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33 무례한 남자, 더 무례한 여자

여전히 직원들을 하대하는 말투와 언어, 행동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무례한 고객들이 있다. 간혹 나이 지긋하게 드신 나의 오랜 고객님이 나를 여전히 "미스 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양호한 편이었다. 호칭까지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여유와 짬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내방하여 나를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주 무례하기 그지없는 고객들도 많다.
그중 한 명이 일을 핑계로 계속 연락을 걸어오는 이가 한 명 있다. 연락 오는 이가 고객이 아니라 원래는 그의 부모님이 고객인데 연세가 많으셔서 아들인 그와 자료를 주고받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내가 하는 연락은 공적이나 그쪽에서 내게 하는 연락은 사적인 내용이다.
#사무실
"어? 안녕하세요.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세요?"
"엄마가 **씨 추석선물 갖다주라고 해서 들렀어요"
"아.. 매번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사모님께는 제가 전화로 감사인사드릴게요. 더운데 시원한 차 한잔 드실래요?"
"네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탕비실로 들어갔고, 복숭아티를 마신다는 고객을 위해 얼음 넣어 한잔 내어주었다.
"**씨 점심시간 몇 시부터에요?"
"12시 30분부터요"
"그럼 같이 식사하러 나가실래요?"
"아니요! 고객님과 사적으로 만나지 않습니다. 먹은 걸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렇게 수박겉핡기 같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갔다.
나간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카톡이 울린다.
"밥은 먹은 걸로 치고 커피 한잔 어떤가요 ㅋㅋㅋㅋ"
"커피도 마신 걸로 할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고 답이 없었다. 잊을만할 때쯤 다시 카톡이 왔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ㅋㅋㅋㅋㅋ"
읽지 않았다. 마땅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다시 톡이 와서 읽었는데 앞에 톡은 삭제되어 있었다.
"우리 친구처럼 지내요 일할 때 편하게 연락하면 좋잖아요"
"아뇨. 지금도 충분히 다른 고객님들 보다 친합니다"
"네ㅋㅋㅋㅋㅋㅋㅋㅋ갈 때마다 저 엄청 반겨주시길래 한번 물어봤습니다ㅋㅋㅋ인상도 좋으시고 친하게 지내면 좋을 듯해서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응대는 친절이 필수예요"
"그냥 누나 동생처럼 안 되겠죠?"
"네"
처음에 이런 고객들 좋게 지내려 노력했었다. 다시 사무실에서 공적으로 봐야 할 일이 많으므로. 이제는 정확히 안다. 딱 잘라줘야 뒤에 말이 없고, 뒤탈이 없다.
얼마 전 외근 나갔을 때 일이었다. usb 달린 파우치를 잃어버린 적 있었는데, 찾았다고 연락을 전달받았다. 착불 퀵으로 보내면 될 일을 굳이 왕복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직접 가져다준다길래 내 연락처를 그분에게 드려달라 했고, 결국 며칠 전에 회사로 찾아왔다.
사례를 바라는 건가 해서 현금도 봉투에 넣어 들고 회사 밑에 있는 카페에 갔다. 다시 못 찾을 거라 생각했던 내 물건을 다시 찾아 기뻤다. 호의에 보답으로 커피를 샀고, 커피를 마실 동안엔 같이 앉아있는 편이 예의인 듯해서 앉았다. 강의 좋았다느니, 재미있었다느니, n잡러가 본인도 꿈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이야기 소재가 다 떨어졌고 커피도 거의 다 마신듯하여 일어날 때라 생각하고 봉투를 내밀었다.
"얼마 넣진 않았지만, 그쪽의 시간을 낭비해 가며 갖다 주셔서 성의를 표하는 게 맞는 듯해서요. 기름값이랑 식사비 조금 넣었어요.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언제나 돈을 주는 일도 돈을 받는 일도 불편하다.
"아니, 못 받아요. 이거 받으려고 온 게 아니니깐요"
"그래도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가 덜 죄송해요"
"그럼 이렇게 하죠. **씨가 퇴근하고 저녁사주시는 걸로 퉁 칩시다"
"아뇨. 저녁은 사양할게요. 정말 감사하지만, 그건 어렵겠네요"
요즘 나한테 똥냄새가 나나?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내가 생긴 게 만만한가??
그리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번뜩 떠올랐다.
그에게도 내가 똥파리 일 수도 있겠다 ㅜㅠ
그에게도 내가 무례한 여자일 수도 있겠다.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대뜸 좋다고 고백한다면... 날 거대한 똥파리라고 생각하겠지 ㅠ 엄청 당황할 듯? 작업질색하려나 아니면 어이없어서 웃으려나?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내 고백에 어떤 반응이 올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난 고백할 거다!!!! 공식적으로 짝사랑을 끝맺기에, 단념하기에 충분한 명분이니깐.
점점 옅어지는 첫 남자의 흔적에 점점 그를 보러 가는 일이 가까워져서 좋다. 정말 좋다. 빨리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그런데, 보러 가는 것도 걱정이다. 보면 울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늘 슬픈 예감은 백발백중이니까.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병원을 가봐야겠다.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허벅지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있다. 빨리 치료를 해야 아침에 러닝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