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41 불쑥 떠오르는 그

호호아줌마v 2024. 9. 9. 02:43


주말 한적한 시간에 카톡 알림이 울렸다

"과장님 ㅠㅠ 주말에 죄송합니다. 안 바쁘시면 통화 가능하실까요?ㅜㅜ"

업무 시간 외에 연락 오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락이 왔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라는 거.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하이톤의 생생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린다.

"과장님!!!!!! 완전 사랑합니다 과장님"

"무슨 일이야?"

요즘 보기 드문 밝은 성격을 가진 젊고 예쁜 직원이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가 일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연락을 했단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일까? 우리 팀도 아닌데..?
업무 이야기는 원격으로 해결했고, 이제 내 궁금증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씨 왜 나한테 전화했어? 2팀장님한테 전화해도 될 일을 굳이?"

"아... 어 ㅠㅜ 주말에 업무적인 일로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ㅜ."

"아니, 사과받으려고 물어본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과장님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실 거 같았어요."

"맞아. 잘 봤어. 다음에도 막히면 연락해. 자주는 말고!! 안 바쁘면 봐줄게"

"감사합니다. 제가 이래서 과장님 완전 존경한다니깐요.
과장님 주말인데 뭐 하세요?"

"날씨도 새꼬롬하고 해서 그냥 집에 있어"

"에??? 새꼬로?? 그게 뭐예요?"

"날씨가 새꼬롬하다고"

"일본어예요?"

"아니??? 새꼬롬 몰라??"

"처음 들었어요 과장님...ㅜㅜㅜ"

"잉? 잠시만.. "

표준어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 봤더니 경남지방의 방언이란다.

"날씨가 좀 흐리고 안 좋다는 말의 사투리래"

"우리 엄마도 안 쓰는 사투리예요 ㅠ"

"그래? 나도 사투리인 줄은 몰랐어"

"과장님 은근 사투리 심하세요"

"내가? 나 표준어 쓰는데?"

"제 주위에 늙은이도 아닌데 사투리 쓰는 사람 과장님 밖에 없어요"


저 말에 충격이었다. 나름 나는 글 쓰는 작가이고, 사무실에선 과장이고, 사람들 앞에 강의도 하는 데 사투리가 심하다니.

"나 사투리 심해?"

"모르셨어요?

"어"

"과장님은 우리 왕할머니 쓰는 사투리도 쓰세요!"

"너네 왕할머니 무슨 사투리 쓰시는데? ㅠㅠ"

"단도리 잘해라, 키마이다, 중우, 살강, 빼다지, 모티 더 많은데 갑자기 생각 안 나요! 이런 사투리 쓸 때 과장님이랑 왕할머니랑 같은 연배 같아 보여서 웃겨요 ㅎㅎㅎㅎ"

"나 요즘에는 사투리 안 쓰는 줄 알았어"

"과장님은 사투리만 쓰는 게 아니라 억양도 그래요!"

"그건 아니다. 나 테레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랑 똑같은 말투야"

"누가 봐도 우리 과장님은 토종 갱상도 사투리임돠"


이 말 한마디에 그가 떠올랐다. 언젠가 한번 그가 나에게 사투리 심한 거 같다고 한 적이 갑자기 생각나버렸다. 웃음이 났다.

"그래 ^^ 내가 좀 더 표준어로 쓰도록 할게^ㅡ^"

"근데 왜 웃어요 과장님??"

"그냥 누가 생각나서"

"누구요?"

"몰라도 돼~~ 어여 퇴근하고 내일 보자"

"넹 과장님 남은 주말도 행복하세용~~"

"그래"


통화하다 그가 했던 말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제 하다 하다 내 생활 어디에도 불쑥불쑥 나타나는구먼?
아니 근데 전화를 끊고 내가 하는 말을 떠올려봤지만 내 말 어디에도 사투리는커녕 억양까지 뉴스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와 같다! 어딜 봐서 왕할머니랑 같은 연배라는 거야!!!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그도 내가 사투리가 심하다고 생각하려나? 가끔 아주 급하거나 바쁠 때 방언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 앞에서 사투리를 쓴 적이 없다. 그와 있을 때는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은데 사투리를 쓸 일이 없지 않은가? 근데 왜 그는 나보고 사투리가 심하다 한 거지??? ㅠㅠ 아이러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