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1-321 동경을 동경해요

#당신을 동경해요
어느 날, 당신이 술을 끊는다기에 나도 술을 끊었던 날도 있었고요. 당신이 출근 전에 운동을 한다기에 나도 더 열심히 아침을 달렸었던 날도 있어요. 또 당신이 야구를 좋아한다기에 야구에 '야'자도 모르는 내가 야구 테레비만 틀어놓고 보기도 했어요. 당신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함께 한다는 생각에 밤새워가며 야구를 공부한 일화도 있었고요. 나는 당신을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의 옷맵시를 기억하고 습관과 버릇을 익힐 만큼요. 나는 당신의 그림자라도 되고픈 마음으로 동선을 좇았어요. 그러곤 당신이 머물고 있는 사무실 근처가 나의 핫플이 되었지요. 운동을 해도 그 근처에서 했고요, 마트를 가더라도 꼭 그곳을 지나갔어요. 약속을 잡을 때면 그 근처 식당으로 잡았어요. 혹시나 당신을 우연히라도 볼 수 있을 거란 부푼 마음을 안고서 말이죠. 당신 마음에 한 번이라도 걸려라, 주문을 외우며 온갖 방법으로 신경 쓰일 법한 행동들을 했어요. 당신을 본받고 싶기도 했거든요. 당신과 닮은 사람이 되면 당신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해서요. 동경했어요, 많이도요. 당신의 의연함이 꽤 멋있었고, 존경스러웠고요. 내가 보기엔 이미 이룬 것들이 많아 보였기도 했어요, 당신은요.
당신이 진짜로 좋았어요.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면 얌전히 기다렸고요, 어느 겨울날에 당신이 내게 울지 말라했을 때도 급히 입술을 앙다물고 울음을 삼켰었어요. 당신은 내게 고분고분하라고 한 적 없지만, 당신 앞에선 순한 양처럼 말랑거렸어요. 나와는 너무도 다른 당신이 정말 좋았거든요. 매사에 흔들림 없이 여유로운 당신을 존경했어요. 사랑과 존경 그리고 그 중간 틈 사이에 놓여진 동경이 수시로 너울거리며 넘나들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의문인 건 하나 있어요. 내 마음을 알기 전, 그러니깐 당신이 내 글을 찾았다고 하기 전, 당신은 뭐 때문에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걸까요.
"제가 그 똥멍충인가요?"
당신 입에서 나긋한 음성으로 내게 묻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짜 당황했었거든요. 어떻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었던 거죠? 수없이 고백을 받아와서 그런가요? 그날 내가 '과장님, 저 변태는 아니래요'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로맨스에서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내 마음을 알기 전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 까닭이 무엇일까요. 곱씹어보자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 마음에 내가 한 번이라도 걸리길 간절히 바라던 찰나, 내게 회의실에서 둘이서만 편집을 하자고 당신이 제안했죠. 당신은 그저 예민한 나를 배려한 것일 뿐이었겠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어요. 그건 마치 당신이 내게 데이트를 신청한 것과도 같았거든요. 사심 가득 담긴 꿍꿍이를 당신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무지 애썼어요. 당신은 모르실 테지만요..

"편집장님, 너무.. 뜨거워요ㅠㅠ"
"뜨거워요? 잠시만요"
겨울의 회의실 안은 굉장히 뜨거웠어요. 뜨겁다고 말할 시엔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얼굴을 꼭 봐주셨어요. 그리고 온도를 낮춰 내게 배려했고, 글이 안 써진다고 말할 시엔 감미로운 음성으로 노하우와 팁을 알려주시곤 했죠. 아프다는 핑계로 징징거릴 시엔 아픈 부위를 만져주곤 했었는데, 그 온기가 참 좋았어요. 사실 처음엔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 불편함은 불편함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막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 마냥 날뛰던 심장박동에 불편했던 거였어요. 처음 설레어봐서 몹시 낯설었거든요.. 당신의 맨손이 내게 처음 닿았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입구, 그 사이 어디쯤이었던 때였어요. 갑작스레 움직인 나로 인해 당신의 손이 내게 닿았어요. 분명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갑자기 움직인 바람에 당황했죠. 그런데 당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요. 덩달아 나도 불편할지도 모를 상황이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었죠. 안심했어요. 다신 당신을 보지 못할까 봐 무서웠거든요... 나를 배려해서 당황하지 않은 척한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둔해서 몰랐던 건지 내쪽에선 알 길이 없었으나 그 모습이 꽤나 멋있었어요. 어른 같아 보였거든요. 나도 어른이죠. 한참 전에 어른이 되긴 했지만,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답다고 하면 이해하시려나요. 그러나 그 멋진 당신의 모습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당신이 나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슬펐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은 확실하게 짝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럼에도 당신을 향한 마음은 쉬이 멈추진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봄이 왔고, 동경과 사랑이 서로 뒤엉켜 나를 지배했어요. 어느 날, 사랑이 마구마구 피어나는 봄의 절정 때 일이었어요. 실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게 닿을 수 있는 거리였어요. 여차하면 말이죠. 그런데 그 한 번이 없었어요. 