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글쟁이/엽편소설

엽편소설)#1-9 짝사랑이 아니다

호호아줌마v 2024. 8. 21. 03:58



"그가 너무 보고 싶다"

어김없이 감정이 밀려오는 순간, 나를 너무도 쉽게 장악해버리고 만다. 점점 이 사랑이 내 안에서 살집을 키우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사랑이 커지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는 내 마음을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내 사랑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커진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더 커지지 말라며. 더 커지면 안 된다고.
그러나 억누를 수 있다 생각한 건 나의 큰 오만이었다.


#사무실

"과장님, 전화 돌려드릴게요"

우리 팀 막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의 두 번째 직업. 명찰을 목에 걸고 출근을 하는 곳. 나의 20대에 직장인 로망에 빠지게 했던 곳이자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건네받은 전화 상대방은 내가 맡은 업체사장님.
곧이어 사장님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후ㅡ"

상담이 끝나고 진이 다 빠진 상태로 탕비실에 멍하게 앉아있다. 타인으로부터 경계가 심한 나는 이렇게 내방해서 상담하는 일이 꽤 힘들다. 더군다나 이 사장님은 강하고 센 외모를 가진 데다 내방한 이유 또한 우리 팀 팀원의 실수로 팀장인 내가 수습하는 자리라 더욱 그랬다.

"과장님,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핫초코를 타서 우물쭈물 갖고 오는 직원에게 다음부턴 실수하지 말고 단디 하자고 일러주고 핫초코는 잘 마시겠다고 말해주었다.
긴장한 탓에 입이 쓰다 못해 텁텁했는데 핫초코 한 입에 긴장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운된 기분을 다시 업 시키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무언가를 찾기도 전에 나는 그를 떠올렸다.
나의 직장생활에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전환하기에 그는 충분히 충분했다. 금방 다녀간 사장님과는 정반대의 사람. 다정하고 부드러운 어른 남자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사실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갈 때마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있는, 상대에 대한 배려심 많은 그였네.
빌어먹을.
설마 내가 바이러스가 많게 생겨서 그런건 아니겠지 . . .??
하;; 이리도 사람을 한순간에 조잔하게 하고 하찮게 만들기도 하구나?
이번에는 꼭 내 손으로 마스크를 벗겨버리고 만다.

짝사랑, 영어로는 one-sided love 직역하면 한편만 하는 사랑. 그를 짝사랑 중이지만 나에게 첫사랑이기도 한다. 짝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미 충분히 힘든데, 거기다 첫사랑임에도 틀림없다. 처음 하는 사랑과 혼자 하는 사랑을 동시에 하려니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에게 빠져든다. 나의 첫사랑이 하필이면 짝사랑이라니.
이 나이 먹도록 사랑 한번 안 해본 내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를 향한 타오르는 불꽃으로 숨이 막혀 죽던지 아니면 가슴이 다 타버리던지 해야 끝이 날까.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그를 향한 내 사랑의 결말이 나도 궁금하다.

그를 향한 마음이 점점 선명하게 색을 입혀가는데,
정작 그는 공식적인 날 공식적인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사적으로 만나기엔 명분과 핑계를 찾으래야 찾을 수 없고 더군다나 나에게 평생의 용기를 내어 쓴다고 해도 그 앞에선 한마디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를 볼 날이 다가오면서 설레기도 하지만 그를 보고 와서 다시 그를 볼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릴게 눈에 선한 내 모습이 상상이 간다. 책 속에서는 첫사랑이니 짝사랑이니 모두 설레고 찬란하고 아름답다던데 왜 내가 하는 사랑은 애달프고 슬프지? 자꾸 커져가는 마음에 욕심과 사심이 채워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