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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25 적극적인 헤어짐




#적극적으로 멀어지렵니다

  누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는 감사하지 않는다. 없어본 적이 없으니 소중한 줄도 모른다. 나는 살면서 아쉬운 적도 부족함도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여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당연히 내가 누려야 되는 것이라 여겼다. 이번에 알았다. 손에 넣지 못한 걸 부단히 가지려 헤메 다니느라 살뜰히 살펴본 적도 없다. 잡은 물고기에는 눈길을 덜 주는 이치겠지.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이 주는 충격이 강렬하다. 포근함보다는 설렘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나도 그를 사실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가질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작가라는 직업까지 더해져 한낱 감정 유희일지 모른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가질 수 없는 첫 번째 대상이기에,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였기에 조금 더 감정과 감성이 애틋한 것이 분명하다. 맞아.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그러나, 언제나 나를 흔드는 건 바로 작은 바람 한 점이었다. 큰 바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 작은 바람 한 점이 나에게 잠시 머무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끝내 그 바람은 나와 그를 이어 주진 못한다. 닿았다. 분명 닿았지만,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이나마 그를 만질 수 있었다. 운명을 거스른 대가로 금방 사라져 버린 거겠지. 매번 같은 결과로 멀어지겠지만, 잠시나마 닿을 수 있었던 시간이 내게는 한없이 소중하다. 다시 올 수 없는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바람이 되어 그에게 부는 거다.


#회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없이 맑고, 더없이 순수하던 어른 남자.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에 대해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본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듯했다. 채워주고 싶었다. 내 사랑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다. 여린 마음을 갖고 있는 그 남자에게서 부드러움과 여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낯설고 어색하고 야한 그 풋풋한 배려가 그와 몹시도 닮아있었다. 닿고 있는 모든 피부들이 그에게 반응했고, 그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날 매료시켰다. 순수하고 바른 얼굴을 완전 무장한 바람둥이였다. 나는 또다시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맑은 눈으로 나에 대한 마음이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아니라고 했다. 호감이었고, 설레었다고 했다. 그 말과 함께 결코 닿을 수 없는 빤한 이야기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설명했다. 뒷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좋았다. 나는 또 한 번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아야 함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가 내게 머물렀던 시간이 현실인지 망상인지 꿈인지 헷갈리지만, 그가 내게 남겨두었던 그의 흔적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 그와 닿았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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