나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먼지한 톨만큼도 없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퍽 상했죠. 그리고 당신 앞에서 긴장과 경계는 무장해제 되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봐주지 않을 거라 확신했으니까요.. 그러다 봄의 끝자락에서 당신의 손이 내게 닿을 직전까지 왔어요. 그러나 그때도 닿진 않았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닿을 만큼 무척 가까웠거든요. 그런데도 당신은 내게 닿진 않았어요.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고요. 이상하게도 그럼에도 당신은 내게 다정했어요. 나긋 거리는 음성으로, 오고 가는 대화는 온전히 나에게 상냥했어요. 눈길 한 번을 주지 않고서 말이죠.. 괜히 심통이 났어요. 승부욕 같은 것도 생기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온갖 다정과 낭만을 주시면서 정작 관심은 주지 않으니 내쪽에선 안달이 났죠. 혼자서 콧김 씩씩 내뿜으면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다고요. 그런 시간이 얼마 흐른 뒤, 여름의 초입이었어요. 딱 여름의 문턱 때 일이었죠. 그날도 똑같이 분량의 글을 채웠고, 어김없이 당신을 보기 위해 사무실에 갔던 날이었어요. 빤하게도 내게 닿지 않을 당신에게 긴장조차 하고 있지 않을 적에 당신이 내게 닿았어요. 내쪽에선 실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당신의 표정은 아주 진중했거든요.. 실수를 한 사람의 표정이라고 보기에는 말이죠.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당신은 계속 움직였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어요. 내 표정을 봐주길 바랐으나 봐주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손등을 빨 수밖에요.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아야 했으니까요. 안 그러면 당신이 나를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고백도 하기 전에 변태로 몰리는 일은 없어야 되잖아요. 그다음 출근 할 때 알았어요. 내게 닿은 건 실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다시 닿았으니깐요. 닿았다는 사실보다 당신이 내게 감정이 생긴 것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그때 나는 멈춰 서야 했어요.. 가지 말았어야 했죠. 당신이 내게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바뀐 순간, 나는 멈췄어야 했어요, 분명히. 사무실에 가면 두근거렸어요. 당신의 손길을 알고도 찾아가는 나를 말릴 수 없었어요. 한껏 미간을 찌푸려 눈썹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진중한 얼굴을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다짐했어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은 고백만이 끝낼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막연한 고백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의 절정, 닿기만 하던 당신이 갑자기 깊숙이 들어왔어요. 눈앞이 캄캄했어요. 주먹을 쥔 손은 땀이 삐질삐질 났고요, 벌려진 입은 다른 손등을 빨아야만 했어요. 그러진 않고선 내뱉어본 적 없는 소리를 당신에게 들려줄 뻔했으니까요. 여전히 당신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서 말이에요. 당신과 나의 두터운 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었어요. 간질거리는 느낌과 부드러운 손길을 가진 그 사람은 내가 죽도록 짝사랑하는 당신이었으니까요.. 나는 도저히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어요. 이 와중에 나의 양심과 사랑은 서로 불꽃을 일으키며 대치 중이었고요. 알고도 가는 건 내게는 힘든 결정이었어요. 내 사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당신이 나를 '손길만 바라는 여자'로 치부할까 봐, 멈추지 못하고 찾아오는 나를 미련하다 할까 봐, 그렇게 당신에게 비치는 건 추호도 싫었으니까요.. 그런 고민들을 하고도 당신에게 가는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지겨워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그렇게 한낮의 뜨거운 여름이 조금은 덜해질 무렵이었어요. 하얀 반바지를 입었던 날이었는데, 무례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신의 몸을 만진건 나의 의지는 아니었어요. 몸이 그러했고, 마음이 그러했어요.
"하고 싶어요"
멈춰야 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결코 뱉어지면 안 되는 말이었죠. 이성을 잡고 있던 끈이 툭하고 끊어진 순간이었어요. 내 입에서 뱉어질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 할 말이었거든요. 수없이 고민했지만, 한번 뱉어지니 쉬웠어요. 서로 마음은 같지 않았어도 몸은 같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아니었어요. 무슨 용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비를 핑계로 당신을 붙잡았어요. 못 이긴 척 당신도 나를 따라와 주었고요... 혼란스러웠어요. 무턱대고 사랑을 고백하자니 앞뒤 안재는 천방지축 여자로 보일 거고, 몸을 내어달라고 말하려니 속이 빤해 보였어요. 그럼에도 당장에 고백해 버릴 만큼 사랑을 말해버리고 싶었고요, 운전하고 있는 당신의 허벅지로 올라가고 싶었어요. 사랑을 말하기엔 용기가, 당신 위에 오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결국 고민만 하다 끝나버렸어요. 당신도 내게 어떤 말도 없으셨죠. 그때부터 입고 있던 흰 반바지를 아끼게 되었다는 일화를 이야기한 거예요.
