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가정의 달은 가족과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이 많은 만큼,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의미 있는 달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유독 기념일이 많은데, 그중에서 오늘은 어버이날에 대해 남겨봅니다.
매년 어버이날마다 아이들이 선물과 편지를 줘요.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어색하고 머쓱해요.
'세상에... 나도 어버이였지?'
하면서요.. 첫째 아이가 4년 전 처음 어린이집에서 카네이션과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준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감동해서 울었는지 몰라요. 매년 부모님께 챙겨드리던 내가 받게 되는 입장이 되니, 사실 굉장히 낯설고 생소했어요. 엄마가 된 지 8년째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적응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어쩌면 내 무의식 중에 부모는 모름지기 거룩한 희생과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잎을 무성히 피운 나무 같은 느낌의 아이콘인데 나는 아이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지는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일도 너무 좋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어버이를 생각하는 시간이 잦아져요. 그들의 시간과 삶을 되돌아보고,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 눈물짓기도 하고, 먹먹해지기도 하고, 행복한 추억들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감탄하시는 모범생답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많이 사랑해요'라고 또박또박 외치는 첫째 아들 모습에 또 감동받아 우럭우럭 울어버렸어요 ㅠㅠ 덩달아 따라 우는 첫째와 멀뚱멀뚱 티슈를 뽑아 가져다주는 둘째.
발을 다쳐 유치원을 못 가고 있는 둘째 아이는 형아만 칭찬받는 게 못내 서운했던 모양인지 아끼는 보석 스티커와 집에 있는 조화 꽃을 뽑아서는 '나도 낳고 아빠도 낳고 형아도 낳고 고마워~ 사랑해~' ㅋㅋㅋㅋㅋㅋ 둘째의 엉뚱한 사랑 고백에 첫째 아이와 울다가 빵 터졌답니다.
형아: "엄마는 아빠 안 낳았어"
동생 : "왜?"
형아 : "아빠는 할머니가 낳았으니까"
동생 : "아니야!!!!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이모부 큰아빠 염소랑 꼬꼬댁이랑 전부 다 낳았어!!!!"
형아 : "엄마!!! 엄마가 알려줘. 말이 안 통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버이날 이틀 전 날, 시댁에 먼저 방문했어요. 남편과 저는 효도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혼 전에 이야기를 나눴어요. 자주 찾아뵙고, 손주들 보여드리고, 건강하실 때 모시고 좋은 곳에 구경 가고, 함께 식사하자고 했던 약속들을 여전히 지켜지고 있어요.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양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와요. 카네이션 생화와 작은 선물을 들고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양손 한가득 챙겨 왔어요. 부모님은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님이시니까요. 자랑이지만요, 시댁 부모님께 사랑둥이, 애교쟁이, 보물단지 며느리거든요^^
어버이날 하루 전 날, 친정에도 다녀왔어요. 꽃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사위가 준비한 카네이션과 꽃을 보시곤 너무도 활짝 웃으셨더랬죠. 거창한 선물과 이벤트는 없지만요,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자주 웃는 모습 보이는 걸로 효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 듯,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부모님은 자식에게 주고 더 주고도 더 줄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시는 부모님, 내리사랑은 치사랑을 결코 따라가지 못하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느낍니다. 어린 시절, 우주라고 생각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그저 받기만 했어요. 늘 식탁에는 따뜻한 밥이 있었고,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계셨고, 밤새 걷어차는 이불을 덮어주시는 엄마의 손길이, 아팠던 날에 이마를 만지던 엄마의 걱정과 이른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귀가하며 묵묵히 가정을 지탱하셨을 아빠. 그땐 어려서 이런 수고를 느끼지 못했어요. 아니,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러나, 부모가 되어보고 인생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살았을 부모님이 얼마나 힘겨웠을지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모성, 부성이라는 말만으로도 위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듯해요. 나이가 들수록 '엄마아빠'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지난 과거의 추억들과 그리움만의 이유는 아니에요. 그때는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고통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너무 늦은 깨달음에 가까운 듯합니다.
기억의 요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어요. 부모는 자식에게 못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와 함께 행복한 것만 기억한다는 사실이요.

사실은요, 자식들은 모르는 거 같아요. 존재만으로 효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배시시 웃으며 파고드는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밥 잘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부르고요, 언제나 내 품으로 힘껏 달려오는 작은 발걸음도,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도, 아이의 따뜻한 온기도, 종알종알 대답하는 입술도 죄다 사랑스러워요. 이 행복한 기억들과 추억들이 내게는 아이들이 주는 가장 큰 효인 거 같아요.
때로는 힘들 때도 많지만요, 아이의 예쁜 눈과 마주치면 사르르 녹아버리는걸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위로와 에너지가 굉장하다는 걸 배워요.

둘째 아이가 스티커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티커가 바로 제 얼굴에 붙여진 보석 스티커예요 ㅎㅎㅎ 발을 다쳐 유치원에 갈 수 없던 둘째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스티커를 엄마에게 내주었어요. 반지스티커는 손가락에, 귀걸이는 귀에, 보이진 않지만 뒷머리엔 왕관이 한가득 붙여져 있답니다. 붙이면서 '엄마! 공주님 같아', '예뽀예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티커 전부 양보한 거야'를 연신 내뱉으며 생색이란 생색을 다 냈답니다. 결국... 나중에 다시 스티커를 가져가서 서랍에 넣긴 했지만요^^;
가장 아끼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엄마인 내게 줬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행복했어요. 비록 스티커이지만, 그 마음을 받은 저는 그 이상이었으니까요.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주는 아이들을 보면, 제가 잘 키우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아이들이 저를 엄마로 키우는 거 같아요.
어버이 은혜에 감사를 드렸고, 어버이 은혜에 감사를 받았어요.
어릴 때와 지금의 나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엄마라니.. 어버이라니..
내년엔 어버이라는 말에 조금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요?

똑 부러진 첫째 아들과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둘째 아들 덕분에 어버이날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빨리 나아서 공룡 장화 신고 스파이더맨 우산 쓰고 비놀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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