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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191 인디언보조개

사과



늙은 그가 막둥이라니.... ㅎㅎ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저 마냥 멋있기만 한 어른 남자가 '막내'라는 타이틀이 생기면서 갑자기 귀여워졌다.
반백살 아저씨가 막내라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느낌이냐면... 성인용에서 한 순간에 유아용이 된 기분이랄까 ㅎㅎ
그래서 그동안 어르신의 나이에도 사랑스러웠나 보다.
하긴, 어른 남자도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늘 단면적인 면만 봐왔으니깐. 허둥지둥 달려와 늘 긴장하고 정신없는 모습들만 기억하겠지. 강연할 때의 모습이라던가, 일할 때의 모습이라던가, 라방할 때의 모습이라던가, 책 읽어줄 때 모습이라던가 등등 그는 결코 알 수도, 볼 수도 없겠지. 나의 즐거울 때도 마찬가지겠지. 가령, 나의 당구 치는 모습이라던지, 친구들이랑 망가지며 놀 때라던지, 러닝 하는 모습이라던지...
그러고 보니, 그가 멋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들만 나는 봤었네. 본인 일에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모습.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어. 결코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었어. 그의 잘못도 일부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나는 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서로 기억하겠지?
그를 보러 가는 진짜 마지막 시간에 내가 작가로 강연할 때 내 강연을 꼭 한 번은 보러 와달라고 해야겠다^^
강연 중에 그를 보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를 더 이상 보러 가지 않는 상황일 테니 아마 더 더 반갑겠지? 아니지, 단순히 반갑기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강연이고 나발이고 그에게 달려갈 수도 있다.
주말에 강연이 잡히면 그가 혹시 와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떨쳐내고 만다. 어르신은 내 필명조차 모르기에.... ㅜㅜ 아마 내가 알려주기 전에는 절대 모를 것이다. 똥멍충이.

#금요일 사무실

"과장님, 왜 자꾸 웃어요?"
"아니야"
"아 뭔데요!! 옆에서 자꾸 웃으시니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씨는 형제가 어떻게 돼?"
"저는 삼 남매 중 장남이에요. 왜요?"
"**씨가 첫째야??"
"아뇨, 누나 있어요. 전 둘째고, 장남입니다. 밑에 남동생 하나 있고요"
"아~~ 장남이었구나ㅎㅎㅎ"
"네.. 네?? 이야기 끝난 거예요?"
"응"
"과장님은 외동이죠?"
"아니, 나는 삼 남매 중 첫째고, 장녀야. k장녀ㅋㅋㅋ"
"첫째 딸이었어요? 소름. 외동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막내 거나"
"왜??"
"그냥 느낌에 그랬어요"
"왜 말을 아끼는 느낌이 들지?? 나를 철없는 막내나 외동으로 봤다는 거지?"
"아니, 아니에요!! 과장님이 많이 밝으셔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외동딸이겠거니 생각했었어요"
"나 밝아?"
"네. 이렇게 밝은 37세는 처음 봐요"
"칭찬 맞제?"
"네. 근데 형제는 왜 물어보셨어요?"
"그냥 궁금해서"


가만히 있다가도 그가 막내라는 사실이 떠오르면 나의 광대는 올라가고 웃음이 피어난다^^
귀여워....
아참, 그는 인디언 보조개가 있었다. 몰랐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막 크게 웃고 하는 일이 없기도 하니깐....
여하튼 그는 웃을 때 눈밑 옆광대 쪽에 인디언보조개가 움푹 파였다. 매력적이다. 사실, 주름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안경을 쓰지 않아 흐릿하게 보였거든...
다음에 그를 보러 가면 그가 스스로 벗기 전에 내가 먼저 마스크를 벗겨내 얼굴 가까이에서 봐야지. 윽... 보조개 만져보고 싶다ㅜ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벗길 수 있으려나... 도박을 걸어서라도 꼭 가까이에서 봐야지! 너무 보고 싶어 ㅠ 당황해하시겠지?? 근데 뭐 어쩔 수 없다. 내 손으로 벗겨내서 볼 것이다. 스스로 벗기까지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또 너무 멀어서 또렷하게 보이지 않으니깐. 내가 직접 벗겨 내야 가까이서 보지. 망할 마스크.
근데... 나 또 가도 될까? 그가 싫어하지 않을까?
부담스러워하려나... ㅠㅠ
가서 물어보까...? 내가 부담스럽냐고.....
배려와 사려 깊은 어르신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시겠지? 하....  내가 그냥 사직서를 던지고 출근을 안 하면 끝인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단 말이야ㅠ 근데 주말 지나면 글은 다 쓸 것이고 그를 보러 갈 거다... 유일한 낙이니까.
그래, 용기 내서 물어보자!
마스크를 벗겨보고 또 내가 부담스러운지 물어보자....
그를 안 보는 것보단 쉬운 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