나는요, 당신이 어떤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볼지가 그렇게 신경 쓰였어요. 그땐 내 마음을 알기 전이었으니깐요.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어요. 조금 서툴고 어리숙하게 보일 것이 분명해요... 처음이었거든요. 사랑도 처음이었고, 만져지고 싶은 적도요.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거절만 하는 당신이 원망스러웠어요. 그 와중에도 사랑은 주춤하거나 쉬지 않고 계속 당신에게만 향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당신이 나와 같기를 바랐어요.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순 없지만, 몸은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때부터 검색을 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입에 물었어요. 처음엔 이상했지만, 묘하게 기분 좋았어요. 머금기를 허락하고, 내어준 당신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여겼거든요. 당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내어준다는 건, 그래도 나와 가까워졌다는 의미이니까요. 얼마 뒤 마냥 거절만 하는 내게 처음으로 발을 들였어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여태 알고 있던 일이 전혀 새롭게 느껴졌거든요. 이럴 때 사용하라고 신세계라는 말이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수없이 검색을 한 보람을 느꼈어요. 당신은 모를 테지만요. 그러나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일에 문제가 생겼었어요. 당신은 다를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팠거든요. 피를 보게 되었고, 내게 머물지 않는 동안에도 당신이 있는 듯 뻐근했어요. 그런데도 다시 당신을 찾아가는 나를 보고 적잖게 당황했어요. 아픔 따위도 나를 막진 못할 만큼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거죠. 아실지 모르지만 통증에 취약하거든요.. 내게 발을 들여놓긴 했지만, 끝맺음을 함께 하진 못했어요. 당신이 도망(?) 가기 바빴거든요. 또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함께 마무리하는 관계로 발전되었어요. 그 시간만큼은 당신은 오직 내 것이었고, 온전히 내 사람이었어요. 거기서 주는 행복이 발목을 잡았어요. 당신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한걸음 더 멀어졌으니까요.. 그럴 의지마저 서서히 잃어갔으니깐요.
가을이 오는 것을 싫어한 여름은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어요. 테레비에서 심심찮게 태풍이야기를 떠들어댔을 때였을 테니까요. 여름은 태풍으로 협박하여 가을을 쫓아내려던 것이겠지요? 나의 여름에는 태풍마저 끄떡없는 동경만이 남아 있었어요.

"제가 그 똥멍충인가요?^^"
당신은 내가 그토록 그리던 어른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당신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동경과 존경은 사랑을 넘어선 마음ㅇㅣ라고... 수시로 동경과 존경, 그리고 사랑 속에서 너울거렸어요. 속수무책이었어요.
몸이 먼저 닿았고, 그 후에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버렸어요. 그것도 아주 세세히도 말이죠. 민망했어요. 그건 마치 영어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책을 읽고 있다 들킨 것 마냥. 입장 바꿔 생각해 봤는데 싫었을 거 같아요. 당신과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사랑해 버린 타인이 좋을 리가 있나요.. 허락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인 걸요. 미안했고요, 죄송했어요.
사랑을 들켜버린 내 쪽에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나의 행동엔 사랑이 '명분'이라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당신은 글쎄요... 분명, 사랑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동정과 연민, 이 둘 중의 하나인데, 애매모한 말과 행동을 곱씹을수록 내게 동정과 연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도 이랬을 거라는 두려움과 단순히 일탈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함, 당신에게만 허용스러운 나를 향한 장난일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나를 바닥으로 치닫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존경과 동경을 하는 나로서는 당신을 그렇게만 치부하기엔 속이 상했어요.
