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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296 간직할 기억이 있다는 건


#그날의 온기, 그리움으로 남았어요.

당신은 봄처럼 부드러운 낭만이나 한 여름 뜨거운 감정에 휩쓸린 것도 아니고요, 마음을 후벼 파는 가을의 쓸쓸함이 아릿한 것도 아니에요. 모든 것이 시리고 하얗게 얼어붙는, 코끝과 손끝이 아려올 만큼 추운 겨울이었어요. 당신이 내게 주는 계절은 겨울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 겨울마저도 좋았다는 걸 당신은 알까요. 비록 겨울이지만, 당신과 만난 그날은, 그 온기는 미지근했으니까요.
당신이 왜 그렇게 내게 다정하셨는지, 왜 그토록 따뜻이 대해주셨는지 알았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알고 계세요... 그렇죠?
이질적인 안심.
당신이 내게 향하는 감정이 사랑이 아닌 건 분명 슬픈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민과 동정이 나에게 해방감처럼 다가왔어요. 아무리 내 쪽에서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결코 닿지 않을 커다란 벽처럼, 선을 넘어가는 나를 올바르게 잡아줄 것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이상하고 낯선 감정이었어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안도감과 죄책감이 내 마음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여기저기 상처를 내고 있어요. 죄책감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겠다는 거야?'라는 말로 내 안의 안심을 마구 할퀴어 상처를 내고 있어요. 어쩌면 옳고 그름의 사이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거겠지요... 하나의 무엇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많은 감정들이 서로 뒤엉켜있어요. 그중에 가장 뚜렷한 감정은 사랑이에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꽤 분명하고 선명하거든요.
그동안은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품었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번에 알았어요.  당신을 애달피 사랑하는 나를 가엽이 여기고 당신은 당신이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준 것이죠.

"밥 같이 먹을래요?"

배려와 다정함이 물씬 묻어있는 한마디에 나는 그저 행복했어요. 짝사랑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거든요.. 그런 내게 당신의 한마디는 구원이었어요.
간직할 기억이 있다는 건, 내 하루가 연장되는 일이니까요. 연민이든 동정이든 미안함이든 내게 마음을 주는 게 쉽지 않은 입장에서 그는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배려와 다정함을 주셨어요. 잊고 있었는데 당신은 매사 여유 있고, 사려 깊은 어른 남자임을요. 당신의 그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했어요.
그날은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어요.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나를 기억하시어, 길바닥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릴 심산으로 엘리베이터로 가시다 우린 만났죠. 앞에 편집이 늦었다며 조용히 건네는 이유에,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숨길 수 있었답니다. 수더분한 당신의 낭만이 나는 참 좋아요. 당신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는 하루가 오늘도 차곡차곡 쌓여만 가요. 어쩌죠... 나는 당신이 너무 좋아요. 진정으로요. 그리고  당신을 내게 끌어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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