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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97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겠다.
그의 모든 것을 떠안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무모하고도 무모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참 겁도 없는 생각이다.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우습게도 이런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그런 나를 보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사랑해야 이런 마음까지 들게 하는 걸까. 곧 있으면 그는 나를 떠나가지만, 나는 여기 계속 머물러 있을 걸 알기에. 나는 겁이 난다.
축복받지 못할 사랑이라,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그를 보고 있지만, 그 떨어진 거리를 계속 좁히고 싶어 진다. 이제 진짜 그를 나에게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래도 된다고 내가 날 유혹하고 있다.
매일 그립고 그립지만 지금은 그가 너무 보고 싶다.
혹시 그는 알까? 웃을 때마다 양쪽눈 아래에 세 개의 진한 주름이 생긴다는 걸. 정말 예쁘게 빛나던데. 그가 넘어온 세월을 기록한 훈장이 어딘가 뭉클하고 대견하고 아름다워 그 모습을 사진처럼 내 마음에 담아 버렸다. 한 번은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눈가를 만져보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언젠가는 한 번은, 눈꼬리 늘어뜨리고 웃는 그를 보고 같이 따라 덩달아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상상했던 내가 오늘따라 유난히 애잔하게 느껴진다.



다 드신 그릇은 자리에 두고 가시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팍팍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요즘, 세상 살기 쉽지 않다. 금요일 창원에 한 식당에서 사장님의 작은 센스 있는 문구 하나가 나를  일렁이게 만들었다. 꼭 나와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이 말이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소중히 내어드렸던 내 마음. 거기 두고 가면 내가 정리할게요. 다 끝난 후에 내 마음이 그를 부담스럽지 않도록 내가 전부 정리할 터이니 그는 평안하고 평온하길 바란다. 이제 갈 길 가시면 된다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정말이지 많다. 꼭 말해주고 싶은 말 중에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라서 참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불안한 나는 그와 있는 시간만큼은 안전한 시간이었고 안전지대였다. 감사하게도 어떠한 불안으로부터든 그와 함께 있으면 더 이상 불안은 진행되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아도 그에게선 안전했다. 나 역시 그에게 내가 안전지대이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그를 사랑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계속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이 깊어질수록 내 사랑이 그를 다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둬선 안 되는 일이다. 감사함을 이렇게 그에게 보답해서는 안된다.

나에게 그가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하듯이
단 한순간이라도 그에게 딱 한 번이라도
내가 그에게 찬란하고 소중했길 바라본다.
그렇게 점점 그와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