"쉽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녜요"
라는 당신의 말을 믿기로 했죠. 그러면서 걷잡을 수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사랑이 커졌어요. 마치 바닥에 얇은 유리판이라도 깔려있는 듯 발걸음을 조용히 내디뎠지만, 가슴 안의 고요하지 못한 설렘은 더 크게 울려 퍼졌어요. 주먹을 쥔 손바닥에는 식은땀에 젖었고, 내게서 멈춰 선 당신의 체온이 밀려왔어요. 숨이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듯 이어졌어요. 망설임 따위는 없었어요. 이마와 코끝이 맞닿았으며 입술은 엇물렸고, 손끝은 내게서 천천히 움직였어요.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서로의 숨소리뿐, 가쁘고 얕은 숨이 공기 중에 퍼지고 그 진동으로 분위기는 바뀌었어요. 내 마음을 알아버린 후의 입맞춤은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으니까요. 주고받는 타액 속에 짝사랑을 허락하겠노라는 무언의 긍정의 시그니처가 분명하다 싶었거든요.. 온전히 당신과 내가 함께였던 순간도 이전과는 달랐어요. 피부에 닿는 숨결 하나하나가 사랑의 결실이라 생각했거든요. 내 마음을 모조리 알아버린 당신이 온통 내 것인 양 구는 바람에 나는 당신의 소중히 숨겨야 하는 여인이 된 줄 알았지 뭐예요. 꿈도 야무지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어요. 허황된 꿈이었고, 나는 꿈에서 깨지 못했어요. 사실은요, 깨기 싫었어요. 상처받고 상처받아도 다시 당신께 가는 나를 말릴 수는 없었거든요.
분명하게도 당신이 내게 생긴 감정은 연민과 동정이었어요. 당신에게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죠. 비참했어요. 나를 비참하게 만든 건 당신이 아니었기에 원망조차 할 수 없었어요.. 꽤 힘들었어요. 그 시간이 제법이요..
어진 당신은 짝사랑에 힘든 나를 외면하지 못하고 사적으로 만나자고 했죠. 당신 말은 죄다 모순이었지만, 당신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여자로 설 수밖에 없었어요. 그 모순마저 사랑했으니 어쩔 도리가 있었겠어요? 무수히 많은 밤을 당신에게 가고 싶어 울었어요. 창문 틈사이로 달빛이 길게 스며들 때면, 하얀 커튼을 타고 흐르던 달빛은 내 몸에 내려앉았고, 그 찬란한 달빛 속에서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 슬픔은 중력에 의해 흘러내린 눈물이 아니라, 흐느낌의 숨결 마저 낯선_ 닿지 못한 당신과 이루질 못할 사랑에 대한 좌절이었어요.
당신에게 가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무해하고, 무해한 사랑만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내 선택입니다.
부디 안온하시기를,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글귀는 소설 뒤에 숨은 진짜 내 마음이었어요.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져 추억으로만 살고 싶지 않았다고요.. 처음엔 그랬으나, 사랑을 들켜버리고부터는 아니었어요.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당신이 부담스러워할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보러 가지 못하니깐요... 두려웠어요. 사랑이 커진 만큼 당신을 잃을까 무서웠어요.
당신의 가장 낮은 곳_다리사이에서 나의 눈을 마주쳤다면, 그건 필시 당신을 향한 동경만을 담은 눈빛이었을 거예요.
동경해요, 당신을.
온몸이 조용히 떨렸고, 시간은 빠르고 고요히 흘러갔어요. 당신과의 짧은 시간은 또 어찌나 짧은지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무엇도 묻지 않았어요.
굳이 말이 필요 없었거든요. 직급 말고는 호칭도 없고, 내일도 없는 당신과 나 사이는 또 그렇게 아무 사이가 아닌 채 하루가 지나갑니다.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어요. 그러나 그 혼자라는 감각은 텅 비어 있지만은 않아요. 당신과 함께거든요.
그 여느 때보다 조용하고 느렸지만, 당신에게 분명 가고 있어요.
결코 닿지 않겠지만 말이죠.
더 없고, 덧없는 인생이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일을 접고 싶진 않아요.. 동경해요, 무척이 나요.
날 좀 봐줘요... 부탁이에요.
부담 갖지 말아요.. 간청해요.

이제는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한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였어요. 그렇지만 그 눈부심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향한 마음을 멈추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가 보여준 아주 작은 관심에도 하루가 빛났고, 사소한 미소 한 번에 어김없이 행복에 물들었어요. 내가 가진 사랑은 참으로 이상했어요. 그는 내게 상냥하고 다정한 슬픔만을 주었고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가 좋았어요. 비록 짝사랑이었고 혼자만의 감정이라 지질했지만 그 사랑 덕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지난 이야기가 되었고, 흐릿한 기억들 틈 사이로 동경했다는 사실 하나는 또렷해요. 어른 남자를 존경했고, 편집장님을 동경했어요. 그리고 한 사내를 무척 사랑했어요. 그 남자는 당신이에요. 아쉽게도 아직 당신은 나의 과거가 되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사랑에도 연습이 있다면 당신과 무진장 연습하고 싶어요..
슬픈 끝맺음은 퍽 슬픈 이야기로 끝이 나야 재미난 법이지요(웃음)
(보고 싶어요.....)