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3 악수할래요?

호호아줌마v 2024. 9. 9. 18:02


#사무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직장. 민원고객이니 내방 고객이니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회사에서 가장 좋다. 오전 시간이 끝나갈 때쯤.

"징징징ㅡ징징징ㅡ"

곧 휴대폰 액정에  <외할미❤️>라고 뜬다.

"할매~~"

"여보쇼? 가쑤나야 니는 추석 앞에 할매한테 함 와보도 안하고 전화도 한통 없노"

"추석 때 보러 갈랬지. 우리 예쁜 할매 왜 또 씅나쏘?"

"느 외삼촌 내려왔다. 지금 안 바쁘면 외할비한테 같이 가자꼬"

"삼촌 왔는데 오붓 하이 둘이 가지. 손녀보다 아들이 좋다며! 나는 와 데꼬갈라카노??"

"지랄!! 기차 타고 지 혼자 진주 쳐내려 왔다. 처자식 다 내비두고 혼자 쳐와서는 술 쳐 먹고 이제 집구석 들어왔다"

"할매 씅 마이 났네ㅠㅠ 지금 바로 갈게. 할매 집으로 가?"

"오야. 단디오이라. 주 밟아오지말고"

"웅! 소주 말고 막걸리 사놔"

그 길로 나는 퇴근했다. 옷 갈아입고 갔다간 성질 급한 할매 큰 일 치르겠다 싶어 곧장 갔다. 할매와 작은 이모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나보다 10살 많은 우리 외가댁 말썽꾸러기 외삼촌!

"우리 쌀강아지 와이리 살이 빠진노? 오데 아프나?"

"젊은데 만다꼬 아플끼고. 다이어트 했지"

"지랄. 다 늙어서 뭐 한다고 살을 쳐빼샀노. 인덕없어 보이그로"

"요새는 돈주면서 살을 빼는 세상이다. 예뻐보이그로"

"배가 쳐 불러서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하고 앉아있다. 밥은 먹고 댕기나? 누가 니 애먹이나?"

"아이다. 건강해질라꼬 운동했다."

짧고 긴 인사가 끝나고 삼촌을 깨웠다. 그럴 줄 알았다.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뚱땡이에서 다시 돌아왔네"라고 한다. 옆에 있던 이모가 "조카한테 뚱땡이가 뭐이고?"

그렇게 우리 넷은 내 차를 타고 외할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트렁크에 있는 슬리퍼를 꺼내 구두를 갈아 신고 선산으로 향했다. 이모는 무릎이 아픈 할머니를 부축하고 나와 삼촌은 짐꾸러미를 들고 따라갔다.
여름이라 풀들이 많이 자라 올라가기 힘들었고, 스타킹에 슬리퍼를 신은 터라 계속 발이 미끄러졌다. 모기까지 윙윙 거리고 ㅜ
겨우 도착했고, 아빠가 벌초해 놓으신 깔끔한 외할아버지 묘비 앞에서 삼촌과 이모 그리고 나는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붓고 절을 올렸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내려가자 말씀하셨고 우린 다시 내려갔다.
미끄러운 곳에는 삼촌이 먼저 내려가 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어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외가댁 자칭 말썽꾸러기 삼촌이 "여자 손잡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말했다. 할머니는 "지랄하고 자빠졌다"라고 말하셨다.
오르막길은 괜찮았으나 내리막길은 슬리퍼가 계속 헛돌았고 결국은 슬리퍼가 벗겨져 바닥을 밟고 말았다. 나는 결벽이 있는 사람이라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걸 아는 삼촌은 놀리기 바빴다. 놀리는 사람에게는 무반응이 약이니라. 대꾸하지 않고 내려갔다. 선산에 올라갈 때는 풀을 잡고 올라갔으나 내려갈 때는 조금 무서웠다. 결국 나는 뒤쳐졌고 삼촌이 다시 내게 오면서 한마디 했다.  "뭐 한다고 산소 가는데 치마를 입고 왔어?"
"사무실에서 전화받고 바로왔어.니가 술 안마시고 차들고 왔으면 됐었잖아!"
"귀 아파. 팔 좀 들어볼래?"
결혼 후 서울에서 줄곧 지내면서 서울말투와 경상도 말이 섞여 말투가 너무 오글거리는 말투로 바뀌었고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나에게 따라 하라는 듯 삼촌 양쪽 팔을 드는 시늉을 했고 나는 삼촌을 따라 팔을 조금 들었다.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날 들고 가파른 곳에서 내려줬다.
"너 40킬로는 나가?"
"어, 43킬로야"
"그래서 너 젖가슴이 다 없어졌구먼?"
"야!!!!!!!!!!!!"
결국 나는 고함을 질렀고, 뱀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삼촌에게 꼭 서울로 뱀을 산채로 잡아 보내겠다 다짐했다.
사무실에 신는 약간 굽이 있는 슬리퍼라 나는 자꾸 뒤처졌고,

