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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06 제목없음



평범하고 평범한 내 일상생활에 설렘은 처음이었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단단해지고 감정이 무뎌진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만나고 모든 게 달라졌다. 그와 함께하는 짧은 모든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특별했다.
아주 간단한 말, "밖에서 한번 봬요"라는 한마디가 이리도 어려운 줄 몰랐다. 수없이 연습하고 연습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다른 사람들은 가벼운 말일지 몰라도 내게는 조심스러운 말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좋아하는 마음, 그 선을 넘는 게 두려웠던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다들 이렇게 산다고. 그런데 그가 나타나면서 모든 걸 뒤집어 놓았다. 놀라운 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그의 존재 자체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번 생에는 끝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러다 결국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이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식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커지는 마음에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멈추기 위해 한정을 걸어두었다. 이번달까지라고.
내가 하는 사랑에 그의 답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였다. 계속 곱씹어보아도 이제는 이게 맞는 말인 거 같다. 그가 현명했고 옳았다. 내 마음은 고맙지만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 현실적인 대답이었고, 착하고 바른 사람이 내게 상처 주지 않고 거절하는 현명한 답이었다.  똥멍청이는 그가 아니라 나였다.
구차하고 그것도 아주 지질하게 막무가내로 매번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데 귀찮아하지 않아 감사하다. 또 모르지, 진짜 귀찮아할지도. 그렇지만 내게 티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다 나는 그가 좋아졌을까 이 사랑의 결말이 정해져 있는데, 어쩌자고 이렇게나 사랑하게 된 걸까.
혼자 애만태 우다 끝날 것인데.... 그럼에도 나는 그가 너무 좋아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다.


#탑마트
부모님 댁 건너편에는 조금 큰 마트가 하나 있는데, 편한 몸빼 옷을 입고 마트에 심부름을 갔다. 정신없이 장을 보고 과일코너로 가는 길에 그를 보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탓에 키 크고 잘생긴 그와 닮은 사람을 그냥 어른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였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저번에도 탑마트에서 일하는 저 남자를 어른 남자로 오해한 적이 있었다. 묘하게 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장보고 나오는 길에 나는 웃음이 났다.
여전히 그를 쫓고 있는 내 눈이 그가 아님을 알고 조금은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 나온 헛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