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
순결한 성모 마리아처럼 고귀한 목련_
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 위,
혹독한 겨울을 온몸으로 견디어
따뜻한 온기에 사랑을 속삭이더니
젖가슴인양 몽우리가 부풀어 올랐다.
포근한 햇살과 따사로운 바람이 빚어내어,
한 겹 한 겹 꽃망울 터질 때 비로소 눈부신 여인이 되었다.
송이송이 피어난 커다란 꽃잎은
어쩐지 기품 있고 화사하고 단아하다.
지나가는 바람마저
지나가는 구름조차
아름다움에 취해 걸음을 멈춘다.
순간, 하얀 꽃잎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나무 전체가 환하게 밝혀졌다.
고귀하고 순결한 목련,
가히 누가 꺾으려 드는가.
목련이여,
활짝 벌리어 피어나거라.
아름다움에 흠집을 내고
순백의 드레스를 벗기려 할 때
그때는 여지없이 죽거라.
고귀하고 순결한 목련이여,
꽃잎이 떨어져 누렇게 색이 변색될지 언정
애처로이 최후를 맞는다 해도
미련 없이 지거라.
바람에 흔들리고
온기에 흔들리다
하얀 꽃잎이
툭 툭 묵직하게 떨어진다.
하얀 꽃잎은 어느새 갈색으로 물들고
숨이 꺾인 채 바닥에 나뒹군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간 자리,
흉측한 잔재들만 남아
이루지 못한 사랑의 꽃말로 남아
절정에서의 추락으로 생을 마감하니,
절규와 신음이 꽃잎에 흘러넘친다.
맵싸함과 살짝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풀내 같은 생화향이
마치 생을 마감한 목련의 생 발악이렷다.
가지 위에서 빛나던 꽃들은
어느새 땅 위에 내려앉아
봄의 흔적으로 남긴다.
잠시 피었다
금방 지기에
더 힘껏 피어나는 고달픈 삶.
그래도
질 것을 알면서도
매년 가장 환하게 피어난다.
한 번에 열고
한 번에 밝히고
한 번에 지고
한 번에 봄을 알린다.
잠시 피었다가
조용히 내려앉는 꽃처럼
그대와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개화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순백이라 부른다.
나는 그대를 목련처럼 애련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온기와 찰나를 기록합니다.
기억의 끝자락에서, 아니.
어쩌면 계절의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것들을 위로하며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합니다.
잠시 머물게 하고, 흘러가지 못하게 하고,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하는.
결국 또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기어이 도착하게 되죠.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있다는 것.
내게는 계절이 그러합니다. 겨울이 오면 봄이 찾아오고, 봄이 오면 여름이 오듯, 결코 계절은 징검다리로 건너뛰지 않습니다. 짧은 생의 경험으로 여름과 가을의 순서가 뒤바뀐 적이 없었고, 어디에서도 계절이 제 순서를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분명한 일이지요.
이 분명한 일들에 시시콜콜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이 쓰이는 건 이다지도 짧게 지나가려는 봄 탓일까요. 하릴없이 흘러가는 거대한 자연의 시간 탓일까요.
핀지 얼마나 되었다고, 고담새 져버린 허망한 마음은 목련만 할까요.

게 중에 살아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것들 중에는 보란 듯이 살아남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 기나긴 추운 겨울날, 봄이 왔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와도 저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추위에 오래 눕혀둔 마음이 동상에 걸려버렸으니까요. 온기 가득한 바람이 굳은 몸을 천천히 녹여주었습니다. 봄은 이미 기척을 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을 벗지 못한 사람처럼 버거웠습니다. 늘 그렇듯, 계절은 앞서고 나는 뒤돌아 서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나는 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다시 따뜻해질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리고 맙니다.
봄은 먼저 와 있었고 끝내 살아남은 것들이 순해진 봄바람을 맞고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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