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첫 향은 사랑이고, 잔향은 미련이다.
그를 만났던 모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야금야금 내 기억에서 서서히 흐려지겠지만, 그를 보고 느꼈던 내 감정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더 하겠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니까... 그에게 나는 금세 잊히고 말겠지. 금세 잊히는 기억 가운데서 향에 담긴 감정은 오래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샤넬 코코누와르 오드퍼퓸 향수의 진한 향을 맡으면 개자식이 바로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그의 살냄새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체취라 불린다. 그의 체취는 섬유유연제와 같은 인위적인 향이 뒤섞여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의 본연의 향을 분명히 기억한다. 물론, 나의 청각, 후각, 시각이 굉장히 예민한 탓이겠지만 말이다. 체취는 주로 땀냄새로 좌지우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체취는 목에서 경동맥이 뛰는 부위에서 잘 맡아지는 듯하다. 처음 그와 얼굴을 가까이 닿았을 때 그때 그의 살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타인의 체취는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봤다. 후각과 정서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상대의 살냄새가 좋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공포증이 있는 이에게 타인의 땀냄새는 이 질환을 완화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는 땀냄새를 싫어하는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다.
통상적으로 그의 나이대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는 일명 '아저씨 냄새'가 대부분이다. 이 냄새가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에게 나는 즉, 홀아비 냄새와는 다르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뭐 하나 특별할 것 없이 매일 같은 생활에서 묻어나는 뻔한 생활습관 같은 걸 의미한다. 빙빙 둘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그에게서는 아저씨 냄새가 나지 않았고, 그의 살냄새마저도 좋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다.
그래, 맞아. 아주 정확해. 좀 더 솔직하게는 그의 목덜미에서 나는 그의 살냄새가 그립다는 것.
아니, 그런데 내가 바이러스가 많게 생겼나? 원래 일할 때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날 만날 때만 마스크를 굳이 쓰는 건지.... 알 수 없네 젠장.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물어봤는데 그의 대답이 후자면, 아마 나의 불같은 성격을 직접 보게 되는 자리가 되겠지?
'감성 글쟁이 > 엽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엽편소설)#1-136 가지 못하는 이유 (4) | 2024.10.30 |
---|---|
엽편소설)#1-135 꽃을 (2) | 2024.10.30 |
엽편소설)#1-133 그럴 수 밖에 (2) | 2024.10.29 |
엽편소설)#1-132 가을이지만 (1) | 2024.10.29 |
엽편소설)#1-131 사랑은 없지만, 사랑은 있다 (4) | 202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