는 아이들과 뜨뜻미지근한 물의 온도,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아래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참 노는데 언제 온 것인지 어린아이 둘이 와있었고, 물기로 시야가 흐려진 탓에 자세히 보지 못했다. 보호자가 있는 듯했지만, 폰만 보고 있던 터라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내 아이들과 물총놀이 겸, 술래잡기를 했다.
"아줌마 나도 같이하고 싶어요...."
게 중에 형으로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고, 그제야 물기를 닦고 제대로 보았다. 놀이터에서 자주 봤던 꼬맹이, 아기 아빠의 아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보호자를 보았고, 앉아있던 그는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악당 티라노사우르스해. 우리는 안킬로사우르스, 너네는 브라키오사우르스해. 도망쳐!! 우리 모두 초식공룡, 엄마만 육식이야!!!!"
첫째가 깔끔하게 역할분담을 정해주었다... 매번 같은 역할이긴 하지만 말이다.
"**야, **야"
그의 아들을 부르는 외침에 일동 정지가 되었다.
"너네는 너네끼리 놀아. 아줌마 힘드셔"
"아니에요. 이미 다 젖었고, 같이 놀아도 돼요^^"
"아.. 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얼마나 놀았을까, 시끌벅적했고 주위가 산만 하여졌다. 큰 아이들이 와있었다. 큰 아이들 속에 작은 아이들은 이리저리 치이기 다반사여서 물놀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짐을 뒀던 자리로 돌아갔다. 물놀이는 할 때는 즐겁지만 하고 난 후 극심한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다. 낮잠 잘 시간과 물놀이의 고단함이 겹쳤고, 둘째는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비치타월을 아이들에게 입히고 음료와 과일을 먹게 한 뒤, 나도 물기를 짜야했다. 나를 위한 준비는 해오지 않았으므로... 그제야 아래위가 모두 흰옷을 입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여름에는 얇고 시원한 긴팔, 긴바지가 바깥놀이할 때 제일 좋은 맘코디였으므로... 하나 굉장히 얇았고 해서 비침이 심한 옷이었다. 얼른 달라붙은 옷을 떼서 물기를 짰지만 그럴수록 몸에 더 찰싹 달라붙기만 할 뿐.. 그 와중에 둘째는 내 가슴으로 손이 갔다.
"찌찌 ㅠㅠ 찌찌 만질 거야"
"여기선 안돼. 집에 가서"
단유는 했지만 그래도 가슴을 만지는 버릇을 고치기 전이었으므로. 가슴에 손을 넣고자 떼를 부렸다.
바지를 짜기 위해 수그려있을 때 둘째가 내게 매달려 위에 속옷을 아래로 당겼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나는 둘째가 넘어지지 않게 잡았다. 우는 둘째 덕에 허둥지둥 정리하고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분수대를 나가려던 참이었다. 아기 아빠도 작은 아이는 수건에 감싸서 안고 있었고, 첫째는 킥보드를 타고 나오던 참에 만났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던 찰나,
"뒤.. 뒤 도세요!"
"네?"
"뒤 도시라고요. 아니! 저쪽 정문 쪽으로 몸을 돌려요!"
"네???? 왜....???"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내 몸을 나무만 있는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그의 무례한 행동에 다시 뒤돌아보았고, 그는 학을 떼며 다시 힘으로 나를 돌려세웠다.
"아니, 살이 다 보여요!!"
둘째가 잡아당긴 덕에 속옷이 조금 내려갔으나 몽땅 다 젖었기에 알아채지 못했다.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은 뜨거웠다. 어깨에서 손을 떼더니 분주한 인기척이 들렸다. 이내 반팔티셔츠를 벗어 내게 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입어요"
"괜찮아요"
속옷을 바로 하면 되는 일이기에 괜찮다고 돌려주었다.
"일단 입으세요"
"그럼 그쪽은요?"
몸을 돌려 내게 벗어준 그는 뭘 입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내가 돌지 못하게 어깨를 세게 잡았다.
"일단 입고.."
"아니, 속옷 바로 정리해서 괜찮아요!"
뒤를 돌아보았을 땐 그는 흰 민소매 차림이었고, 내게 준 건 검은 반팔티셔츠였다.
"엄마, 사과 팬티 입었어?"
"....."
나는 첫째 아들의 물음에 곧바로 그의 티셔츠를 입었다.
"감사해요.. 집 앞에서 바로 벗어드릴게요. 빨아서 주는 것보단 그게 나을 듯해요.."
"네"
키가 큰 그의 옷은 내 엉덩이를 가릴 정도의 길이였고, 찡얼대는 둘째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물과 땀으로 인해 그의 옷이 점점 젖어갔다.
"이쪽이에요"
나는 그를 우리 집 아파트로 이끌었고, 업힌 아이를 내리고 그의 상의를 벗으려 했다. 그러나 땀과 물로 젖은 상태라 잘 벗겨지지 않았고 둘째는 칭얼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주셔도 되는데.... 참;;"
"아니에요 잠시만요ㅠㅠ"
"도와드려요?"
"아니요!"
팔을 하나씩 빼기는 무리였고, 양손으로 티셔츠를 잡아 뒤집어 벗으려고 했다. 안경을 쓰고 있던 터라,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노력하다 그만 그의 아들 킥보드에 걸려 넘어졌다.. 다 벗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괜찮으세요?"
그가 티셔츠를 잡아 벗겨주었고, 잡을 때가 마땅치 않은 그는 내 양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죄송해요"
"안 다치셨어요??"
"네.. 이제 그만 가보세요 ㅠㅠ 창피해요ㅠ"
"아. 네ㅋㅋ 들어가세요. 너네도 잘 가~"
"안녕히 가세요. 엄마 괜찮아??"
"응.. 어서 가서 씻자"
"엄마, 괜찮아 괜찮아 실수 오케이"
첫째 아들은 나를 위해 실수 오케이 송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곱씹어보아도 그의 손은 부드러웠다.
#약
얼마 전, 내가 체했을 때 그에게 소화제를 받은 적이 있다. 몸살기운이 있다는 그에게 나도 사줘야 될까.. 그는 약국에 들르는 김에 소화제를 샀다고 했다. 그렇다면 약국에 갈 일이 없으므로 굳이 갈 필요는 없다는 거겠지? 사주기도, 그렇다고 받은 게 있는데 쌩까기도 불편한 입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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