"네가 가야 차문 열거 아냐. 더워. 빨리 가자"
삼촌이 손을 잡았고, 그렇게 내려왔다.
또 철딱서니 없는 삼촌은
"진짜 여자 손 잡아본 게 10년은 된 거 같아"
"바람둥이가 하는 말을 어찌 믿니?"
"내가 너 숙모한테 잡혀 살잖아. 진짜 운동만 하고 운동만 가르쳐주며 산다. 아~옛날이 그립다"
맞다. 삼촌은 조금 반반한 얼굴을 믿고 여러 여자를 많이도 울린 못된 남자다. 결국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했던 그 이모를 두고 친구들과 함께 간 클럽에서 지금의 외숙모 즉 연상을 만나 아이가 생겼고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 후 꽉 잡혀 살고 있다. 아직도 그 이모를 가끔 들먹인다. 1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물었다.

"10년이 넘었는데도 생각나?"
"응 가끔"
"어떤 마음인데?"
"결혼하고 얘 낳고 잘 살고 있겠지 싶다가도 그냥 잘 사는지 한 번은 보고 싶어"
"왜?"
"생각 안 하고 사는데 가끔 생각이나"
"그래!! 뭐 한다고 클럽을 가가꼬 얘를 만들어오노!!!! 다 자업자득이야. 이유 없는 결과는 없으니까"
"쪼매난게 나보다 어른인 척 하기는. 넌 딸기우유나 먹고 잃어버린 젖가슴이나 찾아와"
"야!!!!!! 니가 봤어?!!!!!니가 봤냐고!!!!!!!"
"그래.봤다!!"
"거짓말하지 마!!"
"통영에 살 때"
"야이!!!!!!!!!!!!!! 그때 기억이나?!! 죽여버릴 거야!!!!"

공교롭게도 나는 외할머니 손에 컸을 때 장사로 바쁜 할머니를 대신해 15살이었던 삼촌은 5살인 나를 업어 키웠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울면 삼촌이 새총 만들어서 총 쏘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분명 삼촌은 날 놀리기 위해 있는 존재임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삼촌이 나를 놀리듯이 나도 그를 괴롭혀주고 싶다. 삼촌 같은 마음에서 일까? 아니면 내 마음을 몰라줘서 괴롭히고 싶은 갈까?
그게 어느 쪽이든 빨리 그에게 가고 싶다.

철없는 막내삼촌과 그의 나이가 비슷하다. 그도 내가 보는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이렇게 말썽꾸리기 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그는 아마 귀여울 것이 분명하다. 암 그렇고 말고.
운동을 직업으로 둔 삼촌은 굉장히 손이 두껍고 거칠다. 반면에 그는 굉장히 보드라운데 말이지.
잡고 싶다. 잡아보고 싶다. 너무 갑자기 대뜸 악수하자고 말하면 너무 부자연스럽겠지?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내 귀가 빨개진다. 그래! 그날 보고 나에게 또 내기를 걸어보자. 내기에 이기면 할 수밖에 없는 명분과 핑계가 생기니 용기를 낼 수밖에...
그를 보는 날에 얼마나 많은 도박을 걸게 될까? 벌써 두 개나 생겼으니 말이다. 마스크 벗기기, 악수하기.
진짜 나랑은 정말 절대 절대 전혀 안 맞는 짝사랑이다.
오늘도 그를 그리워하다 내 간이 몇 번이나 뒤집힌 걸 보면 말이다.


"징징징ㅡ 징징징 ㅡ"

집에서 쉬고 있는데 우리팀 막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과장님, **업체 사장님이 과장님께 드리라고 선물을 주고 가셨어요."

"또?!"

"네. 어쩔까요?"

"냅둬 잘 좀 챙겨놔줘. 수요일에 갖다줄거니까"

아니, 싫다는 데 왜 자꾸 주고 난리야. 부담스럽게.
앞전에 사무장님께 전화드려서 분명히 내 의견을 전달했더랬다.
이렇게 고가의 선물은 받는 사람도 부담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다시 사무장님께 전화드려서 상황을 말씀드렸고, 수요일에 고가의 선물 돌려드리러 갈 때 대표님이 주시는 선물도 들고 가라고 하셨다. 하,,, 난 또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각이 확실하다.
수요일 오전 또 다른 일정으로 나에게 거는 도박이 이번에도 진짜 도박이되겠다. 나도 바쁘지만 그도 바쁘다. 오후에 가고 싶었으나 일정이 잡혀있다는 그.
그래서 오전으로 일정을 잡았는 데 또 이렇게 일이 꼬이고 만다.  출근 후 선물 챙겨서 고객님 사무실 갔다가 그를 만나러 제 시간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10시안에 업체 사무실에서 나와야 지각은 면할 수 있다 ㅠㅠ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