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도 나는 여전히 당신 곁을 머물 예정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해보지 못한 사랑의 갈망은 내 마음 어딘가에 구멍을 만들었고, 나는 그 구멍을 얇디얇은 종이 한 장으로 덮어 놓은 채 모른 척하며 살았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내 멋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조용히 스며드는 아침햇살처럼 눈부시지도 요란하지 않은 걸음으로 나에게 왔다. 처음엔 몰랐었지만, 당신의 눈빛과 마스크 속 보이지 않는 미소가 내게 닿을 때마다 뻥 뚫린 구멍을 덮고 있는 종이가 저 멀리 날아갔음을 느꼈다.
그때부터 당신의 말 한마디, 웃음소리, 목소리, 당신이 날 보는 눈빛, 뻔한 안부 인사까지 모두 하나하나가 차갑게 식어버린 구멍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당신의 온기가 내게 스며들어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구멍이 채워진 꽉 찬 마음을 알았을 때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더 이상은 죽어있는 상태만은 아니었다. 분명 살아 움직였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도 함께 내 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나는 늘 혼자라고 외롭다고 생각했던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당신은 나에게 그 어떠한 것도 준 적이 없었고, 내게 어떠한 것도 준다고 한적 또한 없었다. 바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쉽사리 당신은 죽어있고, 버려진 나를 보듬어 살폈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저 당신은 그 자리에서 당신에게 가는 날 반겨주며,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내게 안부를 물은 것이 고작이었다.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나에게만 향하는 게 아닌, 모두에게 적용되는 뻔한 위로와 배려로부터 오는 따뜻함.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고, 그것만으로도 구멍을 매우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곱씹어보자면, 그게 다른 남자였다면... 다른 남자였어도 나는 그랬을까.
분명, 아니다. 당신 말고도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배려와 위로를 건네는 남자들이 분명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당신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답은 당신을 보고 와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잘 생겼다.
분명, 그건 당신이 잘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 배려고 위로고 뭐든 간에... 나는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거야. 처음 본 날 이미 나는 당신에게 흠뻑 빠져버린 거지.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고, 당신을 알면 알수록 내가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냥 꿈에 그리기만 했던, 책 속에서 글로만 그려냈던, 동경하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거지. 어쩔 수 없었어. 그래,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었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쌀 거 같은데"
"안돼, 참아요! 입에다 해줘요"
"벌써 끝났는데 ^^"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그것도 너무 가까이에 있는 당신 얼굴이, 그렇게 티 없이 말갛게 웃어버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잖아.
그런 당신을 보고 나는 다시 깨달았다. 모두 속수무책이었다고.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당신은 내게 속수무책이다. 그렇게 가까이서 당신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눈이 진짜 위에 있는 이모티콘이랑 똑같이 웃었다... ㅎㅎ
가식과 꾸밈이 첨가되지 않은, 이보다 더 맑은 웃음은 세상 어디에 없을 것처럼 당신이 내게 웃어주었다.
그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나는 니가 잘 생겨서 사랑에 빠졌던 거야.
그게 시작이었어.
그게 내 사랑의 시작이자, 명백한 사실이었어.
누군가 내게 이상형을 묻는다면, 부드럽고 순한 게 생긴 얼굴을 가진 연륜 있는 어른 남자라고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이상형을 묻는다면 '당신'이라고 이야기해야겠어. 딱 너니깐.
#용기가 필요해
나는 대체 몇 년 치 용기를 땡겨써야 당신에게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올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용기를 당겨와야 당신에게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을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왜 한 걸까.
차마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글을 읽어보셨냐는 물음에 '저번에'라고 대답하는 당신의 그 저번이 언제인지를 몰라, 무엇이 미안하다고 하는 말인지 내쪽에서는 절대 물어볼 수 없었다. 왠지 미안하다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아 사실 겁이 났다. 그래서 묻지를 못했다. 내 글엔 온통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빼곡한데, 그걸 보고도 미안하다고 하는 거면... 뻔하지 않겠는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을 접어줬으면 한다 라던지, 부담스러우니 이제 출근하지 말아달라 라던지, 어리숙해서 지겹다 라던지... 당신의 입에서 뱉어질 말들이 내게는 분명 상처가 될 것이 너무나도 빤하기에 나는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용기가 생기지 않았기도 하고, 너무나 활짝 웃는 당신 모습을 당분간 곱씹으려 행복하게 되뇌고 싶었다. 그 웃음은 출근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당신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추억하기에 벅차도록_ 이날 당신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었어야 했다. 이렇게 궁금해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이 시간을 할애할바에 물어보는 거였다. 당신의 말갛게 웃는 모습과 그 얼굴로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얼굴이 오버랩되어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애매모함만 내게 무수히 맴돈다.

#나에겐 온통 당신만이, 그러나 당신은..
왜 당신은 날 좋아해 주지 않는 걸까.
처음에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해도, 이만큼 이렇게나 많이 당신을 절절하게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 번도 나에게 안 흔들릴 수가 있는 거지.
당신에게 비친 내 모습이 찌질하고 못나 보이기만 하는 건가... 그래, 예전에 삼촌이 그랬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여자한테는 절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그게 연애의 이치라고. 갑자기 왜 그 말이 생각나서.. 사람을 이렇게 슬프게 하는 거야.. 빌어먹을. 설날에 보면 한 대 때려줘야겠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당신 옆에 있는 여자를 너무도 사랑하는 것일까. 당연하겠지.... 그런데 너무 싫어. 내 자리가 당신의 옆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당신이 당신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 큰 상처가 되어 날 아프게 하는 거 같았다. 정말 당연한 건데 말이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의 여자가 미치도록 부러워. 많이 예쁘겠지? 뭐가 좋아서 당신이 그 여자를 사랑한 걸까. 그게 뭐든 나도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게 변할 수 있는데.. 나도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당신의 사랑을 당연히 받고 있는 그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 여자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뺏어올 거니까. 뺏어오고 싶은 걸 온 힘을 다해 겨우 참고 있는 거라고...
