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51 지독한 사랑


내 인생에 찰나의 순간만큼 짧은 그와의 모든 시간들이 내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라는 존재만으로 나의 시공간을 완전히 왜곡시켜 버렸고, 그 안에서의 시간들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그렇게 나와 그와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영원으로 남았다. 그를 알기 전 시간들은 무의미하게 흘러 내게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듯했다. 그와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그만큼 더 강렬하게 나에게 흘러가고 있다. 내가 그를 지독하게도 간절하게 사랑하고 있기에...
불안한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그를 동경이라는 감정에서부터 처음 시작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과 같은 끌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히 동경하는 마음만 내게 있는 건 아니라 생각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여유로움'을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게 아니었음을. 나는 분명, 그냥 그를 보고 있었다. 수식어 따위는 내게는 그를 보는 핑계였음을 알게 되었고, 내 눈은 남자인 그를 쫓고 있음을 정확히 알았다.
그를 향한 마음을 처음 인정할 때는 내 사랑의 본질은 착한 사랑이었다. 그가 누구든, 여자가 있든, 처자식이 있든 내 알바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숨기고 그를 몰래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으니까. 헌신적인 사랑, 내 마음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온전하게 깊이 나는 그를 순수하게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먼저 나에게 여지를 준 것이다. 분명히 짝사랑만으로도 나를 충만했던 내 사랑에 여지를 준 건 그가 먼저였다. 짝사랑하던 상대가 보인 관심은 나에게는 마치 깜깜한 암흑 속의 한줄기 빛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사랑이 변질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 떨리는 나는 그를 잠시는 내가 가질 수도 있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기고,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으면 그때 멈췄을 터인데 나는 알지 못했다. 내 짝사랑이 첫사랑이었기에.
그는 나에게 여지를 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를 몰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 반대인가? 알고 여지를 준 건가?
내 마음에서 한번 생긴 욕심은 계속 변질되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 하고 알고 싶어 한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은 여전히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 붙여질 수식어를 마땅히 찾지 못하고 있다. 나쁜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내 사랑은 너무나 지독히 슬프고 너무나 아프다. 그렇다고 다시 순수한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그를 갖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이 나를 가득 채우고 물들어서 순수와는 거리가 멀다.
내 인생에 허락된 내 사랑이 여기 까진 걸 안다.
하루가 지옥같이 버겁고 힘에 부친다. 그래도 멈추질 못하고 있다. 그의 그 작은 여지로 인해 나는 그를 향한 마음을 멈추기를 멈췄다. 행여나 그가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는 그가 이 글을 봐주길 간절히 바란다. 용기 없는 나는 결국 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될게 안 봐도 빤하다. 그래서 그냥 내 글을 그가 알아주고 읽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그 여지가 그냥 장난이 맞다면, 진심인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날 피하겠지. 날 밀어내겠지.
그런데 아직도 내 글을 못 찾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이래서 내가 그에게 직접 용기 내어 고백하려는 거다. 그는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눈치챘을 수도 있다. 내 행동엔 명확한 "사랑"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니 당연히 눈치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토록 가슴 절절이 그를 좋아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겠지. 그래서 내 마음을 낱낱이 까발려 줄 생각이다. 그가 받을 충격 따윈 내 알바 아니다. 지금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데 그의 마음까지 신경 써줄 여유가 내게는 없다. 일주일 뒤에 그를 보러 갈 것이다. 꼭 할 말이 있다고, 그는 꼭 들어야 한다고, 그러니 내게 딱 한 시간만 내어주라고, 사무실 밖에서 만나달라고 말할 것이다. 나에게는 평생 쓸 용기를 죄다 끌어모아야 되겠지만 꼭 말하고 올 거다. 그가 다음 주에도 날 배웅해 주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라본다.
이런 와중에도 그가 보고 싶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또 얼마나 길지 숨이 막힌다.
또 만나면 맑간 얼굴로 잘 지냈냐, 요즘 잠은 잘 자냐 식상하고 빤한 인사말을 하겠지. 그럼 나는 또 거짓말을 하겠지. 잘 지냈고, 잠도 잘 잤다며 말이다.
고백할 때 꼭 말해줄 생각이다. 너 때문에 못 잤다고 말이다. 말할 수 있을까? 고백만으로도 엄청난 용기를 내야 될 거 같은데 가능할까? 그냥 편지를 쓸까? 아니지..  이 나이에 10대도 아닌데 편지를?? 편지는 아니다. 그리고 난 악필이다. 구구절절하게 써도 그가 읽지 못하면 헛일이겠지 ㅠ  
내가 하는 사랑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여지를 준 그가 밉다. 그에게는 장난이었을 그 여지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어도 나의 짝사랑의 결과는 다르지 않다는 거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의 여지가 장난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그와의 시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나에게는 그와의 짧은 모든 시간이 내게는 계속 흐를 것이기에. 제대로 알고 싶다.
뻔하고 빤한 그의 식상한 인사말이 너무 듣고 싶다ㅜ
잘 지내셨어요? 그 한마디면 모든 걱정이 씻겨나갈 텐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