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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19 착각


어쩌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해봤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를 돌이켜보면요, 어떤 느낌이냐면요, 아주 더운 여름날에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가 시원한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을 때 느껴지는 해갈의 쾌감에 가까워요. 그 해갈의 쾌감이 너무나도 좋았던 거죠. 당신이 지금 내게 그래요. 당장 눈앞에 있는 시원한 물을 나는 마시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내쪽에선.
그래서 그토록 깊게 순간의 쾌락에 빠져들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아주 외롭고, 사랑을 동경하는 영혼이었으니깐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당신이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시작은 내가 당신을 혼자 몰래 좋아하고 동경하는 짝사랑에서부터였어요. 그러다 지금은 점점 내 욕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어요. 왜 나는 당신을 만지고, 만져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욕정을 알아버린 탓일까요.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당신에 대한 잘못된 욕망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해 버린 걸까요. 마치 며칠을 쫄쫄 굶고 있다가 당신만 보면 게걸스럽게 당신을 탐식하는 육식동물이 되어 버린 듯해요. 그동안 몰랐던 욕정이 한꺼번에 해소되고 마는, 너무나 강렬한 느낌에 멈출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또 이쪽으로만 완전히 치부해 버리기엔 다른 감정들이 반발이 심해요.
사회가 공인해 준 안정적인 관계에서 주는 평안함과 안락함 속에서도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꼬리표를 달고 다닐지라도, 당신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하는, 불행한 일이지만 당신이 내 옆에 있기에 행복하다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헷갈립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당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인지.
이걸 어떻게 구분해야 될까요... 사랑이 아니라도 문제고, 사랑이 맞아도 문제가 되는 이 알 수 없는 것들을요....
옳은 것을 죄다 버리고 틀린 것만 죄다 끌어안고 있는 듯해서 몹시도 슬픕니다.
그런데 또 당신 말고는 싫어요. 당신 말고는 안 되겠어요. 오직 당신이기에 나를 만지는 것이 의미가 있고, 오직 당신이기에 당신을 만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사실 몰랐어요.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첫 남자와의 손길이 너무나도 슬퍼졌어요. 서로의 성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기에 그 적정선을 지키며 성욕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의무적인 사랑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보니 적잖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숙제처럼 하고 있는 나를요. 한쪽에선 그러하지 않은데, 한쪽에선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듯해서 슬퍼요.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욕망하는 사이. 사랑이 욕망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건 아니지만, 욕망 없는 사랑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나는, 당신을 욕망하고, 사랑하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내 사랑을 미화하려는 말이 결코 아니며, 해답을 내놓으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저 내 직업상 애매모한 감정들을 쏟아 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성격일 뿐이니깐요. 항상 말하지만, 내가 하는 사랑이 아무리 욕망이 가득 담긴 사랑일지라도, 당신이 받을 내 사랑은 무해한 사랑만 보냅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은 무해한 사랑만 보내려 부단히, 정말 부단히 애쓰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이러다 제 풀에 지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아마 얼마 남지 않은 듯해요. 지금도 사실 충분히 힘들거든요.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끄적인 것들이 모두 당신에 대한 고백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어요. 또 한 번 확실히 알아버렸네요. 무척이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
결국, 나는 당신에 대한 욕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알아버렸습니다. 나의 모든 생활이 완벽하나, 당신을 갖지 못한 나는 그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해요. 그동안 쌓아 올린 삶이 완전히 파괴될까 봐 하는 두려움은, 점점 몸만 남은 빈껍데기만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두 욕망들 사이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정적인 삶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과 나의 본능의 욕망. 어찌 되었든 정해져 있는 뻔한 결말에 예먼 나만 이래저래 치이고 힘에 부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