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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73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무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진
청명한 오늘처럼,
내 사랑도 그렇게 날 찾아왔다.
서늘한 바람에 실려온
나뭇잎처럼 그렇게 나에게 왔다.
걷다 보면 발걸음이 자꾸만 멈추게 되는,
어느새 가을이다.
초록스러운 색들이 제법 연해지는 것이 진짜 가을이다.
나는 또 준비 없이 여름과 이별했고,
나는 어김없이 또 새 계절을 준비 없이 맞이했다.
너무나 덥고 지긋지긋하게 더운 여름이었건만,
왜 항상 지나고 나면 그리울까?
매년 이별과 만남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지나간 계절에 대해 미련이 남는다.
마치 준비 없이 그를 나에게서 떠나보내야 하는 내 마음처럼.

계속 미련이 남는다.
그러나 이게 무엇에 대한 미련인 건지 잘 모르겠다.
미련인지 아니면 아쉬움인지 정확하게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날 위해 내가 하는 사랑이 짝사랑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절대 쌍방 사랑이 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말이다.
그와 쌍방 사랑을 하고 있다고 치자, 그럼 그때부턴 그는 나에게  혹여나 조금이라도 갖고 있던 호감이 곧바로 비호감이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나 혼자 할 때가 애틋하고 애달픈 사랑이란 말이다. 왜냐면 그는 내가 불안과 강박, 결벽이 얼마나 심한지 모른다. 그에게만큼은 무장해제가 되는 것도 있지만, 또 사무실에서 잠시 보는 것 만으로는 나에 대해서 일부만 보는 것이기에 말이다.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같이 따라가줘야 하고, 주유할 일 생기면 멀찌감치 떨어져서 숨어야 하고, 맨홀 뚜껑 보면 눈 감고 걷거나 돌아가야 하고, 잘 울고, 잘 웃고, 잘 놀래고, 징징거리고, 동그란 구멍만 보면 손잡아달라고 해야 되고, 거기다 무서우면 손도 빨고, 밥까지 많이 먹으니 말이다. 그런 날 보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귀찮아하겠지. 그래, 맞아. 짝사랑일 때가 차라리 다행인 거야. 나에 대해서 잘 모를 때 고백하고 튀는 거지!
나의 완벽한 계획이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짝사랑이 생각보다 나를 빠르게 사랑으로 가득 충만하게 만들지만, 반면에 차갑게 나의 감정을 얼어붙게 만든다. 한마디로 감정소모가 굉장히 심하다. 나는 애초에 불안한 사람인데, 예측할 수 없는 그의 마음과 내 마음을 끌어안고 계속 그를 좋아한다는 게 사실상 현실적으로 버겁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마음을 쉽사리 접을 수 없으니, 고백만이 내가 살길인 듯 싶다.
오늘 내 사랑의 날씨는 가을 날씨처럼 쓸쓸한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