퇴근하는 시간, 사무실 근처에는 막 붕어빵을 구워내느라 분주하다. 그 고소한 붕어빵 굽는 냄새를 그냥은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또 들렀다.
"안녕하세요 ^^ 슈크림 15개, 팥 5개 주세요"
"퇴근하시나 봐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앞에 주문한 손님 먼저 드리고, 바로 해드릴게요"
"네"
사무실 출근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들리는 곳이었고,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주변에 서서 귓가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의 잘생긴 얼굴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그리워하고 추억했다. 그럴수록 그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여 슬픔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슈크림 15개, 팥 5개 맞으시죠?"
"네, 맞아요"
"기다리기 지루하실 텐데 드시고 계실래요?"
"네, 주세요"
그렇게 야금야금 올려놓은 슈크림을 10개째 입에 넣을 때였다.
"점심식사 안 하셨어요?"
"아뇨, 먹었는데요?"
"아...."
많이 먹는 모습에 조금은 당황한 모양이었다.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으니까.
"아, 제가 좀 많이 먹는 편이에요... 하하^^"
2개만 더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날 돼지라고 생각할 붕어빵 장수 앞에서 그 눈빛을 받으며, 붕어빵을 먹을 용기는 내게 없다.
"잘 먹으면 좋죠!! 많이 먹어도 살도 안 찌고 부러워요"
"먹는 만큼 쪄요..."
"날씬하신데요?"
"먹으려고 관리해요^^"
"목 안 마르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네^^"
붕어빵이 다 되면 버스 타고 곧장 집에 갈 수 있으니, 화장실은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여 한잔도 마시지도 못해 목마른 상태에서 그가 건네는 종이컵 가득히 부은 식혜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달콤했으며 달달하고 맛있었다.
"집에서 만드신 거죠?"
"네, 엄마가 해주셨어요."
"너무 맛있어요^^ 아! 저 슈크림 5개 더 구워주세요."
"네, 맛있게 구워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저, 손님! 부적드릴까요?"
"네????"
"정말 특별한 부적이에요"
그러면서 장갑을 벗어 핸드폰 케이스를 벗겨내며 작은 부적을 꺼내보여 주었다. 옹기종기 작은 부적이 꽤나 앙증맞고 귀여웠다.
"너무 귀여운 부적이네요"
"얼마 전에 여학생이 '사랑의 부적'이라면서 주고 갔는데 효과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제게 주신다는 겁니까?^^"
"주고 싶어서요"
"저 가져도 돼요?"
"네. 좋아하는 색상으로 4개만 가져가세요"
어떤 색상을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랑의 부적을 당신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기분 좋았다. 사랑의 부적, 정말 사랑을 이뤄주는 부적이 효음을 발휘해 당신이 날 좋아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삽시간에 내 기분을 말랑거리게 만들었다.
"저... 5개 가져도 되나요?"
"맘에 드세요?^^"
"너~무요!!^^"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모양이 꽤나 서글서글해 보였다.
"이렇게 다섯 개 할게요!"
반대편에 있는 붕어빵 장수가 부적을 볼 수 있게 펼쳐 보여 들었다. 다시 서글서글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부적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당신을 만나면 어떤 색상을 줄지 한참을 행복한 상상을 하던 참이었다.
"저.. 손님이랑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네??"
이어폰을 빼고 잘못 들었을지도 모를 말을 되물었다.
"남자친구 있으세요??"
"남자친구는 없고, 남편은 있어요"
"결혼했어요???!!!!"
"네!!!!"
적잖게 놀란 듯 크게 말하는 상대가 웃겨 나도 모르게 똑같이 힘주어 대답해 주었다. 귀여웠다. 딱 봐도 액면가는 20대가 분명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여덟이에요"
"와ㅡ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제 또래인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와... 소름. 저보다 13살 많으시네요"
"저 그렇게 어리게 보셨어요? ㅋㅋ 너무 감사한데요?"
"와, 충격이에요"
연신 붕어빵을 구워대며 감탄사를 만발하는 젊은 총각이 마냥 귀여웠다.
"진짜 나이가 이렇게 많으실 거라곤 전혀 생각 못했어요"
"^^"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네? 저를요?"
"네"
"아뇨, 싫어요^^"
"그럼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누나가 좋겠네요. 누나라고 불러요"
"ㅋㅋㅋㅋ네 누나"
그렇게 나는 새로운 동생이 한 명 생겼다. 동생이 하나 생긴 기쁨보다 어른 남자에게 전해 줄 부적이라는 핑계가 생겨 나를 빠르게 사랑으로 채웠다. 이 부적이 사랑의 부적이면 덧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당신을 보러 갈 명분이 생긴 듯해서 그마저도 나는 좋았다.
새로 생긴 동생은 내가 나이가 이렇게? 많지만 않았어도, 남편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더 가깝게 친해지고 싶었다고, 그리고 항상 무표정으로 있다가 언제 한번 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예뻐 보였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 총각은 알지 못했다. 다시는 그 붕어빵에 붕어빵을 사러 가지 않을 나를 말이다.
어른 남자도 내게 이런 마음이겠지?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므로, 반겨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뻔뻔하게도 당신을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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